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중앙, 일반인은 병동 끝… 훈련때처럼 계단도 구분 대피

입력 2018.02.05 03:10 | 수정 2018.02.05 07:53

[매뉴얼대로 한 세브란스 의료진 "훈련인 줄 알았는데 참사 막아 다행"]

- 세세하게 작성된 매뉴얼
자체소방대 만들고 직원임무 규정
'정전때 휴대 인공호흡기 사용' 등 대피 요령·계획 세분화해 기재
전층 대피로 병원 곳곳에 붙여놔

3일 불이 난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3층 푸드코트에 늘어진 전선과 잔해가 엉켜 있다.
3일 불이 난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3층 푸드코트에 늘어진 전선과 잔해가 엉켜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화재는 3일 오전 20층짜리 본관 건물의 3층에서 발생했다. 불은 2시간여 만에 진화됐다. 2005년 본관 건물이 완공된 후 가장 큰 불이었다. 아직 정확한 화재 발생 시각과 원인은 나오지 않았다. 병원 측은 "3층 푸드코트 피자 화덕의 열기가 덕트(환기용 통로)를 타고 번지면서 5번 출구 천장에서 불이 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건물에는 수술실과 신경계 중환자실, 내외과 중환자실 등이 있다. 환자만 1100여 명이 머물고 있었다. 이 중 단순히 연기를 흡입한 환자 3명만 확인됐다. 화재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가 없었던 것이다. 불과 8일 전 41명이 사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와 극명하게 다른 결과다. 이를 가른 것은 실전 같은 반복 훈련과 자세한 매뉴얼이었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평소 훈련대로 건물 안에 있던 입원 환자 등 수백명을 빠르게 대피시켜 인명 피해를 막았다. 8·9층 중환자실 환자 등 거동이 어려운 이들은 병원 측의 안내 방송을 들으며 의료진과 함께 대피 준비 상태로 대기했다. 이 역시도 '화재가 더 번지면 이동한다'는 매뉴얼에 따른 조치였다.

실전 같은 훈련

화재 당시 18층에 입원해 있던 환자 김모(60)씨는 "간호사들이 환자들의 링거를 척척 등에 메고 빠르게 움직이는데 정말 놀랐다"며 "움직임이 몸에 밴 듯했다"고 말했다. 한 병원 직원은 "소방 훈련을 하는 줄 알고 교육받은 대로 움직였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자체 교육 일정에 따라 소방대응 훈련을 하고 있다. 훈련 때마다 다른 부서 직원들에게 환자 역할을 맡긴다. 중환자를 들것으로 나르는 등 매뉴얼대로 훈련한다. 의료진은 소화기 등 화재진압시설 사용법을 익힌다. 병원 관계자는 "다른 부서 직원들을 모니터링 요원으로 섭외해 훈련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고 문제점을 서로 지적해주면서 보완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 실전 같은 화재훈련 -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은 직원에게 환자 역할을 맡겨 실전 같은 화재 대비 훈련을 한다. 직원들이 유독가스가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방연(防煙) 마스크를 쓰고 환자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있다. 사진은 2015년 이번 화재가 발생한 본관 병동에서 훈련하는 모습.
세브란스병원, 실전 같은 화재훈련 -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은 직원에게 환자 역할을 맡겨 실전 같은 화재 대비 훈련을 한다. 직원들이 유독가스가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방연(防煙) 마스크를 쓰고 환자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있다. 사진은 2015년 이번 화재가 발생한 본관 병동에서 훈련하는 모습. /신촌세브란스병원

이런 훈련을 반복적으로 한다. 병원 시설관리팀이 지난달 26일 내부 보고한 '2017년 화재예방활동 보고'를 보면, 교육 훈련은 수십 차례 했다. 1년에 두 개 병동씩 돌아가면서 '실전형 훈련'을 한다. 의료진만 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 담당자 등도 동참한다. 13층 직원 유금자(60)씨는 "청소 담당자도 평소 소화기 핀 뽑고 화재 진압하는 훈련을 받는다"고 했다. 11층에서 청소 업무를 하는 송모(58)씨는 "실전 훈련을 할 때 화재 사실을 주변에 전파하고, 소화기로 초기 진화하는 훈련을 의료진과 함께한다"고 말했다.

자세하고 실질적인 매뉴얼

본지가 입수한 세브란스병원 '피난 계획 수립'과 '화재 발생 대응' 매뉴얼에는 화재 발생 시 행동 요령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자위 소방대를 만들고 '환자 대피 중대장'을 지정하는 등 직원들의 임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피난유도원은 이동하면서 방화문을 닫고 피난할 수 있도록 하고, 사람들에게 승강기는 절대 탑승하지 못하게 안내한다.

입원 환자 대피 계획도 마련돼 있다. 특히 상태가 위중한 고위험군 중증환자 대피 계획은 11개 환자실, 수술실 등으로 더 세분화돼 있다. '중환자는 전기 차단 땐 휴대용 인공호흡기를 이용해 환자를 이송한다'처럼 각 환자들과 상황에 맞는 매뉴얼을 갖추고 있었다. 1층부터 20층까지 전 층에 화재 시 행동 요령이 적힌 피난 대피로 지도가 있다. 병원 관계자는 "소방법에 따라 출입구와 대피로 등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고 있다"고 했다. 조원철 연세대 방재안전관리연구센터장은 "환자실과 수술실 등 행동 요령을 세분화해 각자가 해야 할 구체적인 의무를 명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화재 때 소방시설은 이상 없이 작동했다. 화재 당시 10층에 있던 보호자 최모(71)씨는 "화재경보가 울리자마자 연기를 밖으로 빼내는 배연창이 자동으로 열렸다"고 했다. 또 중환자실 쪽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비상연결통로가 자동으로 열렸다. 이 통로는 평소에는 외부인 출입을 막기 위해 잠겨 있지만, 화재 등 비상시에는 열린다. 이 병원은 소방시설 점검을 철저히 했다. 상반기에 22일, 하반기는 26일에 걸쳐 정밀점검을 했다.

그러나 화재로 인한 불편은 피할 수 없었다. 토요일이라 수술은 없었지만, 응급환자들이 병원을 이용할 수 없었다. 한 환자 가족은 "뇌출혈로 가장 가까운 세브란스병원으로 가려 했지만 화재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가야 했다"며 "시간이 지체되면서 상태가 나빠졌다"고 말했다.



매년 '실전 같은 훈련'이 신촌세브란스 살렸다 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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