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B급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전투 결국, 누가 이겼냐고?

조선일보
  • 권승준 기자
    입력 2018.02.10 03:02

    조용하게 흥행하는 다큐 'B급 며느리' 만든 선호빈·김진영 부부

    고부갈등을 다큐로
    남편 속옷 브랜드까지 잔소리하시는 시어머니
    들이받는 며느리 '시월드' 담은 이 영화

    사위만 백년손님?
    며느리도 손님인데 왜 사위만 손님 대접?
    하인과 주인 사이 아닌데 남편 동생이 왜 도련님? 며느리는 슬슬 열받고…

    선을 그었더니
    격렬하게 부딪치다가 서로 적당한 선을 긋고 갈등 이겨나가게 되는데

    아내가 카메라를 향해 생글거리며 말한다. "시어머니와 한바탕했어요. 그래서 명절에 (시댁에) 안 내려갔어요. 덕분에 완벽한 명절을 보냈죠." 남편은 그런 아내를 보며 읊조린다. "나는 이상한 여자와 결혼했다." 스크린에 이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이 뜬다. 'B급 며느리'.

    서울 신대방동 작업실에서 만난 선호빈 감독과 김진영씨 부부. 심각한 고부 갈등의 경험을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 제작으로 승화(?)시켰다는 두 사람은 “결혼 제도와 고부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서울 신대방동 작업실에서 만난 선호빈 감독과 김진영씨 부부. 심각한 고부 갈등의 경험을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 제작으로 승화(?)시켰다는 두 사람은 “결혼 제도와 고부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김지호 기자
    지난달 17일 개봉한 독립 다큐 영화 'B급 며느리'가 3주 만에 전국 39관으로 확대 개봉했다. 기성세대를 경악시킬 여주인공 김진영(36)씨 덕이다. "난 너 안 봐도 된다. 손자만 보면 된다"는 시어머니에게 "어머니, 제가 싫으면 아들도 못 보는 거예요"라고 들이받는 캐릭터다. 20~30대 기혼 여성 관객들은 김씨에게 열광한다. "이 영화 보고 시어머니 전화번호를 삭제했다"는 간증(?)이 줄을 잇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고통스럽다는 고부 갈등과 '시월드(시집살이를 빗댄 은어)'에 대한 해답일까. 관객 유명자(61)씨는 "젊은 사람들이 보기 신날지 몰라도 고부간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싸우는 게 정말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의문을 풀기 위해 김씨와 그 남편이자 영화를 만든 감독 선호빈(37)씨를 만났다. 고려대 인문학부 선·후배로 만나 커플이 된 뒤 속도 위반으로 결혼한 8년 차 부부다.

    ―처음부터 갈등이 심하진 않았을 텐데.

    아내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말해두고 싶은 게 있다. 우리 시어머님이 유별나거나 나쁜 사람은 절대 아니란 점이다. 정말 착하고 좋은 분이다. 그저 어머님과 내가 너무 다른 삶을 살아왔고 그래서 서로 이해하지 못해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다름'을 느낀 구체적 계기는?

    아내 "신혼여행 직후였다. 시어머니가 신혼집에 와서 편지도 써 놓고 가셨더라. 전화를 드리니 '너도 사랑한다는 편지를 써달라' 하시더라. 비슷한 요구가 이어졌다. 이틀에 한 번은 꼭 전화하라, 남편 팬티는 이마트의 어떤 브랜드를 사라…. 남편에겐 안 하시고 내게만 요구하시는 거다."

    남편 "객지 생활을 할 때도 어머니가 항상 음식이며 옷을 챙겨주셨다. 아무리 커도 품 안의 아들이었다. 본인 역할을 아내에게 물려준단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딸 가진 친구분들이 편지 받고 자랑하는 걸 보고 부러우셨던 것 같고."

    ―고부 갈등에선 남편의 중재가 중요할 텐데, 영화를 찍은 게 그런 역할이었을까.

    아내 "중재는 제3자가 하는 거다. 고부 갈등이 심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남자들이 그 갈등의 당사자이자 원인 제공자인데 쏙 빠져버린다는 거다. 단적인 장면이 명절이다. 남자들은 다 쉬고 나와 어머님만 일한다. 그 집에 손발 움직일 수 있는 어른 넷이 모여 있는데 나랑 어머니만 '네가 하느니 내가 하느니' 싸우고 있어야 된다. 넷이서 하면 그럴 일이 없을 텐데, 우스운 일 아닌가."

    ―영화 제작 계기가 진영씨의 채증(採證·증거 수집) 요구였다고 들었다.

    아내 "시어머니와 다툴 때면 서로 기억이 엇갈리는 부분이 많았다. 찍어 뒀다가 다툴 때 그걸 보고 가리자고 생각하게 된 거다."

    남편 "난 좀 다른 생각을 했다. 둘이 다투는 모습을 찍어 다 같이 보면 자신을 돌아보고 덜 싸우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한 일이 영화 제작으로 이어졌다."

    ―아내는 어떻게 설득했나?

    아내 "난 영화화에 별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영화를 통해서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

    ―어떤 메시지인가?

    아내 "며느리도 '손님'이란 거다. 사위를 보통 '백년손님'이라 하지 않나. 그런데 며느리도 사위와 다를 게 없다. 왜 사위만 손님 대접을 받고 며느리는 못 받는가. 며느리가 남편 동생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도련님은 하인이 주인을 부르는 호칭이다. 그런 생각을 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니 다투게 된 것 같다."

    ―영화 말미에 진영씨가 먼저 시댁에 찾아가는 장면이 좀 느닷없었다.

    아내 "아이가 자라고 시간이 지나며 스스로 좀 편해진 것도 있다. 시어머니와 적당한 지점서 선을 그을 줄 알게 된 거다. 어머님도 '내가 이렇게 하면 며느리가 화내는구나. 안 해야지' 하는 걸 배우는 시간이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2015년 말부터 고부는 다시 만나고 지낸다. 가끔 서로 집을 찾고, 사는 이야기도 나눈다. 갈등을 딛고 평범한 고부 사이로 가는 중이다. 다른 세계에서 살던 두 사람이 만나 격렬하게 부딪쳤다. 서로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지만, 그 결과 두 사람의 세계가 조금씩 더 넓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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