[朝鮮칼럼 The Column] 쇼윈도 평화

조선일보
  •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
    입력 2018.02.12 03:17

    5G·LED 촛불과 드론 등 北체제 왜소하게 한 개막식
    남북 동시입장 '이벤트'를 진짜 평화로 인식하면 곤란
    자유·민주의 소중함 깨달은 평창올림픽은 우리에게 선물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
    기괴한 소식은 주로 해외 토픽으로 온다. 얼마 전 '머리 이식' 수술 소식도 그중 하나다. 이탈리아와 중국의 의학자가 죽은 사람의 몸과 머리를 접합하는 데 성공했고, 다음 단계로 뇌사자 몸에 전신 마비 환자의 머리를 이식(移植)하는 프로젝트에 들어간다고 한다. 성공하면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 실제가 된다. 내 머리가 다른 사람 몸에 붙어있다면? 아니면 내 몸을 다른 사람의 머리가 지배한다면? 상상하기 어렵고 상상하기도 싫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를 결정하고 선수와 응원단을 대거 내려 보내자 '평창'이라는 몸을 '평양'이라는 머리가 지배할까 우려한 사람들이 많았다. 남쪽에서 인공기가 나부끼는 걸 차마 볼 수 없어 태극기를 들고 나선 사람들도 있다. 지난 9일 밤,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보며 나는 그런 걱정은 접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창 올림픽은 북한 체제의 선전장이 되기엔 너무 크고 화려하고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정상급 외빈 26명이 참석한 평창은 세계로 열려 있었고, 우리의 5G 기술과 결합한 LED 촛불과 1218개의 드론은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피켓 걸들의 표정은 밝고 걸음걸이는 씩씩했으며, 93개국에서 모여든 선수들 얼굴엔 기대와 설렘이 교차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폐쇄 사회가 선전될 리가 없다. 평창은 북한의 체제를 오히려 왜소하게 대비시켰다.

    그보다 문제는 남북한 동시입장 같은 '이벤트'를 진짜 평화로 인식하는 우리의 착시(錯視) 현상이다. 외신들이야 평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지 않는가. 자유 왕래는커녕 접촉조차 어렵고, 불신과 폭력이 내재되어 있는 위험한 관계라는 것을. 각고의 노력으로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고 응원단도 왔지만, 북한의 응원단은 북한 선수를 응원한다.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공동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총련 소속 재일동포로 구성된 응원단장 인솔자는 "거리에서 통일기는 흔들어도 되지만 공화국기는 흔들면 안 된다. 우리 선수들이 경기할 때만 흔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말한 '우리 선수'가 대한민국 선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정부는 그런 그들을 위해 우방과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예외를 허용해 달라고 유엔에 편지를 쓰고, 육해공 길을 모두 열어 환대했다.

    국가에도 얼굴이 있다. 평창올림픽 주최국인 대한민국의 얼굴은 그동안 김연아였고, 이상화였고, 이승훈이었다. 북한이 참가하며 평창올림픽 얼굴은 열병식장의 김정은, 현송월과 삼지연 관현악단 단원들, 김여정과 김영남으로 오버랩되며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버렸다. 얼굴은 동양 사회에서 중시하는 체면(體面)과 동의어고, 두뇌가 들어있는 머리이다. 특히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에는 사람의 얼굴은 나무의 껍질과도 같아서 벗겨내면 나무가 죽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국가의 얼굴(national face)이란 국민이 느끼는 정체성과 달리 외부에서 봐 주었으면 하는 국가의 가치(價値)로 정의된다. 그 얼굴의 가치는 국가의 도덕성과 성취에 따라 결정된다. 대한민국이 그동안 다져온 자유민주주의(도덕성)와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 발전(성취)이 우리의 얼굴이다. 적어도 평창올림픽 이전까지는 그랬다. 북한과 '쇼윈도 평화'라도 만들어 보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 대한민국 얼굴이 어떻게 변했는지, 지금 정부는 모르는 것 같다.

    북한은 철저하게 두 얼굴을 갖고 필요에 따라 꺼내 쓴다. 핵무기를 쥐고 서울과 미국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위협의 얼굴, 그리고 우리 민족끼리 해결하자는 평화 공세와 밑도 끝도 없는 통일을 노래하는 얼굴이 그것이다. 그들의 머릿속 '통일된 조선 반도'의 얼굴은 누구 것이고 몸은 누구 것인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처음에는 걱정했다. 그러다 안심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민족도 소중하지만 우리의 얼굴과 머리까지 내줄 수는 없다는 것을. 북한의 '주체사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사상'이 우리 몸을 지배하는 게 낫다는 것을.

    미세 먼지가 좀 섞여 있긴 해도 우리가 숨 쉬는 공기가 북쪽보다 자유로움에 무한히 감사하다는 것을. 그리고 22국 다문화가정 어린이로 구성된 '레인보우 합창단' 어린이의 환한 민낯이 삼지연 공연단의 짙은 화장 속 미소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것을. 그걸 깨닫게 해준 평창올림픽은 분명 선물(膳物)이다.

    그리고 생각하니 북에서 온 손님들이 오히려 귀하게 여겨진다. 그들이라도 와서 잘되었다. 현송월도, 김여정도, 김영남도, 그리고 선수들도 다 오길 잘했다. 그들이라도 옷깃에 자유를 묻혀서 돌아가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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