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기동향지수가 1985년 조사를 시작한 뒤 33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버블경제 절정기를 뛰어넘는 수치다.
일본 내각부는 7일, 작년 12월 경기동향지수가 120.7을 찍었다고 발표했다. 경기동향지수란 기업 생산과 수출, 주가 등락과 환율, 실업률 등락과 소비 행태 등 핵심적인 경제지표 29가지를 종합한 지수다. 2010년 지표를 100으로 놨을 때 지금 경기가 어느 정도인지 한눈에 보여준다. 일본 내각부가 매달 새로 산출해 정책 판단 기초 자료로 쓴다.
'120.7'은 일본 경제가 흥청거리며 거품이 잔뜩 끼었다고 했던 1990년 10월(120.6)조차 뛰어넘는 수치다. 그만큼 지금의 일본은 활황이라는 말이다. 1993년 버블 경제가 붕괴한 뒤 일본 경제는 20년 가까이 암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2000년대 중반 반짝 회복세를 탔지만, 리먼쇼크 여파로 2009년 3월 역대 최저점(77.9)을 찍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재집권한 2012년 12월까지도 100 안팎에서 휘청휘청했지만, 아베 총리가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돈을 풀겠다"며 총력전에 나선 뒤 살아나기 시작했다.
경기가 얼마나 좋길래 버블 때를 뛰어넘는 수치가 나오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게 이달 들어 우후죽순 쏟아지는 기업 실적 발표다. 제조업에서는 미쓰비시전기가 작년 4~12월까지 역대 최고 순익(1931억엔)을 냈다고 발표했다. 미쓰이물산과 이토추상사도 같은 기간 순익이 사상 최고치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금까지 결산을 발표한 상장기업 열에 일곱(69%)이 순익이 늘어났다"며 "기업 순익 합산액이 6년 연속 증가 중"이라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기업과 정부가 손잡고 일군 성공"이라고 했다. 일본 기업들은 장기 불황을 거치며 처절하게 체질 개혁을 했다. 아베 총리는 재집권 후 돈을 풀면서 규제 개혁에 앞장섰다. 총리 참모들이 저마다 컴퓨터에 주가 모니터를 띄워놓고 일한다는 보도도 있다. 아베 총리 자신도 집무실에서 수시로 주가를 체크하고, 이상 조짐이 보이면 바로 관련 팀을 소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를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이 작년 11월 일본 국회에서 펼쳐졌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가 숫자 세 개가 적힌 메모지를 아베 총리에게 내밀었다.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 3.07배,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2.87배, 아베 총리 2배 이상.' 역대 총리 재임 기간 중 주가 상승률 1~3위를 적은 종이였다.
사토 총리는 일본 경제가 고도성장하던 1960년대에 8년간 집권했다. 아베 총리의 외가쪽 작은할아버지이기도 하다. 나카소네 총리는 미국과 유럽이 "일본 때문에 우리는 다 망하겠다"고 아우성치던 1980년대에 5년간 집권했다. 이날 아소 부총리가 메모를 보여주며 "오래 집권하면서 주가를 올리자"고 말하자, 아베 총리는 "사토 총리처럼 3배를 넘고 싶다"고 했다. 아베 총리 재집권 첫날 닛케이평균 주가는 1만을 겨우 넘었다. 재집권 후 만 5년을 넘긴 지난달에는 한때 2만4000에 육박했다.
문제는 아직 국민이 경기 회복을 잘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 중심 대기업은 최고 이익 기록을 매년 새로 쓰고 있고, 대기업 직원 임금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原定征) 게이단렌 회장이 작년 말 "새해 3% 임금 인상을 이루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의 선순환이 아직은 딱 여기서 멈춰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이 수출 잘해서 돈 많이 벌면, 대기업 직원 월급도 오르고, 중소기업 이익도 늘어나고, 중소기업 직원 임금도 올라갈 것'이라는 게 아베노믹스의 큰 그림인데, 아베 총리가 5년 넘게 불을 때도 아직 대기업까지만 온기가 돌고 중소기업 이하는 크게 달라진 걸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실업률이 3% 이하로 떨어져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가 됐지만 기업이 채용을 크게 늘려서라기보다, 인구가 줄어들어서 생긴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