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30대 초반 오누이가 좌우하는 '김정은式 가족 정치'

  •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입력 : 2018.02.10 03:17

    김여정, 김정은 특사로 訪南… 北, 숙청으로 정권 유지
    대북제재로 사면초가… 가족 정치는 독재의 末期 증상
    한반도 상황 엄중성 설득하고 非核化에 대한 결단 전해야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다소 무리가 따른 남북 단일팀 구성에서부터 대북(對北) 제재 예외 조치까지 정부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해 양보를 마다하지 않았다. 일부 여론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바람 앞의 촛불'로 비유한 위태로운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한 명분에서다. 북한의 무한 질주형 핵·미사일 개발과 점차 가속화하는 미국의 대북 군사적 압박으로 초래된 엄중한 한반도 안보 위기 상황을 볼 때 정부의 조치가 무리는 아니다.

    문제는 이 같은 한국 정부의 선의(善意)를 대하는 북한의 셈법이다. 북한은 대북 제재와 미국의 군사적 압박으로 초래된 사면초가의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 관계의 전면적 확대라는 우회로를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과는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평화·군축 대화를 모색하는 모양새다. 아직 기술적 문제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올 1월 9일 남북 고위급 회담 이후 남북 관계는 급물살을 탔다. 북한의 대규모 참가단과 아울러 형식상 북한의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더해 김정은의 친동생 김여정까지 방남(訪南)한 판이다. 김여정은 김정은과 격의 없이 의사를 교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의사를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여정의 방남을 마냥 반길 수만 없는 이유는 바로 '북한식(式) 가족 정치'에 대한 불안감이다. 지난 8일 실시된 북한 건군절 열병식 주석단에서 눈에 띄는 인물들은 과거 우리가 알고 있던 실세(實勢)들이 아니라 김여정과 리설주였다. 최근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고령(高齡)의 김정각이 열병식 내내 경직된 차렷 자세를 유지한 것과 반대로 김여정은 주석단을 자유분방하게 오가며 행사를 챙겼다. 김정일 선군(先軍) 정치의 실력자였던 리영호 전(前) 총참모장과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전 당행정부장은 이미 처형되었고, 그동안 승승장구했던 황병서 전 총정치국장과 김원홍 전 국가보위상도 지난해 말 숙청되었다. 모두 '북한 2인자'의 반열로 나름대로 국정 운영 경험을 지녔던 인물들이다.

    반면 김정은의 공식 행사에서 자주 눈에 띄던 김여정은 어느새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라는 묵직한 직함을 지닌 채 사실상 김정은의 특사(特使) 성격으로 우리를 방문했다. 북한의 노련한 최고위층 엘리트들이 제거된 공백(空白)을 어린 김여정이 대신하는 모양새다. 김정은 특유의 음악 정치와 이미지 정치에서 느껴졌던 여성적 섬세함에서 김여정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김여정은 김정은 가족 정치의 핵심으로 사실상 정치적 동반자이다. 문제는 30대 초반의 두 오누이가 북한 국정 전반과 외교를 좌우하는 가족 정치의 한계이다. 이들이 북핵 개발의 무모함과 이로 인해 초래될 후과(後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정 전반을 이해하는 조언(助言) 그룹을 배제한 가족 정치는 대부분 독재정권의 말기적(末期的) 증상에 해당한다. 김정은 정권의 안정은 끊임없는 유혈 숙청과 폭력적 주민 통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내면적으로는 민심의 이반(離反)을 수반하는 취약한 구조를 내재하고 있다. 대부분 독재정권이 외형상의 안정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촉발 요인으로 붕괴된 이유이기도 하다. 고모인 김경희도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김정은의 가족 정치는 점차 더 두 오누이의 위험하고도 독단적인 결정에 의존하게 될 개연성이 있다.

    국제무대 경험이 전무(全無)하고 외교 의전이나 고도의 북핵 담론을 알 리 없는 김여정의 방남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다. 김여정의 파격적 방남으로 현 난국을 풀어나갈 수 있다고 김정은이 판단했다면 순진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김여정의 방남을 평가절하할 일도, 지나친 기대도 금물이며 어렵사리 찾아온 기회를 효과적으로, 전략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김여정을 통해 현 상황의 엄중성을 설득하고, 우리의 선의(善意)가 일방적 양보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평화를 위한 결단이라는 점을 김정은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지금이야말로 북한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며, 그렇지 않으면 '포스트(post) 평창 국면'에서 한국 정부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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