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 막혔을 때 뚫어준 책, 선후배 권하려 번역"

    입력 : 2018.02.09 03:03

    '능엄경 정맥소' 번역 진명 스님

    지리산 자락 움막 같은 암자서 홀로 수행하며 8년 만에 완성
    "경전 멀리하던 제가 PC도 배웠죠"

    "근처에 와서 전화 주시면 내려가겠습니다."

    진명(54) 스님 오두막을 찾아가는 길은 힘겨웠다. 전남 구례 토지면 문수사길 ○○○. 내비게이션이 일러주는 대로 따라가니 지리산 자락을 타고 오른다. 토지면에서 10여 분 산길을 자동차로 올라가니 스님이 손 흔들며 서 있다. 끝이 아니다. 숨이 가빠지는 산길을 다시 도보로 10여분. "해발 700m쯤 됩니다." 스님이 "다 왔다"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작은 오두막 한 채가 양지 바른 벼랑 위에 얹혀 있다. 가로세로 2.5m쯤 되는 방 한 칸, 부엌 한 칸이 전부. 툇마루도 없다. 부엌엔 아궁이 2개, 냉장고엔 배추김치와 총각김치 그리고 고춧가루, 들깨가루, 참기름, 간장이 전부다. 마당엔 스님이 패놓은 장작이 수북하고, 도끼와 삽, 지게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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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 분투 끝에‘능엄경 정맥소’를 번역한 진명 스님. 불교계에선‘무식한 포수가 범 잡았다’는 표현이 나온다. 꼭 필요하지만 난해하고 방대한 책을 뚝심있게 번역했다는 의미다. 스님 뒤의 집은 3년째 살고 있는‘관음암’. 전남 구례 지리산 자락에 있다. /김영근 기자
    스님이 혼자 살면서 밥 짓고, 나무 하고, 축대 쌓은 이곳이 '능엄경 정맥소(楞嚴經 正脈疏)' 번역본의 탄생지다. 그는 '능엄경 정맥소'를 8년에 걸쳐 번역해 4권으로 펴냈다. '능엄경 정맥소'는 명나라 말기 진감 스님이 지었다. '능엄경'은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 중 하나. 불교 핵심 교리를 논리적으로 정리했고, 수행 과정에서 겪는 온갖 어려움의 원인과 극복 방법도 설명한다. 내용이 방대하고 난해해 중국의 고승들이 무수히 주석서를 낸 경전이기도 하다. 그중 '정맥소'는 진감 스님이 역대 고승들이 편찬한 주석서를 집대성해 비판적으로 재해석한 책으로, 한글 번역은 처음이다.

    진명 스님은 선승(禪僧)이다. 경전 공부, 더욱이 번역과는 거리가 멀다. 전남 고흥 출신으로 대학을 마친 그는 1992년 출가 직후부터 책과는 담을 쌓았다. 대신 부산 해운정사, 김천 수도암, 문경 봉암사, 상주 남장사 등 전국의 이름난 선원과 암자를 찾아 간화선(화두를 두고 수행하는 참선법) 수행에 몰두했다. "3년 안에 깨치겠다"는 각오와 자신감이 대단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수행은 진척을 보이다가도 멈칫하곤 했다.

    그러다 2009년 겨울, 도봉산 망월사 동안거에서 '능엄경 정맥소'를 만났다. 참선 수행 중 궁금했던 점들이 책 속에 녹아 있었다. "행자 때 이후론 경전을 멀리했기 때문에 '암호 풀이' 하듯 읽었습니다. 처음엔 종이에 연필로 적다가 PC도 배우게 됐죠." 이후 동안거, 하안거 때마다 그는 번역하다 막힌 부분을 들고 가 선배 선승들에게 물었다. 환희심이 생겼다. 이 좋은 책을 도반과 선후배 스님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생애 첫 번역에까지 나섰다. 200자 원고지로 환산하면 1만2000장 분량 번역을 마치고, 3년 전엔 마지막 작업을 위해 관음암으로 옮기면서 안거 참가도 쉬었다. 이곳에서 혼자 새벽에 일어나 예불 드리고, 죽비 치고 참선하면서 번역을 마무리했다. 송광사의 서울 분원 법련사와 길상사 주지실을 작업실 삼아 수시로 경전 전문가들과 윤독·토론도 했다. 진명 스님은 "이 책의 주요 독자는 선승일 것"이라며 "이해를 돕기 위해 도표를 넣는 등 제 나름대론 노력했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수좌(선승)가…"라며 마뜩잖아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반응이 좋다고 했다.

    동안거·하안거를 쉬어가며 이 책을 번역한 진명 스님은 "장원심(長遠心)을 얻었다"고 했다. "젊은 시절, 의욕은 넘치지만 조급했던 마음을 잊고 이젠 평생, 다음 생까지라도 조바심내지 않고 정진(精進)할 수 있는 힘, 에너지를 얻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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