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고 닳아 텅빈 당신의 가슴, 사색으로 채우세요

    입력 : 2018.02.05 03:04

    ['소진시대의 철학' 쓴 김정현 교수]

    "지금은 '피로사회' 넘어 '消盡시대'
    니체 행복론에 해법이 있어…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삶' 복원을"

    "힘들어 죽겠다"는 말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피로를 넘어서서 이젠 심신이 다 닳아 없어질 것만 같다. 그래도 사람들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 쓰느라 헉헉대고, 지칠 대로 지쳐 탈진 직전이다. "결국 존재의 불안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소진 시대의 철학'(책세상)을 낸 김정현(58) 원광대 철학과 교수가 말했다.

    한국니체학회장을 지낸 김 교수는 우리가 사는 지금을 '소진(消盡) 시대'라 명명했다. 한병철 독일 베를린예술대 교수의 '피로사회' 개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한병철은 현대 사회가 사람들이 스스로를 착취하도록 내몰고 있다고 봤다. 김정현은 그렇게 피로해진 사람들이 안으로 더욱 공허해지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쥐불놀이를 보신 적 있나요? 불을 빠르게 돌릴수록 원을 그리는 테두리는 아주 밝아지지만 그 안은 텅 비어 버리게 됩니다."

    서울 삼선동 자택에서 만난 김정현 교수는 “‘소진 시대’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선 정신의 근육을 키우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삼선동 자택에서 만난 김정현 교수는 “‘소진 시대’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선 정신의 근육을 키우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한마디로 자아(自我)가 소진된다는 것. "지하철을 타 보면 사람들은 죄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긴커녕 끊임없이 정보를 좇느라 주변을 살펴보지 않지요." '정보의 양이 급속히 증가하면 그 현상에 대한 맹목성이 확산된다'는 하이데거의 말이 적중한 셈. 맹목적으로 바쁜 환경에선 성찰이나 자기 존중 대신 이기적 자아에 몰입하거나 돈·권력·외모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유아도취적 자아과잉증후가 판을 치게 된다.

    출구가 있을까. 흔히 충고하듯, 모든 걸 내려놓고 마음을 비워야 할까? "아닙니다. 바빠 죽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생각할 시간마저 없느냐'고요. 숨 쉴 틈이 있다면 생각할 시간도 있는 겁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한가로움의 복원'이다. 어감과 달리 대단히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닿을 수 있는 경지다.

    김 교수는 "육체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하듯, 사색을 통해 정신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떠오르는 숱한 생각들 속에서 한두 꼭지, '내가 제대로 의미 있게 살고 있는가'를 잡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걸 다른 시각으로 보면 안 돼?'라는 새로운 해석, 이기심을 버리고 주변 사람과 사회, 나아가 전 지구의 문제를 생각하는 단계로 이어지게 되며, 점차 내면이 차오르는 충일감을 느낀다. "프로이트 개념을 빌리자면 내면적인 자전(自轉)과 사회적인 공전(公轉)이 공존하는 건강한 삶에 가까워지는 것이죠."

    취침 전 졸린 눈을 부릅뜨고 명상 CD를 억지로 듣는 식의 사색이 아니라 '의미를 갖춘 사색'이라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논어의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즉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말과도 통한다.

    자신의 전공인 니체 철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니체는 병든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고요히 성찰하는 '비타 콘템플라티바(vita contemplativa·사색적인 삶)'를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또 이를 위해 '망각' '조형력' '창조성'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과거의 상처를 빨리 '망각'해야 합니다. 그다음엔 불행과 시련을 자신에게 의미 있게 만드는 '조형력'이 필요하고요. 그러면 '창조성'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치유 과정이 더 힘들어서 스스로 소진되진 않을까?'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하게 되지 않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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