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13년째 확장하는 판교 밸리에 '성공 코드' 있다

    입력 : 2018.02.08 03:14

    '한국판 실리콘밸리' 판교 개발,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추진
    후임자가 이전 정책 폐기하면 시간 낭비에 국가경쟁력 후퇴

    호경업 산업2부 차장
    호경업 산업2부 차장

    경부고속도로 서울 초입에 자리 잡은 판교 테크노밸리의 성장세를 보면 경이롭다. 엔씨소프트, 카카오, 넥슨, NHN엔터테인먼트 같은 인터넷 기업과 SK케미칼·차바이오텍 같은 바이오 기업이 몰려있다. 현재 입주 기업은 1300여 곳, 상주 인원은 7만4700명에 이른다. 이곳 북쪽 성남시 삼평동에는 제2 판교 건설이 한창이다. 얼마 전에는 인근 금토동에 제3 판교를 짓는다는 계획이 나왔다.

    '한국판 실리콘밸리'라는 판교 테크노밸리의 발전사(史)를 보면 성공 코드가 확인된다. 2000년대 들어 여야(與野)의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확장해 왔다는 점이다. 설사 당(黨)이 같더라도 새 인물이 당선되면, 손바닥 뒤집듯 정책이 바뀌는 한국적 특수 상황을 감안한다면 기적 같은 일이다.

    판교 테크노밸리 구상은 김대중 정부 시절 민주당 소속 임창렬 경기도 지사에게서 나왔다. 2001년 판교 땅이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됐을 때, 임창렬 지사가 330만㎡(약 100만 평) 규모의 테크노밸리 조성 아이디어를 내고 추진했다.

    그 뒤를 이은 한나라당 소속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우여곡절 끝에 2006년 착공식을 열어 현실화했다. 66만㎡(약 20만 평)로 면적이 줄었지만, IT 중심 첨단 산업 연구 단지 모습은 초기 구상과 거의 비슷했다. 양인권 당시 경기도 건설교통국장은 "손 지사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IT'라며 전임자 때 추진했더라도 할 건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손 지사가 판교 테크노밸리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더라면, 지금의 연구 단지는 평범한 아파트 단지가 됐을지 모른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모습. 각 사무실에 켜진 불로 환하다. /조선일보 DB
    제2 판교는 박근혜 정부 때 중앙정부 주도로 43만㎡ 부지에 건설 중인데, 내년에 준공될 예정이다. 작년 말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발표한 제3 판교(58만㎡ 규모)는 2022년 완공된다.

    '판교 사례'는 정책 연속성의 중요성을 웅변한다. 산업 분야에서 정치 바람이 불면 국가 미래가 불안해진다. 전임자의 정책이 후임자에 이르러 모두 폐기되거나 바뀌면 그만큼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다. 그럴수록 국가 경쟁력도 멍이 든다. 하지만 현실의 정책 결정자들은 전임자의 정책이나 사업을 이어받기보다 '자신만의 것'을 내세운다.

    2016년 3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對局) 이후 그해 7월 "우리도 국가적인 인공지능 결과물을 내자"며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이 출범했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 후 지원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KAIST 교수 출신의 김진형 원장은 "작년에 정부 과제 공모로 3억원을 땄을 뿐 정부 지원에 대한 꿈은 버렸다. 지금은 생존이 목표"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속도를 냈던 달 탐사 계획은 최근 10년 이상 연기 쪽으로 선회했다. 상황에 따라선 하지 않겠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전임 정부 때 전국 19곳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들어간 세금·기업 투자만도매년 수백억원을 헤아린다. 중소벤처기업부는 7일 이 센터에 대기업 색깔을 지우고 지역별로 자율 운영하겠다는 새 활용 계획을 내놓았다. 자칫 이도저도 아닌 기관이 될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새 정부 출범 후 자율주행차·빅데이터·인공지능 같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는 혁신성장 구호도 나왔다. 하지만 '이번 정부만의 것'은 애초 있기 힘들다. 직전 정부도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면서 청사진을 내놨기 때문이다. '판교 테크노밸리'처럼 전임자들이 뿌려놓은 우량 종자(種子)도 찾아보면 많다. 이들 종자만이라도 알차게 키운다면, 그 수확이 후임자는 물론 국민 전체에게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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