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글솜씨 엉망… 컴퓨터 대신 손으로 리포트 써내시오

    입력 : 2018.02.08 03:07 | 수정 : 2018.02.08 07:32

    교수들, 자필 리포트 요구 늘어
    "어차피 베끼고 짜깁기할 거면 직접 쓰면서 공부하라는 의도"

    대학가에 '손글씨 리포트'가 다시 등장했다. 1990년대 들어 PC 보급 후 리포트 과제물은 워드프로그램으로 작성한 프린트물이나 파일 형태로 제출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부 교수가 "공부한 것을 손으로 직접 쓰면서 익히라"며 손글씨 리포트를 요구하는 것이다.

    경기도 성남의 한 사립대생(24)은 지난 학기 '산업심리학' 과목에서 기업을 비교·분석한 리포트를 직접 손으로 써냈다. A4용지 약 120페이지 분량이었다. 참고문헌을 적는 데만 20페이지를 썼다. 리포트를 완성하는 데 꼬박 2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교수가 '손글씨 리포트'만 받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권씨는 "손으로 쓰면서 공부한 내용에 대해 확실히 이해는 했지만, 몸은 힘들었다"고 했다. 이 수업을 진행하는 김모 교수는 "워드프로그램으로 작성한 리포트를 받아보니, 과제를 돈 주고 사서 내거나 짜깁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자필 리포트는 교수 입장에서도 채점하기 힘들지만,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시작했다"고 말했다.

    '손글씨 리포트'의 등장은 교수들이 학생들과의 표절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많은 대학에서는 수년 전부터 과제물 짜깁기를 막기 위해 표절방지 프로그램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베끼기가 갈수록 교묘해져 인용과 표절을 가려내기 쉽지 않다. 더구나 절대다수가 짜깁기 리포트를 내는 만큼, 표절을 가려내는 것이 무의미하다. 2년 전부터 손글씨 리포트를 받는 한 여대 음대 교수는 "어차피 베낄 거라면 손으로 쓰면서 조금이라도 공부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 경희대에 다니는 최모(25)씨는 지난 학기 일본 고전 문학 관련 과목에서 A4용지 두 면에 시와 구절을 직접 적어 내라는 과제를 받았다. PC로 30분이면 끝낼 분량을 2시간 꼬박 자필로 리포트로 작성했다. 이 학교는 필수 교양과목인 글쓰기와 영어 수업에서도 자필 리포트를 받는 경우가 있다. 영어 과목의 경우 매 수업 토론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A4 1장 분량의 자필로 작성해서 내게 한다. 이 수업을 진행하는 한 교수는 "워드프로그램들이 자동으로 오타와 비문(非文)을 고쳐주다보니 대학을 졸업해도 제대로 국어를 못 쓴다"며 "글쓰기 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 손으로 리포트를 쓰도록 했다"고 했다.

    일부 학생은 '손글씨 리포트'를 긍정적으로 보지만 대부분 "힘들다"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는 반응이다. 학기 말이 되면 소셜미디어에 '자필 리포트 교수님 미워요' 같은 제목의 글들이 대학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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