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선의 워싱턴 Live] 빅터 차, '코피 작전' 반대해 낙마했다

    입력 : 2018.02.01 03:15 | 수정 : 2018.02.01 08:29

    백악관, 주한美대사로 내정 후 한국 아그레망까지 받고도 취소
    WP "제한적 北공격 놓고 이견", 빅터 차 "코피작전은 美에 위험"

    '매파 빅터 차'에도 만족 못했다… 트럼프, 더 강한 매파 찾나
    코피 작전은 제한적 선제공격으로 북한에 경고 메시지 보내는 전략
    트럼프 군사옵션 강경 입장 확인
    한미 FTA 파기 위협 전략도 노출, 백악관의 '한반도 본심' 드러나
    새 대사, 초강성 인사·예스맨 거론… 전문가 "어느쪽도 한국에 안좋아"

    빅터 차

    차기 주한 미국 대사로 내정됐던 빅터 차〈사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가 낙마했다. '코피(Bloody nose· 블러디 노즈) 작전'이라 불리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군사행동에 대한 이견이 주요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30일(현지 시각) 차 석좌를 더 이상 차기 주한 미 대사 후보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확인했다. 백악관은 이미 새 후보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력한 후보는 '군 장성 출신'이라는 설까지 돌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30일 백악관이 차 석좌 내정을 철회한 배경엔 제한적인 예방타격인 '코피 작전'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파기 위협을 둘러싼 이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공식 지명을 앞두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고위 인사들과 현안 논의 과정에서 차 석좌가 두 방안에 우려를 표시했다는 것이다.

    차 석좌의 대사 내정 철회는 단순히 트럼프 정부의 인사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 상황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본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가 언론에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군사 옵션을 고려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에이브러햄 덴마크 전 국방부 부차관보는 자신의 트위터에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코피 작전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부인할 수 없게 됐다'고 썼다. 트럼프 정부가 한국에 대해 FTA 파기 위협도 서슴지 않겠다는 입장임도 노출됐다.

    한국 정부의 아그레망(임명 동의) 절차가 끝난 이후에 일어난 일이었는데도 트럼프 정부는 한국에 사전 통보도 하지 않았다. 주미 대사관은 언론 보도가 나온 후에도 "실체가 파악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 당국자는 전날도 "국무부에선 좀 늦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고 했다.

    김정은의 신년사 이후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등으로 한국이 해빙 무드에 젖어 있는 동안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강경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강경화 외교장관과 빅터 차 CSIS 석좌 지난해 6월 미국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대표단으로 한국을 찾은 빅터 차(오른쪽)가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강경화 외교장관과 빅터 차 CSIS 석좌 - 지난해 6월 미국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대표단으로 한국을 찾은 빅터 차(오른쪽)가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정부는 아그레망까지 받은 대사 내정자를 느닷없이 낙마시키고, 북핵 위기 한가운데 있는 70년 동맹국 대사 자리를 1년 이상 비워두는 것을 감수할 정도로 북한에 대한 입장이 강경하다.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 석좌는 지난 29일 윌슨센터 토론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말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결의는 그 어느 행정부보다 강렬하다"고 했다.

    백악관의 대북 군사 옵션 중 하나인 '코피(Bloody nose) 작전'은 제한적인 선제공격을 통해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겠다는 구상이다. 차 석좌는 자신의 낙마 사실이 보도된 이날 워싱턴포스트에 '코피 작전은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위험이 될 것'이란 칼럼을 기고했다. 낙마 이유를 둘러싼 논란을 잠재우고, 대북 군사 공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려는 것이다. 일부에선 차 석좌의 낙마 이유 중 검증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검증은 아그레망 전에 완료되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불거졌을 가능성은 낮다.

    지난여름 이후 워싱턴에서 차 석좌가 차기 주한 미 대사 내정자란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비밀'이었다. 검증 과정이 너무 길어진다는 우려도 나왔지만, 존 헌츠먼 러시아 대사나 랜디 슈라이버 국방부 차관보도 거의 1년을 끌다가 지명된 사례가 있어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였다.

    차 석좌는 지난 8월 시작된 검증 과정을 마치고 12월 아그레망 절차까지 끝난 후 공식 지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평창올림픽 개막일인 2월 9일이 다가오는데도 지명이 이뤄지지 않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누구도 그 배경이나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

    이상 징후는 2주 전쯤 나타났다. 차 교수의 검증 과정을 잘 아는 워싱턴의 한 인사는 "열흘 전쯤 국무부를 통해 이상 징후를 확인한 미 언론이 취재를 시작했다. 지난주부터는 지인들도 조금씩 눈치를 챘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대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었다. 이 인사는 "최근까지도 의견 차이가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일 차 석좌가 대북 군사 공격 방안에 대한 우려를 밝힌 후 백악관은 더 이상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다가 지난 주말 대사 지명 작업 중단을 통보했다고 전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인사는 차 석좌에게 '군사 공격을 앞두고 한국 거주 미국인들을 소개해야 한다면 지원할 준비가 돼 있는지' 같은 구체적인 질문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차 석좌는 군사 공격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차 석좌는 대북 군사 공격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전문가로서 소신을 지켰으니 장기적으론 더 좋은 평가를 받지 않겠느냐"고 했다.

    국제정치학자이자 북한 전문가인 차 석좌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백악관 NSC에서 아시아 담당 국장으로 일했고 북한과 협상 경험도 있어 북핵 위기 상황에서 최적의 주한 미 대사 후보란 평을 들었다. 그럼에도 낙마한 것은 트럼프 정부 내 강온파 싸움에서 차 석좌를 지원한 온건파가 밀린 결과란 분석도 있다. '코피 작전'을 지지하는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와 '외교 해법'을 우선하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온건파의 대결에서 강경파 입김이 더 컸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막판에 마음을 바꿨을 가능성도 있다. 워싱턴의 한 한국 전문가는 "대통령이 갑자기 다른 사람을 원했을 수 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에선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고 했다.

    문제는 누가 차기 대사가 되느냐이다. 차 석좌도 북한 문제에서는 충분히 '강성'으로 분류된다. 워싱턴의 한 전문가는 "강경파인 차 석좌가 백악관 기대에 못 미친다면 더 강성 인사 아니면 백악관 말을 그대로 따를 '예스 맨' 외엔 대안이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그 어느 쪽도 한국을 위해선 좋은 소식이 아니다"면서 "차 석좌 낙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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