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98%, 연명의료 중단하고 싶어도 못한다

    입력 : 2018.02.05 03:04

    어제부터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심의하는 '윤리위' 없어 중단 못해
    현행법상 설치 의무 아닌 선택, 의료기관 3324곳 중 1.8%만 갖춰
    중소·요양병원 "인력·비용 부담"

    무의미한 연명(延命)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 결정제도'가 4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현행법상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춘 병원은 전체 2%도 안 돼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병원 98% '연명의료 중단' 요건 못 갖춰

    연명의료 결정제도를 시행해도 모든 의료기관에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의료기관윤리위원회(윤리위)를 설치한 의료기관에 한해서만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서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9일부터 윤리위 등록 신청을 받은 결과, 4일 현재 등록을 마친 곳은 전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3324곳 가운데 59개 기관(1.8%)에 그쳤다. 병원 98.2%에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상급종합병원은 전체 42곳 중 23곳(54.8%)이 등록을 마쳤지만, 종합병원(10%), 병원(0.1%), 요양병원(0.3%) 등으로 규모가 작을수록 설치율이 낮았다. 중소병원이나 요양병원에 있는 대부분 환자가 연명의료를 받지 않으려면 급히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셈이다.

    ◇중소·요양병원 '존엄사 사각지대' 될 수도

    의료계에선 "당분간 중소병원·요양병원이 '존엄사 사각지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현행법상 의료기관이 윤리위를 설치하는 건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다. 상급종합병원 등 인력과 자원이 비교적 풍부한 곳은 윤리위 설치가 시간문제일 수 있지만, 중소병원·요양병원은 이런 요건을 충족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데 법조·윤리·종교계 인사 2명 이상을 포함하는 5~20명을 위원으로 선임하고, 회의를 정기적으로 여는 게 부담이라는 것이다. 여기 드는 비용은 의료기관이 자체 부담해야 한다.

    특히 노인 사망자 중 4분의 1 정도가 숨지는 요양병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요양병원 평균 의사 수는 지난해 3분기 기준 3.6명에 불과하다. 의료계에선 "요양병원의 특성을 고려해 별도로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복지부는 대형병원·국공립병원 등이 '공용(共用)윤리위원회'를 꾸리고, 중소병원이 업무를 위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재영 충남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대형병원도 처음 경험을 쌓아가는 상황인데, 다른 병원 업무를 대신 처리해주겠다고 나서긴 어려울 것"이라며 "게다가 현장에서 떨어져 서류로만 까다로운 윤리적 문제를 다루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현행법상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임종기' 환자와 그렇지 않은 '말기' 환자를 구분하는 게 까다롭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교수는 "말기·임종기 환자를 구분하고, 말기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 중단을 금지하는 사례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했다. 또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때 연명의료를 중단하려면 가족(직계 존·비속) 전원 동의를 받아야만 하는데, 그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령자의 자녀·손주를 합하면 수십명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최대 징역 3년에 처해질 수 있어 의료진이 방어적으로 나올 수 있다"면서 "연명의료 중단 요건을 완화하고, 모든 의료기관이 연명의료 결정제도에 참여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국회에선 중단 가능한 연명의료 행위를 추가하고, 의료인에 대한 처벌을 1년 유예하는 등 내용의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복지부는 또 연명의료 결정제도 활성화를 위해 연명의료 관련 상담·결정 등에 건강보험 시범 수가(8만7710~11만8550원)를 적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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