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해도 오래가고 싶어요"

입력 2018.02.07 03:03

[핫한 게 싫다… 혐핫 신드롬] [3·끝]

한때 '핫플' 경리단길·삼청동 등 개성 있는 가게 연 젊은 사장들
"오랜만에 찾아도 그 자리에… 친근한 가게로 뿌리내리고 싶어"

모두 '핫 플레이스'를 찾지만, 그중 몇몇은 '오래 남는 곳'을 고민한다. 7~8년 전 서울 이태원동 경리단길은 난데없이 북새통을 이뤘다. 장진우(32)씨가 식당 '그랑블루' '마틸다' '문오리'를 연달아 열며 골목 전체가 '장진우 거리'로 불렸다. '핫하다'는 말에 사람들이 밀려들어 경리단길은 온종일 유원지 같았다. 돌아보면 착시(錯視)였나 싶을 만큼 요즘 이곳은 썰렁해졌다. 2015년 4월 식당 '장꼬마'를 이곳에 연 이승아(25)씨는 "핫한 것은 잠깐이었다. 한때 푸드코트처럼 음식 만들고 치우기 바빴지만 금세 인파는 빠졌고 매출도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무렵 진짜 반전이 시작됐다. 젊은 사장들이 다시 모여 개성있는 가게를 열기 시작했고 이 골목도 천천히 생기를 되찾았다.

화르륵 ‘핫 플레이스’로 타올랐다가 사그라든 서울 경리단길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젊은 창업자들. ‘1989비스트로’의 조현우(왼쪽부터), ‘장꼬마’의 최수빈·이승아, ‘오르가즘프로그’의 진홍규씨가 ‘장꼬마’ 앞에 모였다.
화르륵 ‘핫 플레이스’로 타올랐다가 사그라든 서울 경리단길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젊은 창업자들. ‘1989비스트로’의 조현우(왼쪽부터), ‘장꼬마’의 최수빈·이승아, ‘오르가즘프로그’의 진홍규씨가 ‘장꼬마’ 앞에 모였다. /이태경 기자
식당 '1989비스트로', 술집 '오르가즘프로그', 화랑 '갤러리 프리다' 같은 가게 10여 곳이 그렇게 하나둘 생겼다. 이씨는 "이제 경리단길이 핫하지 않아 좋다. 매출은 한창때보다 20% 줄었지만, 이젠 손님 한 명 한 명과 눈 맞추며 음식을 낼 수 있어 행복하다. 이렇게 작고 소소한 가게로 오래 남아 뿌리내리고 싶다"고 했다.

혐핫 신드롬은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 '유명한 곳은 가기 싫다'는 심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제 '핫하기보단 오래가겠다'는 목표로 공간과 서비스를 가다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서울 삼청동 카페 '보드레 안다미로' 주인 김지영(43)씨도 그렇다. 요즘엔 "이젠 식상해졌다"는 말을 듣는 삼청동에서 김씨는 젊은 화가들 그림을 전시하고 수요일마다 작은 음악회도 연다. 김씨는 "프랜차이즈 숲이 돼 버린 삼청동이지만 골목마다 아직 풀꽃 같은 가게가 자란다. 우리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했다.

지역문화기획자 설재우(37)씨는 서울 서촌이 뜨면서 어릴 때부터 드나들던 '용오락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건물주를 설득하고 크라우드 펀딩(대중에게 투자받는 것)으로 재작년 같은 자리에 '옥인오락실'을 열었다. 편집숍 '옥인상점', 전시 문화 공간 '별안간'도 같은 방식으로 문 연 가게다. 설씨는 "미국 미시간의 오래된 도넛집이 문 닫게 되자 경찰들이 돈을 모아 살려낸 걸 봤다. 핫한 것은 피곤하고 부담스럽지만, 작고 오래된 건 편하고 친근하다. 우리에겐 이제 낯익고 친근한 곳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경남 남해 삼동면에 최근 콘셉트 서점 '바게트 호텔'을 연 디자인 스튜디오 '키미앤드일이'도 오래 남기 위해 남해로 옮겼다. 이곳 작가 김모씨는 "상대적으로 사람이 덜 몰리면서도 꾸준히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남해로 왔다. 시간이 아무리 흐르고 유행이 바뀌어도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가게를 꿈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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