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목발 탈북

조선일보
  • 안용현 논설위원
    입력 2018.02.02 03:17

    어제 아침 조선일보 1면에 왼쪽 손발이 없는 탈북자 지성호씨가 트럼프 대통령의 미 의회 연두교서 발표장에서 목발을 번쩍 치켜든 사진이 실렸다.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를 비롯해 참석자 전원이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12년 전 목발을 짚고 1만㎞의 사선(死線)을 넘었던 용기와 의지에 대한 찬사였다. 트럼프는 "그의 이야기는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모든 인간의 열망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북한은 '혁명 수도' 평양에 장애인과 거지가 없다고 자랑한다. 장애인과 극빈자에 대한 북 정권의 반(反)인권적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씨가 바로 그 장애인이자 거지 출신 탈북자다. 그는 어린 시절 '꽃제비(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북 어린이)'였다. 식량을 구하려다 기차에서 떨어져 왼쪽 손발을 잃었다. 그는 '구걸하는 장애인은 죽어야 한다. 나라 망신시킨다'는 말을 듣고 탈북을 결심했다고 한다. 

    [만물상] 목발 탈북
    ▶김정은으로선 트럼프의 제한적 타격인 '코피(bloody nose) 전략'보다 지씨 같은 탈북자가 전하는 '진실'이 더 무서울 수 있다. 대한민국에 먼저 온 탈북자들이 자유롭게 잘 산다는 소식이 북에 좍 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김정은이 가장 잘 안다. 이를 막으려고 북한은 탈북 행위를 반역죄로 처벌한다. 탈북 위험이 커지면서 브로커에게 줘야 하는 돈도 2012년 1인당 300만원대에서 최근에는 1500만원까지 치솟았다.

    ▶탈북자가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것만큼 강력한 대북 압박도 없다. 그러나 북한인권정보센터가 며칠 전 발표한 탈북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탈북자가 22.9%에 달했다. 실제로 그 '지옥'으로 돌아갈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가족이 그립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진정 그들을 이해하고 감싸안고 있는가 돌아보게 된다.

    ▶3만 탈북자는 '목발 탈북' 못지않은 절박한 갈망을 안고 고향을 떠났다. 모두가 북한 폭정과 인권 탄압에 대한 증언자이다. 그러나 우리 국회에서 탈북자가 기립 박수를 받는 장면을 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북한 심기를 살피느라 '탈북자'와 '북한 인권'이 금기어로 취급받는 실정이다. 목발 치켜든 지성호씨를 왜 미국 의회에서 봐야 하나. 트럼프는 조만간 탈북자 5~6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할 것이라고 한다. 그가 우리 국회에서 목발을 횃불처럼 치켜드는 장면을 볼 날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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