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납북자들도 기억해주세요"

입력 2018.02.09 03:14

안준호 산업1부 기자
안준호 산업1부 기자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북한 얘기로 세상이 떠들썩하지만,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채 아직 그곳에 남아있을 우리 가족 얘기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9일 개막하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김일성의 손녀이자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남한을 찾는 것을 두고 온 세상이 시끌벅적하다.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 이슈는 사라진 형국이다.

"이젠 아무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형이 돌아온대도 아버지가 알아보실 수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두 형이 북한에 납치된 허용근(62)씨가 헛헛하게 웃었다. 허씨의 두 형은 1975년 8월 오징어잡이 배 '천왕호'를 타고 동해에서 조업 중 납북됐다. 큰형 용호(당시 26세)씨는 북에서 숨졌고, 작은형 정수(당시 22세)씨는 인편으로 소식을 전해왔지만 그마저도 끊겼다.

2005년 12월 제주에서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측 대표단을 '동지'라고 부를 때 "아들 생사(生死)만이라도 알려달라"고 읍소하던 아버지 성만(100)씨는 이제 요양 병원에 누워 생사를 헤매고 있다.

"아들 얼굴 한번 보고 죽으려고 넘어가지 않는 밥을 억지로 삼킨다"던 늙은 아버지는 가족 얼굴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1975년 동해상에서 납북된 허용호, 허정수 형제의 아버지 성만씨가 2005년 11월 27일 서울 송파구 납북자가족모임 사무실에서 아들들의 사진을 들고 흐느끼고 있다. /조선일보 DB
지난해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에서 납북자 가족을 만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허씨는 기자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납북자 가족 만나준단 얘기는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미국 대통령에게 호소하면 혹시 생사라도 알 수 있지 않겠느냐"며 "형 소식이라도 들으면 아버지께서 편히 눈감으실 수 있을 텐데…"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1977년 납북된 요코다 메구미의 어머니 등 납북자 가족을 만나 "납북 피해자들이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했다. 메구미 남편은 1978년 전라북도 선유도에서 납북된 고교생 김영남(당시 17세)씨다. 김씨와 같은 고교생 5명을 포함해 북한에 억류 중인 전후(戰後) 납북자는 500여 명, 국군 포로도 500여 명이다. 전시(戰時) 납북자는 9만6000여 명이나 된다. 이들의 생사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펜스 부통령은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뒤 일주일 만에 숨진 대학생 오토 웜비어씨의 아버지와 함께 평창 개막식에 참석하고, 탈북자들을 면담하며 북한 인권 문제를 집중 부각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을 강조하는 '촛불' 정권이란 우리 정부만 유독 침묵하고 있다. 납북자, 국군 포로 가족들은 말한다.

"기억해 주세요. 아직 북녘 땅에 우리 가족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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