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상대 않겠다는 펜스, 마주 앉는 자리 배치에 '퇴장'

조선일보
입력 2018.02.10 03:02

[평창의 남과 북] 개막식 리셉션 '불협화음' 안팎

펜스 "北과 멀찌감치" 요구했는데 靑, 펜스 맞은편에 김영남 배정
환영사 마친 文대통령이 만찬 테이블로 펜스·아베 안내
펜스, 김영남 빼고 인사 후 나가
개막식에선 文대통령 옆에 펜스, 뒷자리에 김영남·김여정 앉아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직전 열린 각국 정상(頂上)급 만찬에서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중도 퇴장했다. 북측 인사와는 한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뜻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됐다. 펜스 부통령은 6·25전쟁 참전용사인 아버지가 당시 받은 동성무공훈장을 집무실에 걸어놓을 정도로 북한 문제에서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펜스 부통령은 이날 만찬에서 문재인 대통령 부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한정(韓正)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 등과 함께 헤드 테이블에 앉기로 돼 있었다. 청와대가 이날 오전 기자단에 공개한 좌석 배치도에서도 펜스 부통령 부부 좌석은 김영남 자리와 대각선 맞은편이었다. 펜스 부통령은 앞서 우리 정부에 북한 대표단과 동석(同席)할 가능성이 있는 행사에 좌석이나 사진 촬영 위치가 가깝게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자신의 뜻과 달리 만찬 자리 배치가 이뤄지자 퇴장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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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셉션 헤드 테이블, 펜스 美부통령은 안 보이고… - 문재인(왼쪽에서 다섯째) 대통령이 9일 오후 강원도 용평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서 각국 주요 정상들과 한자리에 앉아 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리셉션장에 들어섰으나 자리에 앉지 않고 5분 만에 퇴장했다. 왼쪽부터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토마스 바흐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부부, 문 대통령, 김정숙 여사,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부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이날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이 리셉션 전 손님맞이 행사인 '리시빙(receiving)' 행사를 끝낼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두 사람을 기다리다 6시 11분 행사장으로 입장했다. 20분 가까이 펜스 부통령을 기다린 셈이다.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가 도착한 것은 문 대통령이 리셉션장으로 입장한 직후다. 이때까지 두 사람은 문 대통령과 기념 촬영을 하지 않았다. 대신 두 사람은 리셉션장 앞에서 그들끼리 기념 촬영을 했다. 리시빙 행사에서 문 대통령과 김영남이 악수하고 기념 촬영한 곳과 같은 장소였다.

그사이 문 대통령은 리셉션 환영사에서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은다면 두 손안의 눈뭉치는 점점 더 커져 평화의 눈사람으로 완성될 것"이라고 했다. 그때까지 메인 테이블에는 문 대통령 내외에 김영남 위원장, 한정 상무위원 등만 있었다.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이 환영사를 마칠 때까지 입장하지 않았다.

환영사를 마친 문 대통령은 바흐 IOC 위원장의 건배사가 끝난 뒤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가 있던 다른 방으로 가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문 대통령은 두 사람을 리셉션 행사장으로 안내했고, 세 사람은 오후 6시 39분이 돼서야 리셉션장으로 입장했다. 행사 사회자가 펜스 부통령, 아베 총리에게 박수를 쳐달라고 하자 펜스 부통령이 손을 들어 답례를 했다. 이후 아베 총리는 테이블에 앉았지만 펜스 부통령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정상들과 일일이 악수한 뒤 6시 44분 부인과 함께 리셉션장을 나갔다. 펜스 부통령은 북한의 김영남과는 악수는 물론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펜스 부통령이 테이블을 돌며 인사할 동안 김영남은 무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열린 개막식에서는 펜스 부통령이 북한 대표단과 한 화면에 잡혔다. 정부는 개막식 귀빈석에서 문 대통령 부부 왼편에 펜스 부통령 부부를, 뒤편에 북한 대표단 김영남·김여정의 자리를 배치했다. 개막식에서도 펜스 부통령은 북한 대표단과 별도의 인사를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펜스 부통령은 지난 7일 일본을 찾아 아베 총리와 회담을 한 뒤 "불량배 국가(rogue nation) 북한에 맞서기 위해 미·일이 협력하겠다"고 했었다. 문 대통령이 주도해온 '대화 노선'과 확실히 선을 그은 것으로 해석됐다. 평창올림픽 첫 공식 행사에서 펜스 부통령이 북한 대표단을 철저히 외면함에 따라 '평창 이후' 북한 비핵화를 위해 미·북 대화를 중재하겠다는 문 대통령 구상은 타격을 입게 됐다.

한편, 김영남 위원장은 옆자리에 앉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대화를 나눴다고 윤영찬 수석은 전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음식이 아주 맛있었다. 거기서 건강에 좋다는 인삼을 가져가 부친에게 드린 적이 있다"고 했고, 김 위원장은 "조선 음식이 건강식이라 유럽 사람들에게 잘 맞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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