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가 춤추는 듯… 가야금으로 그린 '사색의 수채화'

    입력 : 2018.02.01 03:01

    [가야금 名人 황병기 별세]

    창작 가야금 개척한 국악계 巨木… '침향무'로 뉴욕 카네기홀도 감동
    10여년 방일영국악상 심사위원장… 국악계 "큰 어른 떠나 안타까워"

    "나는 젊었을 때부터 꿈도, 갖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눈에 안 띄게…."

    가야금을 필생의 업(業)으로 삼았던 황병기(82)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31일 영면했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신라의 부처가 춤추는 듯한 명곡 '침향무(沈香舞)'로 뉴욕 카네기홀에서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던 선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애도했다. 안숙선 명창은 "우리의 앞길 일러주시던 어른이 떠나시니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진 빈소에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안호상 전 국립극장장, 나덕성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배우 박정자 등 문화계 인사들 조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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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 본질은 한(恨)을 집어먹고 나오는 환희다.” 무심한 얼굴로 툭툭 농을 던지다가도 황병기는 손가락으로 가야금 열두 줄을 튕기고 긁고 누르면서 청중을 깊고 오묘한 사색의 숲으로 인도했다. /이진한 기자
    1936년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서 태어난 황병기는 6·25 때인 1951년 피란지 부산에서 처음 가야금과 연을 맺었다. 경기중학교 근처 고전무용연구소에서 들려온 가야금의 "둥둥 뜨는 듯한 소리"에 반했다. 집안 권유로 서울대 법대를 다녔지만 졸업 무렵인 1959년 서울대에 국악과가 생기면서 가야금 강사로 일했고, 1974년 이화여대 국악과 교수가 됐다.

    남들은 전통을 고수할 때 그는 창작에 매료됐다. 1962년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에 곡을 붙인 가곡이 그의 첫 창작곡이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전통의 느낌이 들면서도 독창적인 곡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이후 우리 음악사상 첫 현대 가야금 곡인 '숲'을 비롯해 "자식(작품)들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팔자를 타고났다"는 '침향무' 등 많은 곡을 발표했다.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페르시아 유리그릇에서 영감을 얻은 '비단길'을 두고 법정스님은 "산사에서 들으면 누구에겐가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신비로운 영감으로 가득한 동양의 수채화 같다. 극도로 섬세한 주법으로 울리는 소리들은 음악에서 청징함이 무엇인지 보여준다'고 극찬했다. 무용가 홍신자와 1975년 초연한 즉흥곡 '미궁(迷宮)'은 가야금 소리에 울고 웃는 사람의 목청을 섞어 충격을 던졌다. 연주를 듣다 여성 관객이 실신했고, '미궁을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괴담까지 떠돌았다. 정작 그는 "내 음악의 본질은 슬픔"이라며 "사람이 진짜 기쁘면 눈물이 복받치듯 웃음 뒤에 숨은 눈물을 포착하려 했다"고 말했다.

    해마다 정월 초하루면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들으며 한 해를 시작했다. 자신은 웃지 않고 좌중을 웃겼다. 말을 아꼈지만 빈틈없고 치밀해 중학 시절 '영감'이란 별명을 얻었다. "어려서부터 늙은이 소리를 들었으니 내 삶에 무슨 청춘 같은 게 있으리오"라고 했지만 이대 앞에서 제자와 햄버거를 먹을 만큼 소탈했다.

    2015년 3월 23일 세례를 받은 황병기·한말숙 부부와 세례 성사를 집전한 염수정 추기경.
    2015년 3월 23일 세례를 받은 황병기·한말숙 부부와 세례 성사를 집전한 염수정 추기경. /천주교서울대교구

    비디오 아티스트 고(故) 백남준은 국내 작곡가·연주자 중 1인자로 황병기를 꼽았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지냈고, 국내 최고 권위의 방일영국악상 심사위원장으로도 10여 년 활약했다. 지난해 9월 신곡 '광화문(光化門)'을 발표하는 등 말년에도 창작의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다섯 살 연상인 소설가 한말숙과 결혼해 55년 해로한 그는 2015년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세례 성사를 받아 화제가 됐다. 무신론자였던 황병기는 아내에게 "이봐,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우리 같이 천국 가서 만나야지"라고 말해 나란히 천주교 신자가 됐다. 2003년 은관문화훈장과 방일영국악상, 2015년 만해대상을 받았다.

    유족으로 한 여사와 장남인 황준묵 한국고등과학원 교수, 차남 원묵씨, 딸 혜경·수경씨가 있다. 발인은 2일5시30분. (02)3010-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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