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 문화재 '효명세자빈 책봉 竹冊' 150년만에 귀국

    입력 : 2018.02.01 03:03

    병인양요때 외규장각서 사라져… '라이엇 게임즈'가 매입금 지원

    신정왕후 추정 초상.
    신정왕후 추정 초상.
    "이거, 혹시 죽책(竹冊) 아닐까?"

    지난해 6월 해외 경매에 나온 문화재를 모니터링하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조사활용팀이 한 프랑스 경매 사이트에서 특이한 물건을 발견했다. 한자가 새겨진 대나무 조각을 엮어 만든 유물 사진.

    '결혼 관련 문서'라고 소개된 이 유물의 추정 가격은 1000유로(약 133만원) 남짓으로 조선 왕실 의례물인 '죽책'을 똑 닮아 있었다. 죽책은 세자나 세자빈을 책봉하고 존호(尊號)를 올릴 때 그에 관한 글을 대쪽에 새겨 엮은 문서다. 죽책을 포함한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669점은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정도로 귀중한 유물이다.

    사진 원본을 구해 죽책문 내용을 판독한 팀원들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1819년(순조 19년) 세자빈을 책봉할 때 수여한 '효명세자빈(孝明世子嬪) 책봉 죽책'이었다. 효명세자빈(신정왕후 조씨·1808~1890)은 일찍 죽은 효명세자(익종)의 부인이자 헌종의 어머니다. 고종을 왕위에 올리고 대왕대비로 수렴청정을 해 '조 대비'로 알려진 인물. '흥선대원군과 고종을 역사의 무대에 올린 연출가' '명성황후에 버금가는 조선 말의 여걸'이란 말도 듣는다. 이 죽책은 1857년까지 강화도 외규장각에 소장돼 있었으나 이후 행방이 묘연해 1866년 병인양요 때 불타 없어진 것으로 여겨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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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공개된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1819년 제작됐으며 1866년 병인양요 때 사라졌다가 152년 만에 돌아왔다. /오종찬 기자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게 약탈된 것으로 보이는 이 유물은 어떻게 돌아왔을까. 소장자는 조부(祖父)인 파리 보석상 쥘 그룸바흐로부터 죽책을 상속받았다고 했다. 프랑스 민법상 선의(善意) 취득으로 물건을 소장한 개인은 도난된 지 3년이 지나면 소유권을 갖게 된다. 이 유물이 프랑스 경매에 나왔고, 일부 고미술상이 45만유로(약 6억원)에 매입하려 한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재단은 문화재청을 통해 긴급히 경매 거래 중지를 요청했고, 수수료 포함 19만5000유로(약 2억6000만원)에 죽책을 매입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31일'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을 언론에 공개했다. 모두 6면(1면당 대나무 6쪽)으로 이뤄진 죽책은 높이 25㎝, 전체 너비 102㎝ 크기로 글씨를 음각하고 금분을 넣어 만들었으며 인각·재질·서체의 기법이 모두 뛰어나다. 우의정 남공철이 글을 짓고 판돈녕부사 이만수가 글씨를 썼다. 이 죽책이 보물로 지정되면 외규장각 약탈 유물 중 첫 국가 지정 문화재가 된다. 2011년 대여 형식으로 반환된 외규장각 도서는 한국 정부에 소유권이 없어 문화재 지정이 불가능하다.

    이번 문화재 반환에도 기업이 큰 역할을 했다. 2012년 문화재청과 문화재지킴이 협약을 맺은 뒤 지금까지 후원금 43억원을 낸 온라인 게임 회사 라이엇 게임즈(한국대표 이승현)가 죽책 매입 금액을 전액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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