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12월 말 북한과 항공기 관제권 이양에 관한 합의서를 주고받은 것으로 31일 확인됐다. 이 합의는 대구 항공교통센터와 북한 평양관제센터 간에 체결됐다.

지난해 12월 초 신설된 대구 항공교통센터는 한반도 동쪽 공역(空域)의 관제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이날 북한 마식령스키장 공동 훈련을 위해 우리 선수단을 태우고 강원 양양을 출발해 방북한 우리 전세기는 대구 항공교통센터 관할 항로를 이용했다. 작년 말 체결된 남북 간 관제권 이양 합의가 적용된 첫 사례였다.

본지가 입수한 남북 간 영문 합의서(letter of agreement)에 따르면 합의는 대구 항공교통센터와 북한 평양관제센터 간에 이뤄졌다. '항공기가 상대 영공에서 자국 동쪽 영공에 진입할 경우 해당 국가 관제권을 이양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관제권 이양 지점과 연락 방법 등 세부 사항도 포함됐다. 북측 김창일 평양관제센터장이 작년 12월 25일 먼저 합의서에 서명했고, 우리 측 박순건 대구 항공교통센터장이 그다음 날 서명했다. 그 과정은 국토교통부 관계자가 중개했다고 한다.

당시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1월 1일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선수단 파견 가능성을 언급하기 6일 전이다.

김정은 위원장 신년사가 나온 이후 남북은 고위급 회담 등 일련의 협상을 통해 남북 단일팀, 마식령스키장 공동 훈련 등에 합의했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일찌감치 마식령 공동 훈련을 위한 선수단 이동에 항공기가 이용될 것이란 점을 시사했다.

이를 두고 항공업계 등에선 "정부가 작년부터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목표로 마식령 활용 카드를 제시했고 북측과 관제권 이양 합의도 그 차원에서 이뤄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마식령 공동 훈련은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초에도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정부가 지난해 출범 직후부터 '금강산 합동 문화 행사'와 함께 '마식령 공동 훈련' 개최 방안을 북측에 타진했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도 있다.

우리 국적 항공기들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5·24 조치 이후 북한 동쪽 상공 항로를 이용하지 않았다. 이 구역은 잇따른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국제적으로도 '위험 구역'으로 분류돼 왔다. 이런 가운데 31일 우리 선수단을 태우고 강원 양양공항을 출발해 갈마비행장으로 이동한 아시아나 전세기는 북측 구역에 진입하면서 새 합의에 따라 평양관제센터의 관제를 받았다.

국토부는 이번 협약 체결을 위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중국 베이징사무소 라인을 통해 북측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창일 평양관제센터장이 먼저 서명한 문서를 넘겨받아 박순건 대구 항공교통센터장이 하루 뒤 서명했다. 다시 이 문서를 북측에 보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구 항공교통센터 관계자는 "1998년 인천 항공교통센터와 평양관제센터 간에 체결된 합의가 있는데 작년 12월 대구센터가 신설되면서 동쪽 상공 관제권 문제를 북측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평창과는 무관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