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 여행가방에 아기 넣은 20대, 처벌 면하는 이유

입력 2018.02.06 17:19 | 수정 2018.02.06 18:24

2일 오후 8시 20분쯤 경기 수원의 한 파출소. 한눈에 보기에도 나이가 지긋한 부부와 딸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남편이 입술을 떨며 입을 열었다.
“차에 아기 시체가 있습니다.”
파출소가 조용해졌다. 놀란 경찰관이 “무슨 소리냐”고 대꾸했다.
남성이 대답했다. “우리 딸이 낳은 아기 시체가 지금 차에 있습니다.”

경찰관들이 벌떡 일어섰다. “타고 온 차가 어디 있습니까.” 부부가 가리킨 곳은 파출소 밖에 주차된 차량. 경찰은 뒷좌석 문을 열고 검은색 비닐봉투를 꺼내 안을 들여다봤다. 한 뼘도 되지 않는 약 10cm 크기의 아기 시신이 담겨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경찰이 물었다. 겁에 질려 울먹이던 아기 엄마 A(여·20)씨가 10여 분의 침묵 끝에 입을 뗐다.


/조선일보DB
지난해 6월쯤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A씨는 한 달 뒤 생리가 끊겼다. 임신테스트기를 통해 임신 사실을 알았다. A씨는 불안했고 두려웠다. 전 남자친구와 부모에게조차 알리지 못했다. 병원을 혼자 갈 엄두도 못 냈다.
그러나 며칠 뒤 A씨는 다시 생리를 시작했다. A씨는 ‘임신테스트기가 잘못됐나보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착각이었다. 이후 두세 달이 지나도록 몸에 아무런 변화가 없자 A씨는 임신 사실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러던 지난 2일 오전 4시. 방에 누워있던 A씨는 복통에 잠에서 깼다. ‘생리통이구나’라고 생각했다. 화장실에서 2시간을 끙끙댔다. 배에 힘을 줬다. 오전 6시쯤 A씨는 아기를 낳았다.
하지만 아기는 울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았다.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다. 덜컥 겁이 난 A씨는 갓난 아기를 비닐봉지에 싸서 여행용 가방에 담았다. 일단 회사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A씨는 여행용 가방에 숨져 있는 아기를 둔 채 집을 나섰다.

아기를 발견한 건 A씨의 아버지였다. A씨 아버지는 이날 오후 딸 방을 청소하다가 여행용 가방을 열었고, 오후 6시쯤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A씨는 친구를 만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는 아버지의 말에 A씨는 사실대로 털어놨다. “아기를 왜 이렇게... 이러면 큰일 난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A씨는 아버지의 설득 끝에 부모와 함께 직접 파출소를 찾았다.
경찰은 A씨를 조사한 뒤 아기가 출산 당시 이미 숨진 상태였던 것으로 파악했다. 아기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지난 5일 “아기는 6∼7개월 된 상태이며, 사산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구두로 전달했다.

A씨는 법적 처벌은 면하게 됐다. 경찰 측은 “출산 전에 아기가 사망했다면 A씨를 처벌할 근거가 없다”고 했다. 뱃속에서 숨진 아기는 법적으로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형법과 판례에선 산모가 진통을 호소해 분만이 시작될 때부터 태아를 법적 ‘인간’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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