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 장관보다 한 수 위였다

조선일보
  • 김효인 기자
    입력 2018.02.01 03:33

    장관 "미세먼지 WHO 실내기준 없다" 엄마들 "기준 있다"
    장관 "교실 공기 시범측정하자" 엄마들 "이미 하고 있다"

    '미세먼지 대책촉구' 회원 50명
    김은경 환경과 간담회서 "실망" "페놀 아줌마라 믿었는데 속상"
    전문가 수준으로 고난도 질문… 장관 "대책 나오면 용서해달라"

    "답변에 실망했다. 장관님이 마인드(생각)를 바꿔야 한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얘기만 하니 속상하다."

    31일 서울 대한상의 회의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정부의 미세 먼지 대책과 관련해 '엄마 부대'가 주축인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혼쭐이 났다. 7만여 명이 가입한 인터넷 카페 '미세 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미대촉)' 회원 50여 명과 이날 2시간여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다. 일부 회원은 웬만한 전문가 뺨치는 고난도 질문으로 여러 번 김 장관을 당황하게 했다. 결국 김 장관은 당초 한 시간으로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긴 간담회 말미에 이르러 "(정부) 대책이 마련된다면 용서해 주시겠느냐"고 물러서야 했다.

    중국발 미세 먼지 놓고 설전

    엄마 회원들은 맨 먼저 중국발(發) 미세 먼지 문제를 제기했다. "중국이 우리나라 쪽으로 공장을 이전해 베이징의 미세 먼지 농도는 좋아졌을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더 심해질 수 있다"며 정부 대책을 물었다. 최근 중국의 공장 이전 정책이 우리나라에 악재가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이었다.

    3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시민단체 ‘미대촉(미세 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 회원들이 김은경(오른쪽 아래) 환경부 장관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날 미대촉 회원들은 “장기적인 대책도 필요하지만, 당장 아이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단기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3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시민단체 ‘미대촉(미세 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 회원들이 김은경(오른쪽 아래) 환경부 장관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날 미대촉 회원들은 “장기적인 대책도 필요하지만, 당장 아이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단기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연합뉴스
    김 장관은 "중국이 2013년부터 대기오염이 심각해지자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써서 그간 대기오염을 30% 줄였다"면서 "사회주의 국가인 만큼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공장 폐쇄를 비롯한 강력한) 정책을 많이 시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베이징 공장이 주변부로 이전하면서 국내로 더 미세 먼지가 오게 된 것 아니냐는 '오해'가 있는데 그런 사례가 거의 없다"고 하자 반박이 쏟아졌다. 서울 광진구 한 회원은 "(정부는 중국 공장 이전) 데이터가 없다고 말하지만 2020년까지 공장 이전을 완료한다고 하니 무슨 일이 있어도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면서 "베이징 공기가 깨끗해진다고 해서 서울 공기가 깨끗해지지 않는다"고 '훈계'하기도 했다.

    김 장관이 "일본의 경우 미세 먼지의 40~70%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외부 요인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1990년대부터 공기질 개선 정책을 펴면서 우리나라에 '너희는 왜 안 줄여' 하지 않았다"고 하자 원성이 나왔다. 한 회원은 "(중국의 영향과 우리가 일본에 주는) 영향의 수치 자체가 다르다"고 반박했다.

    '엄마 회원'들 "장관 답변에 실망" 훈계

    이날 간담회에서 미대촉 회원들은 김 장관을 뛰어넘는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모습을 종종 보였다. 한 회원이 "실내외 미세 먼지 측정 기준을 세계보건기구(WHO) 수준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자, 김 장관은 "WHO는 실내 공기질 기준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한 엄마 회원은 "WHO 보고서엔 '실외 공기질도 실내 공기질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돼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WHO는 미세 먼지 25㎍/㎥을 실내외 모두 같은 기준으로 유지할 것을 권하고 있다.

    또 학교 실내 공기질과 관련해 김 장관이 "여기 계신 분들이 교실 공기질 개선을 구체적으로 해보면 어떠냐. 몇몇 학교를 선정해 구체적으로 현재 상태를 측정하고 어떤 대책이 효과가 있는지 시범 사업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엄마들은 입을 모아 "이미 하고 있다. 이미 시범학교 3군데를 선정해 조사해 보니 공기 정화 시설이 청정기보다 더 우수하다는 결과가 다 나와 있다"고 했다. 일부 회원은 "교육부가 실시한 시범 사업이라 (장관이 모르는 것 같은데) 교육부에 연락해 보시라"고 했다.

    한 회원은 "'페놀 아줌마'로 유명한 장관님에게 '미세 먼지 아줌마'로서 동지애를 느꼈는데 오늘 답변에 실망했다"고 했다. 1991년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 당시 "내 아이의 분유를 페놀로 오염된 수돗물로 탔다"며 시민운동을 펼친 김 장관의 경력을 가리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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