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향의 스타일+] "그런 시대는 끝났다!" 할리우드 여배우들은 왜 검은 드레스를 입었나

  • 김의향 패션칼럼니스트
    입력 2018.02.11 06:00

    90년 전만해도 여성의 일상복으로 금지됐던 블랙
    “더이상 성폭력에 침묵 않겠다" 할리우드 여배우의 블랙 드레스 행렬로
    1926년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에서 시작된 대담함, 오프라 윈프리까지 이어져

    △가브리엘 샤넬(왼쪽)과 그가 스케치한 리틀 블랙 드레스. 1926년 샤넬이 처음 발표한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는 성별과 계급의 고정관념을 뒤집은 용기있는 옷이었다. 샤넬의 블랙 정신이 지금 할리우드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구글 이미
    “진실을 말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오랫동안 여성들은 힘 있는 남성들을 향해 감히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도 믿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끝났습니다(time is up)!”

    제75회 골든 글로브에서 여배우들과 함께 ‘반 성폭력’ 메시지를 상징하는 블랙 드레스를 입은 오프라 윈프리는 새로운 페미니즘의 시대를 선포하는 역사적인 연설을 남겼다.

    그날 오프라 윈프리의 연설은 역사를 뒤바꿀 위력을 지닐만큼 강력했고 위대했다. 지난해 할리우드 거물 프로듀서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문 사건으로 시작된 성폭력 공개 캠페인 ‘#미투’와 할리우드 여배우들과 감독, 프로듀서, 작가 등을 중심으로 직장 내 성폭력과 성차별 문제 해소를 위해 결성된 공공단체 ‘타임즈 업(Time’s up)’을 언급하는 동시에 차별과 불평등으로 얼룩진 시대의 아픔과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냈기 때문이다.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세실 B. 데밀 상을 수상한 시드니 포인티어로 시작된 연설은 문화, 지역, 인종, 종교, 정치, 일터를 모두 초월해 벌어지는 차별과 폭력의 희생자들, 흑인 차별이 팽배한 시대에 앨라바마 몽고메리의 버스에서 백인 자리에 앉아 체포된 후 현대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가 된 로자 팍스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무장한 6명의 백인 남성에게 납치되고 강간당한 후 길가에 버려진 채 평생을 싸워왔고 최근 9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리시 테일러의 이야기까지, 각각의 다른 이야기가 인종, 계층, 성차별을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이야기로 만나는 순간 그녀는 반복해 외쳤다. “Their Time is Up! Their Time is Up! Their Time is Up.” 그들의 시대, 그러한 시대는 끝났다!

    ◇ 블랙 드레스 물결, 여성 비하 발언 일삼는 트럼프 대통령에도 경고

    그렇게 블랙 드레스는 지난 제 75회 골든 글로브를 통해 역사적 의미를 부여 받았다. ‘타임즈 업(Time’s Up)’ 이란 메시지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선포하는 선언문이자, 외침의 깃발과 푯대가 된 것이다.

    △#미투 캠페인을 지지하는 취지에서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검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배우들/사진=더 헬스지 트위 캡처
    ‘타임즈 업’은 할리우드 여배우와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됐지만,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힘든 농장, 공장, 식당 등의 여성 노동자들의 법률 지원을 위해 약 138억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할 예정이다. 또한, 성폭력 피해에 침묵을 강요하는 회사에 대한 처벌 강화 법안을 제정할 계획이며, 연예계를 시작으로 주요 직위에 남녀 비율을 대등하게 하는 작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블랙 드레스 물결은 지난 1월 3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이어졌다. 낸시 펠로시(Nancy Pelosi)와 패티 머레이(Patty Murray)를 비롯한 다수의 의원이 검은색으로 의상을 통일하고 ‘타임즈 업’ 배지를 착용해, 여성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블랙 드레스 물결은 제71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3월에 열릴 제9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타임즈 업’ 멤버인 배우 라시다 존스는 ‘인스타일’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것은 침묵의 시위가 아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왜 우리가 블랙을 입었는지를 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블랙 드레스는 침묵도, 기다림도, 포용도 아닌 ‘외침’과 새로운 시대의 ‘선포’인 것이다.

    ◇ 샤넬에서 시작한 혁신적인 블랙, 여성 해방의 상징 되다

    그럼 왜 블랙 드레스일까? 가장 고전적인 일상복이라 생각했던 블랙 드레스가 겨우 90년 전만 해도 세상을 바꿀 만큼 놀라운 도전이자 혁신이었기 때문이다. 1926년 샤넬이 처음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를 발표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블랙 드레스는 상복으로만 사용됐고 일상복에서 입을 수 없었다. 특히 미망인들은 유혹으로부터 격리해야 한다는 의미로 2년 동안 블랙 드레스 입는 것을 강요받았다.

    블랙을 일상복으로 입는다는 것만도 상상할 수 없던 시대에, 샤넬은 코르셋을 벗어 던지고 바닥까지 끌리는 치마를 발목 위로 싹둑 잘라내기까지 했다. 발목만 드러나는 길이 임에도 당시는 미니스커트만큼 혁신적인 디자인이라 ‘리틀 블랙 드레스’란 이름을 선사 받게 됐다.

    동시에 ‘리틀 블랙 드레스’는 의상이 보여주는 성별과 계급의 고정관념까지 뒤집었다. 상류층 여성복의 상징이었던 화려한 장식을 모두 배제해 상류층 여성과 일반 여성의 구분을 모호하게 변화시켰다. 또한, 직선적 디자인과 남성복에 뿌리내린 블랙의 시크함을 여성복에 사용해, 코르셋과 치렁이는 장식과 스커트로부터 여성들을 해방시켰다. 그렇게 1926년의 ‘리틀 블랙 드레스’는 시대에 맞서는 대단한 ‘용기’였다.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지난 1월 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세실 B. 드밀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AP연합뉴스
    한 세기 가까이 흘러, 블랙 드레스는 다시 세상의 고정관념을 뒤집는 외침의 푯대가 되고 있다. 우리가 현재 당연시 누리고 있는 권리들이 먼저 세상에 맞서온 용기 있는 선구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듯, 2017년부터 시작된 블랙 드레스의 물결은 세상을 바꿀 것이라 믿는다.

    중앙 대학교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한 강연을 통해 사회의 변혁에는 ‘물결(Wave)’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거대한 파도가 오기 전에는 항상 바다가 무서울 만큼 잔잔하다. 그 잔잔함 뒤에는 이전의 작은 파도를 모두 덮치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기 마련이다”라는 설명처럼, 이제 침묵의 시대 뒤에 세상을 바꾸는 변혁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결은 ‘블랙 드레스’로 하나가 되고 있다.

    ◇글을 쓴 김의향은 패션지 ‘보그 코리아’에서 뷰티&리빙, 패션 에디터를 걸쳐 패션 디렉터로 활동했다. 하이패션만을 고수하기보다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장르와 상호 융합적이고 동시에 실용적인 스타일 아젠다를 만들어냈다. 현재는 컨셉&컨텐츠 크리에이팅 컴퍼니 ‘케이노트(K_note)’를 통해 크리에이터이자 스토리텔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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