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생로병사] 배우자 성격 변했다 싶으면, 먼저 아픈가 살펴보자

입력 2018.02.06 03:15

뇌하수체에 종양 생기면 호르몬 변화로 성격도 돌변
교통사고로 인한 충격에도 인지능력 떨어져 건망증 惡化
질병 있으면 행동도 바뀌게 마련… 숨은 疾病 징조 아닌지 확인을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50대 중반 부부는 매일 티격태격했다. 아들은 군대, 딸은 여대 다닌다. 자식이 커서 제 할 일 하니, 문제는 부부다. 20여년 같이 살면서 여러 고비 넘겼고, 폐경기의 혼란스러움도 견뎠건만, 이제 와 부부 사이가 멀어졌다.

꼼꼼한 성격 탓에 늘상 하던 아내 잔소리도 줄었는데 말이다. 활발했던 아내는 점점 시무룩해졌다. 남보다 더 크게 기뻐했고, 슬퍼했던 성향이 변했다. 매사가 편평해졌다. 여자는 아내로 해야 할 일도 제쳐 놨고, 남자는 집보다 밖으로 돌았다. 서로 불평과 불만이 충돌했다. 마침내 금기어인 '이혼' 얘기가 나왔다.

그러다 아내가 발목을 접질려 복사뼈에 금이 갔다. 정형외과 병원서 간단한 수술에 앞서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호르몬 이상이 발견됐다. 갑상샘 자극 호르몬이 크게 올라 있었다. 이는 반대로 갑상샘 호르몬 수치가 매우 낮다는 의미다. 갑상샘 기능이 떨어져 있으니, 어떻게든 올려 보려고 보상 작용으로 갑상샘 자극 호르몬이 많이 분비된 상황이다.

아내는 내분비내과로 옮겨져 갑상샘 기능 저하증 진단을 받았다. 호르몬제를 먹기 시작하니 성격이 다시 변했다. 예전의 살가운 아내로 돌아왔다. 잠시 어긋났던 톱니바퀴는 이제 돌아간다. 주말마다 한강변을 같이 걷는 사이가 됐다. 그때 이혼 도장을 찍었으면 어찌할 뻔했나 싶다.

평소와 다르게 생각이나 행동, 성격이 변했다면 일단은 '혹시 아파서 그런 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돈 문제, 직장 문제, 여자·남자 문제일 수 있으나, 먼저 병 때문은 아니라고 확인하고 나서 다음 판으로 넘어갔으면 한다.

[김철중의 생로병사] 배우자 성격 변했다 싶으면, 먼저 아픈가 살펴보자
/일러스트=이철원
실은 의학적 이유인데 사회적 갈등으로 증폭되는 경우가 많다. 질병이나 아픈 상황이 성격 자체를 바꾸어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꼬이게 한다. 우울증이나 치매 같은 질환이 아니어도 그렇다.

뇌하수체는 뇌 속의 중앙부에 자리 잡아 호르몬 생산을 조절하는 사령부 역할을 한다.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기면, 호르몬 분비의 급격한 변화로 성격이 변한다. 타오르면 평소와 다른 뜨거운 성깔이 되기도 하고, 가라앉으면 차가운 성품이 되기도 한다. 자동차 엔진 역할을 하는 갑상샘 호르몬 항진증이 되면, 브레이크는 밟으려 하지 않고 액셀러레이터만 누르려는 운전자처럼 느껴진다. 매사를 못 기다리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할 수 있다.

감정 기복이 심해져 기분이 그네를 탄다. 항진증이 젊었을 때 오면, 맥박 수가 올라가고, 두근거림이 심해서 쉽게 의심할 수 있지만, 나이 들면 그런 신체 변화가 두드러지지 않아 사람 변했다고만 여기다가 늦게 진단된다.

아주 심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 중에는 간혹 뒤늦게 성격 이상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머리에 둔탁한 가격을 받으면 뇌를 둘러싸는 뇌경막 안으로 실핏줄이 터지면서 출혈이 천천히 일어날 수 있다. 피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 아니기에 처음에는 잘 모르고 지나친다. 그러다 한 달 넘어 때론 몇 달에 걸쳐 혈액과 점액이 흘러 고이면서 전두엽을 압박하게 된다. 인지능력이 점차 떨어져 깜박거림이 잦고, 건망증도 심해진다.

사람이 성의 없어 보이고, 의욕 없어 보인다. 이런 현상은 젊은 사람보다는 장년 이후에 많다.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쳤거나, 넘어져 뇌진탕을 입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뇌경막 혈종임을 발견하고, 제거 수술 후 원래로 돌아온다.

남모르는 요실금이나 과민성 방광 증상이 있으면, 한 시간 넘게 타는 버스 여행을 하자고 하면 기겁을 한다. 어디를 가든 화장실 위치부터 찾으니, 불안·초조해 보인다. 냄새 날까 민감하여 향수가 짙으니, 괜한 오해도 산다. 질병이 있으면 행동도 변하기 마련이다.

삶은 성격으로 결정된다. 제풀에 자기가 걸리듯, 성격에 걸맞은 병에 걸린다. 남에게 불같으면 심장병에 잘 걸리고, 자기에게 물 같으면 우울증 걸리기 십상이다. 그렇다 해도 성격이 완전히 자리 잡은 중년 이후에 급격한 성격 변화가 있다면, 우선 숨어 있는 질병 징조는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자칫 아픈 것도 모르고 큰 결정을 내리면, 인생이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그러기에 여성 호르몬이 곤두박질치는 폐경기에 이혼하지 말고, 남성 호르몬이 요동치는 성장기에 미래를 확정 짓지 말자. 누군가 변했나 싶으면, 먼저 아픈가 살펴보자.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