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 300개는 어떻게 예술이 되었을까

조선일보
  • 변희원 기자
    입력 2018.02.03 03:01

    '현대 미술의 寶庫' 디아파운데이션 수석 큐레이터 커트니 마틴
    롯데뮤지엄과 '댄 플래빈…' 전시

    "모든 사람이 좋아하면 예술 아니죠"

    어두운 방. 흰 벽에 노란색 형광등 하나가 45도로 비스듬히 세워졌다. 벽 틈새로 스며든 햇살 같기도 하고, 교회 스테인드글라스처럼도 보인다. 한 관람객이 지나가며 말했다. "그럼 우리 집 형광등도 예술?"

    댄 플래빈 작품 앞에 선 커트니 J 마틴.
    댄 플래빈 작품 앞에 선 커트니 J 마틴. /롯데뮤지엄
    사람들 호기심과 불평이 동시에 쏟아진 이 작품은 댄 플래빈(1933~1996)의 첫 작품 '1963년 5월 25일의 사선: 콘스탄틴 브랑쿠시에게'이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7층에 새로 문을 연 롯데뮤지엄 개관 전시 '댄 플래빈, 위대한 빛'에서 볼 수 있다. 이 전시는 현대 미술의 보고(寶庫)라 불리는 미국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이하 디아)의 협력으로 마련했다. 디아는 1960~70년대 현대 미술 걸작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비영리재단으로, 뉴욕 첼시에 위치한 '디아 첼시(Dia:Chelsea)'와 허드슨 밸리에 위치한 '디아 비콘(Dia:Beacon)'을 운영한다.

    형광등이 작품… '헛소리'라 욕먹기도

    뉴욕타임스(NYT)는 플래빈을 일컬어 "조명기구를 처음, 그리고 가장 완벽하게 사용한 예술가"라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플래빈이 1963년부터 1974년까지 제작한 초기작 14점을 볼 수 있다. 롯데뮤지엄 개관식에 참석한 디아의 수석 큐레이터 커트니 J 마틴에게 "댄 플래빈에 대한 관람객 반응이 극단적"이라고 하자, 그는 "모든 관객이 작품을 좋아할 필요도, 모든 작품을 관객이 좋아할 필요도 없다"고 답했다. "저는 마음에 들지 않은 작품을 봤을 때 오히려 그 작품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돼요. 미술은 사람을 기분 좋게도 해주지만, 사람에게 도전하기도 하거든요. 좋은 작품이라면, 사람마다 다른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도 댄 플래빈의 세계를 이해하기엔 전시가 빈약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롯데뮤지엄 측은 "국내 한 번도 소개되지 않은 작가라 의미가 있다"며 "플래빈이 한국에서 군 복무 한 인연도 염두에 뒀다"고 했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가톨릭 신부가 되고 싶었던 플래빈은 1954~55년 한국 오산 제5공군본부에서 기상병으로 근무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경비원과 엘리베이터 관리인 등을 하며 미술 활동을 시작했다.

    1963년 244㎝짜리 노란색 형광등을 벽에 세운 뒤 플래빈은 "조명을 정교하게 배치하면 공간을 해체하고 유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60년대 형광등으로만 이뤄진 작품을 공개했을 때 평단과 대중의 반응은 양극단으로 나뉘었다. 마틴은 "플래빈의 작품을 '개소리(bull shit)'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고,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평가는 바뀌었다. 예술에서는 시간(duration)도 중요하다"고 했다.

    댄 플래빈의 1973년 작‘무제: 당신, 하이너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
    댄 플래빈의 1973년 작‘무제: 당신, 하이너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 형광등 300여개로 40m 길이의 벽을 만든, 일명‘녹색 장벽(Green Barrier)’이다. /롯데뮤지엄
    빛의 마법… 오래 봐야 잘 보인다

    전시작 중 눈여겨봐야 할 작품 중 하나가 '무제: 당신, 하이너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이다. 348개 초록색 형광등을 40m 길이로 엮어 '초록색 장벽'으로도 불린다. 처음엔 눈이 시릴 만큼 온통 초록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른 것들이 보인다. 빛이 하얗게도 보이고, 넓었던 방이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플래빈이 애정을 표한 '하이너'는 디아 설립자 중 하나인 하이너 프리드리히다.

    댄 플래빈 관람법을 마틴에게 물었다. "전시가 충격적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미술관에서 누릴 수 있는 사치는 바로 시간이죠. 충분히 느낄 만큼 미술관에 머무르세요. 이리저리 움직이면서요. 5분 작품을 보고 15분 정도 잠시 떠났다가 다시 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빛이며 공간이 분명 달라 보일 겁니다." 전시는 4월 8일까지. (02)3213-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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