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이 복수와 적대감 표출로 가선 안돼"

    입력 : 2018.02.10 03:26

    존 던 케임브리지대 교수 인터뷰
    "개인 처벌한다고 문제 해결 안돼… 제도적 장치 만들어 예방해야"

    "아르헨티나·브라질·이탈리아에서도 오랜 부정부패를 해결하려는 '적폐 청산' 작업이 진행됐지만 대개 실패했다. 적폐 청산이 (정치 세력 간) 복수와 적대감 표출로 흘러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존 던(78) 영국 케임브리지대 킹스칼리지 정치학 석좌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적폐 청산'에 대해 "근시안적인 적폐 청산이 아니라 보수·진보 진영의 화해와 시스템 측면에서의 부패 근절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존 던 교수는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최근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뿌리 깊은 부패는 보수 세력이 집권했기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수십년 동안 쌓인 한국 정치·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한꺼번에 표출된 측면이 많다"며 "이런 경우 개인을 벌준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과 정치적으로 대립 관계에 있던 보수 세력이 건국 이후 한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것을 인정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화해의 리더십을 본받아야 한다"고 했다.

    존 던 영국 케임브리지대 킹스칼리지 석좌 교수가 지난 2015년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특강을 한 뒤 포즈를 취했다. 40년간 민주주의를 연구한 그는 “적폐 청산이 복수와 적대감 표출로 흘러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존 던 영국 케임브리지대 킹스칼리지 석좌 교수가 지난 2015년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특강을 한 뒤 포즈를 취했다. 40년간 민주주의를 연구한 그는 “적폐 청산이 복수와 적대감 표출로 흘러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존 던 교수는 40여년간 미국·인도·중국·한국·아프리카 등의 민주주의의 성공과 실패를 연구해온 석학이다. 존 로크의 정치 사상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94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을 출범시킬 때 해외 자문위원으로 초청받아 한국을 방문한 이후 학회 참석 등을 위해 여러 차례 방한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 패배 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독일 통일 등을 연구할 때 교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 던 교수는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반(反)부패 수사 중 정치적 권력 다툼으로 변질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1992년 이탈리아의 대대적인 정치 부패 조사인 '깨끗한 손' 때 검사들이 정치인과 관료 수천명을 조사하고 처벌했다"며 "하지만 당시 사법기관이 이탈리아 정치인 전체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는 바람에 한동안 이탈리아에 정치 후계자가 양성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했다.

    그는 또 "2015년 취임한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12년간 집권한 전임 정부가 저지른 경제 실정(失政)을 파헤치겠다는 대대적인 적폐 청산 정책을 폈다"며 "하지만 부패 처벌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공직 관료들 대다수가 면죄부를 받아 실패로 끝났다"고 했다.

    존 던 교수는 "2014년 브라질의 정치권 비리 수사인 이른바 '세차(洗車) 작전'은 주된 목적이 부패 근절에서 정권 쟁취로 변질된 사례"라고 했다. 비리 수사 과정에서 사법부 판사들과 야당이 모의해 정권 쟁취를 위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을 부패 혐의로 기소했다는 것이다. 그는 "룰라 전 대통령은 1·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증거가 명확하지 않아 이후 논란이 많았다"고 했다.

    존 던 교수는 고질적인 부패 문제 해법에 대해 "고질적 정경 유착의 문제점을 조사하는 초당적 위원회를 만드는 등 제도적·법적 장치를 만들어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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