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올린 '메르켈 4기'… 알맹이는 슐츠가 챙겼다

조선일보
  • 이철민 선임기자
    입력 2018.02.09 03:03

    메르켈, 연정 성사위해 양보… 사민당에 알짜 장관직 6개 내줘
    슐츠 대표는 외무장관 맡아

    7일 앙겔라 메르켈(63) 독일 총리의 중도우파 기민·기사연합(CDU/CSU)이 마르틴 슐츠의 중도좌파 사민당(SPD)과 '대연정(GroKo)' 구성에 합의했다. 작년 9월 총선 이후 4개월 이상이 걸렸다. 3월 2일 46만여 명의 전체 사민당원이 이 합의안에 동의하면, 곧 제4기 메르켈 내각이 출범한다.

    메르켈은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 동독 출신 첫 총리, 전후 최연소 독일 총리(당시 51세)라는 세 가지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날 연정 구성 합의로 메르켈은 2021년까지 4연임하며 모두 16년간 총리에 재직하게 된다.

    7일(현지 시각)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앙겔라 메르켈(왼쪽) 독일 총리와 마르틴 슐츠 중도좌파 사민당 대표가 대연정 합의에 대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7일(현지 시각)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앙겔라 메르켈(왼쪽) 독일 총리와 마르틴 슐츠 중도좌파 사민당 대표가 대연정 합의에 대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AFP 연합뉴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대연정 성공은 '메르켈 시대 종언의 시작'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막대한 양보로 연정에 합의함으로써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정(聯政)에서 가장 '알짜배기'인 외교·재무·노동 등 6개 장관직은 사민당이 맡기로 했다. 정작 메르켈의 기독민주연합(CDU)은 국방·경제·교육 등 5개 장관직만 맡았다. 기독사회연합(CSU)도 난민 단속·규제를 담당하는 내무 등 3개 부처만 맡는다. 이 때문에 CDU 내에서도 "사민당에 너무 많이 줬다"는 불만이 나온다.

    작년 총선 결과는 사민당(20.5%)이 기민·기사연합(32.9%)에 크게 못 미쳤는데,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메르켈은 4개월이 넘도록 연정 파트너 구성을 달리하며 '과반수 의석' 확보 방안에 매달려야 했다. 당 지지율은 계속 떨어져 재선거는 생각할 수 없었다. 결국 안정된 정부를 이끌려면 난민 물결에 불만이 가득 찬 보수 우파와, 메르켈과의 과거 8년간 연정에서 노동권과 복지 확대라는 가치가 무시됐다는 사민당 내 좌파 모두를 끌어안는 양보를 해야 했다.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선 "총리 자리를 지키고, CDU는 빈 껍데기가 됐다"고 조롱했다.

    이번 합의에서 기대 이상의 소득을 얻는 이는 사민당 당수인 슐츠다. 작년 총선에서 전후(戰後)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좌파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에 몰려 정치 생명이 위태로웠던 슐츠는 구사일생의 기회를 얻었다. 그가 7일 합의한 발표 이후 당원들에게 "노동자에 대한 정책 강화를 통해 이제 연립정부는 사민당의 인장(印章)을 지니게 됐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슐츠는 연정이 출범하면 당수직을 내놓고 외무장관을 맡는다. 어차피 그는 독일 정가에선 '유럽주의자'로 통한다. 인구 4만명도 안 되는 소도시 뷔르셀렌에서 10년간 시장을 지내곤 줄곧 유럽의회 의원으로 일했다. 2012년부터 작년 초까지는 유럽의회 의장을 지냈다. 2025년까지 '유럽합중국'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슐츠는 무릎 부상으로 축구선수의 꿈이 좌절되자 실의에 빠졌고 고교도 중퇴했다. 젊은 시절 책방과 서적 유통업을 하면서 접한 책이 그에겐 '삶의 묘약'이었다.

    메르켈 총리에겐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 총리직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기민·기사연합 내 그의 지지율은 아직도 90%에 가깝다. 그래서 그가 '정치적 황혼'을 어떻게 맞을지는 여전히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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