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친구집 지하실에 얹혀살 때도 딸의 동계올림픽 金 꿈꿨다

조선일보
  • 김은중 기자
    입력 2018.02.10 03:02

    美 여자 쇼트트랙 첫 흑인 국가대표 바이니… 그 뒤엔 가나 출신 아버지

    아메리칸 드림 이루려…
    사하라 사막·지중해를 히치하이킹으로 건너

    13년간 뒷바라지
    스케이트장까지 50㎞ 통근… 김동성·김윤미에도 배워
    바이니, 스퍼트 강점 500·1500m서 메달 도전

    "침착하자. 세계인이 주목하는 올림픽 무대니까. 그리고 즐기자! 빙판 위 '살인 미소'가 너의 무기다."

    크웨쿠 바이니(59)씨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도전하는 딸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낀다'는 딸 마메 바이니(18)는 흑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미국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에 선발됐다. 평창에서 500m와 1500m 종목에 출전한다. 어린 나이지만 재능과 스타성, '이민자 가정의 성공 스토리'라는 배경도 가지고 있어 올림픽 이후가 더 기대되는 선수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유타 올림픽 오벌’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 크웨쿠 바이니와 딸 마메. 가나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아버지는 13년 동안 ‘스케이트 파더’로 딸을 뒷바라지했다.
    지난달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유타 올림픽 오벌’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 크웨쿠 바이니와 딸 마메. 가나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아버지는 13년 동안 ‘스케이트 파더’로 딸을 뒷바라지했다. /Getty Images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는 어디서나 빠지지 않는 환한 '잇몸 웃음'. 흥이 넘치는 선수로 특히 유명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 흑인 선수는 환희(joy)와 기쁨(exuberance)이라는 두 에너지원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스타덤에 올랐다"고 평했다. 올림픽을 불과 20일 앞두고 "너무 기뻐서 춤도 제대로 안 춰진다"며 '막춤'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이 10대 소녀는 7일 평창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선 "평소엔 항상 웃지만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녀의 뒤에는 지난 13년 동안 철저히 '스케이트 파더(skate father)'로 살아온 부친이 있다. 거의 매일같이 집에서 스케이트장까지 50㎞ 거리를 함께 통근하길 마다하지 않았다. 다른 학부모보다 먼저 아이스링크에 나가 훈련을 준비하고 코치들을 '들들 볶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부친은 아프리카 가나 태생이다. 1980년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고국을 떠났지만 미국에 도착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수중에 한 푼도 없어 '히치하이킹'으로 6개월에 걸쳐 사하라 사막과 지중해를 건넜다고 한다. 미국행 비행기 삯을 모으기 위해 프랑스와 스웨덴 등 유럽 국가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살기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두려울 게 없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정착했고, 미국에서 만난 가나 사람과 결혼해 2000년 딸을 낳았다. "결혼 후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미용업에 종사하는 아내와 마메, 그리고 세 살 터울의 남동생은 모두 조국 가나에서 생활해야 했다"고 한다.

    2005년 딸의 첫 미국 방문이 부녀(父女)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미국의 풍요에 눈이 휘둥그레진 딸이 "가나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고민 끝에 딸을 미국에 남기기로 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 딸은 스케이트를 배우기 시작했다. 빙판 위에 선 딸은 "보라색 스케이트복을 입으면 모두가 나를 이뻐한다"고 기뻐했다. 부친은 "어린 딸이 낯선 타지 생활에 마음을 붙이기 위해선 취미가 필요했다"며 "처음엔 스케이트가 딸에게 가져다 주는 행복을 봤고, 그 뒤엔 잠재력을 봤다"고 했다.

    마메 바이니
    마메 바이니
    부녀가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이민자를 보는 곱지 않은 시선을 항상 느껴야 했고, 빙판 위 흑인 선수는 마메뿐이었다"고 했다. 경제적인 문제도 발목을 잡았다. 동료의 집 지하실에서 생활할 때도 있었고, 레슨과 장비 비용을 대기 위해 저축한 돈을 축내고 배고픈 순간들을 참아야 했다. 하지만 '미국에 올 때 이미 빈손으로 왔기 때문에 딸의 꿈을 위해선 아무리 퍼줘도 미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녀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한국 동계올림픽 역사상 최연소 금메달리스트인 김윤미(38), '쇼트트랙의 전설' 김동성 등 간판급 국가대표 출신 지도자들을 딸의 스승으로 모셨다.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와 1998년 일본 나가노에서 연이어 금메달을 목에 건 김윤미 코치는 2004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2007년 버지니아주 레스턴의 한 스케이팅 클럽에서 김 코치를 만났다. 소속이 바뀐 후에도 딸을 데려가 10년 가까이 개인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그의 밑에서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훌륭한 한국인 코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나는 행운아였다"고 딸은 말한다.

    지난해 말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미국 국가대표 선발전 여자 500m 결승. 흑인 소녀는 총성과 동시에 무섭게 출발선을 박차고 나갔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나머지 셋에게 단 한 번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딸은 결국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이번 올림픽에 임하는 부친의 감회는 남다르다. 7일 한국에 들어온 그는 "버지니아에서 평창에 오기까지 걸린 약 13년은 긴 여행(long journey)과도 같았다"고 말했다. "가나에선 얼음이라곤 맥주를 시원하게 마실 때 말곤 볼 일이 없었는데, 내 딸이 국가대표 스케이트 선수라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고 했다. 딸은 최근 부친과의 전화 통화에서 "올림픽에 나가게 돼 그저 기쁘고, 웃으면서 타다 보면 성적은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메의 장기인 '폭발적인 스퍼트'는 10일 시작하는 여자 500m 예선 경기부터 볼 수 있다. 딸은 "아버지도 한국을 찾았는데 좋은 플레이를 펼치고 싶다"고 이미 공개적으로 약속한 상태다. 부친은 "경기장 내 어딘가에서 응원 도구를 흔들며 '스케이트 파더'의 흥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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