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반도체 경쟁 때 일본 제압, 이제 '5G'로 世界를 한판 흔들고 싶은데…"

    입력 : 2018.02.05 03:04

    [경찰 압수 수색 이틀 뒤에 만난… 황창규 KT회장]

    평창올림픽 5G 홍보관개관식에 압수 수색당해… 그날에, 그렇게 급박했나?
    "제가 무슨 말 하겠습니까"
    "2020년 도쿄올림픽에 일본은 5G 선보이려고 수십조원 투자했지만 우리가 치고 나왔던 것"

    경찰은 KT 전·현직 임직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성남 본사와 광화문 지사, 회장 집무실을 압수 수색했다. 그 시각 황창규 KT 회장은 평창올림픽을 위한 'KT 5G 홍보관 개관식'에 가는 중이었다. 세계 최초로 5G(5세대 이동통신)가 준비 완료됐음을 선포하는 자리였다. 바로 이날 경찰의 압수 수색을 받은 것이다.

    취재진은 5G 평창올림픽 행사보다 압수 수색에 더 관심이 많았다. 황 회장은 쏟아지는 질문을 피해야 했다. 어떤 언론 매체에서는 '수사의 칼날이 황 회장의 턱밑까지'라고 표현했다.

    그와 인터뷰 약속을 했을 때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몰랐다. 압수 수색 이틀 뒤 그를 만났다.

    황창규 회장은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면 평창과 강릉에 와서 테스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창규 회장은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면 평창과 강릉에 와서 테스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이 집무실도 압수 수색당한 장소이군요. 행사는 제대로 치렀습니까?

    "강릉으로 가는 KTX 안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기분이 뭐랄까….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됐습니다. 홍보관 개관식 마친 뒤 경포호 일주도로에서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정보통신기술이 결합된 차) 세 대로 25분간 자율 주행하는 모습도 선보였습니다."

    ―자율주행차가 5G와 관계있습니까?

    "구글(Google)이 하는 자율주행차는 상용화할 수 없습니다. 차에 레이더와 센서 등을 달고 있는데, 그 정도로는 현실 도로에서 자율주행이 어렵습니다. 실험용에 불과한 거죠. 가령 GPS로 정보를 받는 내비게이션의 거리 오차는 몇 m에 이릅니다. 충돌이나 접촉 사고가 끊이질 않을 겁니다. 자율주행을 완벽하게 하려면 5G 안에서 해야 합니다."

    ―자율주행차를 개발해 봐야 5G가 안 갖춰지면 상용화가 어렵다는 뜻입니까?

    "테슬라나 벤츠가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면 이곳에 와서 테스트해야 할 겁니다. 평창·강릉에 5G를 구현할 수 있게 광케이블과 기지국 등을 3년간 깔았습니다. 세계에서 최초로 5G가 구현되는 곳을 만든 겁니다. 이번에 45인승 대형 버스가 도로에서 자율주행 할 수 있었던 것은 5G 기지국들에서 위치와 운행과 관련된 방대한 정보를 실시간 전달받았기 때문입니다. KT가 개발한 5G용 내비게이션의 거리 오차는 몇 ㎝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5G가 어떻다 한들, 평창올림픽 시합을 보는 입장에서는 무슨 차이를 느낄 수 있겠습니까?

    "TV 화면을 통해 놀라운 차이를 보게 됩니다. 봅슬레이는 시속 130~150㎞로 달립니다. 그동안 시합 출발과 중간, 도착만 보여줬지요. 하지만 평창올림픽에서는 장비 앞에 구멍을 뚫고 카메라와 함께 28g짜리 통신 모듈을 집어넣습니다. 청룡열차를 타는 것처럼, 빠른 속도에 선수가 느끼는 반응과 감정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피겨 경기장에는 고성능 카메라를 100대 깔아 놓았습니다. 4회전 연기를 할 때 모든 각도에서 다 찍습니다. 이 영상들이 서버로 와서 편집돼 다시 송출됩니다. 단 몇 초 걸립니다. 회전 장면을 정확하게 다 볼 수 있게 됩니다."

    ―이런 5G 인프라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을 텐데, 평창올림픽 행사를 위해서라면 과연 현명한 투자일까요?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컬러 TV 위성중계를 한 뒤 일본은 수십 년간 TV와 반도체 등 전자시장을 석권했습니다. 5G의 충격은 그보다 더 클 겁니다. 사실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5G를 선보이려고 수십조원을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치고 나왔던 겁니다."

    ―기술이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 치고 나올 수 있는 겁니까?

    "3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제가 '평창올림픽에서 세계 최초 5G 시범 서비스를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제가 일본 측에 '우리가 2년 앞서 선보이겠다. 협조해주면 이런 노하우를 도쿄올림픽에 건네주겠다'고 설득했습니다. 이렇게 주도권을 따낸 것입니다."

    ―제 말은 그때 우리에게 그런 기술이 준비돼 있었느냐는 겁니다.

    "제가 삼성전자 사장이었을 때 반도체를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반도체·TV·휴대폰을 판다고 삼성이 IT 그룹은 아닙니다. 구글처럼 플랫폼(컴퓨터 시스템의 기본 운영체제)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KT 회장이 되면서 그런 역량을 키우고 싶었습니다. IT보다 훨씬 임팩트가 있는 플랫폼을 갖고 세계를 흔들어보겠다는 것이지요."

    ―그게 5G였습니까?

    "요즘 유행하는 4차 산업혁명의 길을 5G가 닦는 겁니다. 저는 회장 취임 뒤 '5G로 빅데이터, 블록체인, 에너지 관리, 보안 등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기초 기술, 재원, 자원이 있습니까.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정보통신기술의 경쟁력과 5G의 선도력입니다. 4차 산업혁명은 5G에서 올라타야 경쟁력이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무성한데, 너무 무성해 실체가 모호할 때가 있습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도 5G 네트워크가 판을 깔아줘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속도·용량·연결성이 관건입니다. '제4차 산업혁명' 용어를 유행시킨 클라우스 슈바프 다보스포럼 회장이 쓴 책에는 5G가 빠져 있습니다. 그와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개정판에는 5G의 중요성을 담겠다고 했습니다."

    ―세계 무대에서 5G를 선도해 왔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그건 사실입니다. 작년에 하버드대에서 'KT의 기가토피아(GiGAtopia)'에 대해 사례 연구를 했습니다. 올해는 '스마트 에너지 사업'에 대해 사례 연구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는 집단은 다 알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글로벌 화두이고 국가 간 전쟁이라는 것을, 그 핵심에 5G가 있다는 것을. 저는 이번 평창올림픽을 5G 상용화의 데뷔 무대로 봤습니다."

    ―평창올림픽에 5G를 선보였다고, 우리가 미국 등 선진국과의 표준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작년에 삼성·인텔·노키아·에릭슨·퀄컴 등 글로벌 기업이 참여해 '평창용 5G 표준'을 완성했습니다. 북미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은 우리의 기술 협력사가 됐습니다. 평창에서 선보이면 모든 나라가 따라올 겁니다. 특허료, 관련 장비, 소프트웨어도 우리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인텔이나 퀄컴이 칩(CPU)을 만들어도 우리 스펙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4일 열리는 미국 수퍼볼의 스타디움에서 KT의 5G를 선보입니다. 우리가 표준을 주도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미래를 얘기하지만 구시대적 경영 방식에 발목이 잡힙니다. 지난 국정 농단 사건 때 KT도 연루됐습니다. 차은택씨 측근을 마케팅 담당 임원으로 채용했고 최순실씨가 실소유한 광고 회사에 68억원 규모의 광고를 몰아줬는데.

    "청와대로부터 한 광고 전문가를 임원으로 채용하라는 압박을 받았지만 수개월을 버티었습니다. 이렇게 연결될 줄은 몰랐습니다. KT는 강요 압박을 받은 피해자로 소명이 됐습니다. 저는 정도 경영을 내세웠습니다. 기술로 승부하고, 없던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에는 KT 임원들이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사서 현금화하는 '상품권깡' 수법으로 불법 정치 후원금을 줬다는 혐의인데.

    "정치인 후원금을 그런 식으로 내온 관행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수사를 하겠다고 하는 상황이니 더 이상 답변하기 그렇습니다."

    ―평창올림픽 5G 홍보관 개관식 날에 압수 수색을 당했습니다. 하필 그런 날을, 그렇게 급박했을까요?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경찰이 독자적으로 결정했을 리는 없고, 현 정권이 본인을 흔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까?

    "제가 뭐라고 답변하기가 그렇습니다."

    ―황 회장은 지난해 3월 이사회 의결로 연임이 됐지만, 정권이 흔들어대면 어떻게 할 수가 없겠지요?

    "KT 조직원은 본사 2만3000명, 계열사까지 합치면 6만명입니다. 취임했을 때 패배주의와 적자, 시장점유율 하락 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저는 '1등 DNA'를 강조했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뿌리를 내리게 했으면 제 임무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로 승부하는 사람이니까요."

    그의 회장 취임 이후로 KT 계열사의 구조 조정과 명예퇴직이 이뤄졌다. 약간의 반발과 잡음은 있었지만, 영업이익이 2년 연속 1조원이 넘게 신장했다. 국제신용평가기관들로부터 A등급을 받았다.

    ―KT는 공기업에서 민영화가 된 지 오래됐지만 정권을 잡으면 자신들의 전리품이라고 여전히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 시절 NEC 등 일본 반도체 업체를 제압했습니다. 반도체에서 기술, 속도, 표준을 우리가 주도했고, 이 과정에서 '황의 법칙(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는 1년에 두 배씩 증가)'이 만들어졌습니다. PC에서 모바일로 새로운 시장이 열렸습니다. 이번에도 저는 한판 해 보고 싶었습니다. 5G는 산업 역사에서 정말 중요합니다."

    ―얼마 전 다보스포럼에서 "이제 경제가 사람과 정치를 끌고 가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는데, 우리 현실에서는 경제가 정치에 끌려가고 있지 않습니까?

    "(쓴웃음을 지으며) 세계 흐름은 그런데… 다보스포럼에서 스위스 전(前) 대통령을 만났는데 '초정밀 시계와 관광산업으로 미래를 영위할 수 있겠나'고 걱정했습니다. 미래의 혁명적 환경 변화에 선진국 지도자들은 자신의 국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느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황창규 회장은

    1953년생.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전자공학 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책임연구원과 인텔 자문 역. 1989년 삼성전자 합류. 2001~2007년에는 메모리사업부 사장. 세계 최초로 265D램 개발해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로 도약. 2010년 지식경제부 지식경제R&D전략기획단 단장, 2014년 KT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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