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北엔 피학증, 企業엔 가학증

    입력 : 2018.02.01 03:17

    北 도발과 약속 파기 감싸고 두둔하면서 대북 강경 트럼프와 삐걱
    기업엔 각종 부담 안기며 적폐 수사 칼날도 겨눠… 중장기 성장에 부담 줄 것

    김창균 논설위원
    김창균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고 했다. 김정은의 답신은 나흘 후였다. 미국 알래스카까지 날아갈 수 있는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北)은 그다음 주, 또 그다음 주에도 미사일을 쐈다. 문 대통령 취임 첫 달을 그렇게 기념했다.

    문 대통령은 작년 7월 독일 방문 때 파격적인 대북 구상을 밝힐 계획이었다. 방독 하루 전인 7월 4일 북은 ICBM급 미사일을 발사했다. 문 대통령은 부랴부랴 베를린 구상 연설문을 고쳐 써야 했다. 북한이 작년 9월 6차 핵실험을 한 지 보름 만에 정부는 800만달러 대북 지원 계획을 밝혔다. "이 와중에 대북 지원이라니"라는 비난을 감수한 결정이었다. 북한은 바로 다음 날 미사일을 쐈다.

    어깃장만 놓던 김정은은 1월 1일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겠다"며 처음 손을 내밀었다. 문정인 안보특보는 김정은에 대해 "예측 가능하고 강단 있는 지도자"라고 했다. 친문(親文) 진영 원로인 이해찬 의원은 "임기 초반 빨리 남북 정상회담을 하는 게 좋다"고 했다. 김정은이 각종 도발과 악담으로 문재인 정부를 괴롭혀 온 지난날을 까맣게 잊은 분위기다. 평창 준비 과정에서도 북은 몇 차례나 약속을 뒤집는 무례를 저질렀다. 정부는 "북이 부담돼서 그랬을 것"이라고 오히려 감쌌다. 김정은 체제를 대하는 문 정부의 자세는 상대의 가혹 행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기기까지 하는 병리 현상처럼 비친다.

    금강산 남북합동문화행사와 마식령스키장 공동훈련 사전점검 차 방북한 우리측 선발대가 지난 1월23일 금강산 문화회관을 점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2월4일로 예정된 금강산 남북 합동 문화 공연을 취소하겠다고 1월29일 밤 늦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통일부 제공
    빅터 차 주한 미 대사 내정자가 돌연 낙마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군사 옵션에 우려를 표명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대북 강경론자인 빅터 차마저 성에 안 찬다는 얘기다. 그의 눈에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저자세가 어떻게 비칠지 짐작이 간다.

    2030세대는 문 대통령 적극 지지층이지만 김정은에 대한 입장만큼은 다르다. 20대 지지자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 정상회담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다"고 했다. 젊은 층의 김정은에 대한 이미지는 "갑질하는 재벌 3세 같다"는 것이다.

    갑을(甲乙) 관계는 상대적이다. 취업을 앞둔 젊은이 눈에는 재벌이 갑이겠지만, 권력 앞에선 나약한 을이다. 문재인 정부는 재벌이 근로자와 하도급 기업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이 한국 경제 고질병의 원인이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 관계자는 "재벌을 혼내준다"고 했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법인세 인상, 근로시간 단축, 각종 복지 제도 확충 등 문 정부가 쏟아내는 정책들을 한마디로 간추리면 '대기업으로부터 돈을 거둬 국민에게 나눠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기업들은 또 한편으로 적폐 수사의 칼날을 맞느라 등골이 서늘하다. 정부에 도움을 주는 기업이나 정부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기업도 예외가 없다.

    삼성전자는 2017년 귀속 법인세로 7조8000억원을 낼 전망이다. 우리나라 기업 전체 법인세의 10분의 1이 넘는다. 최저임금 17% 인상에 따른 일자리 안정기금 3조원, 기초연금 5만원 인상을 위한 2조4000억원, 아동수당 신설에 필요한 2조원 등 세 가지 복지 프로젝트의 재원 전체를 삼성전자 법인세만으로 충당할 수 있다.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질책을 받고 최순실 딸 정유라에게 승마 지원을 했던 '죄' 때문에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롯데그룹은 박근혜·문재인 정부의 연이은 사드 정책 오락가락 때문에 중국으로부터 집중 보복을 받았다. 작년 10월 현재 손실 예상액이 1조2000억원이다. 롯데 신동빈 회장은 그 와중에 횡령·배임 혐의 재판을 받았다. 작년 연말 검찰은 신 회장에게 10년을 구형했는데 법원은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징역 10년 구형에 집행유예 판결이면 무리한 수사였다는 얘기"라고 했다.

    서슬 퍼런 임기 초 정권이 기업에 손을 벌리면서 겁주고 때리기까지 한다. 정의를 실현한다는 쾌감까지 느낀다. 기업은 당장은 정부 주문대로 움직이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해외에서 사업 기회를 찾을 것이다. 일자리도 나라 밖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외국 전문가조차 "재벌에 대한 강경 노선이 정치적으로 유리할지 모르지만 한국 경제의 성장과 안정에는 부정적일 것"이라고 우려한다.

    문재인 정부의 북에 대한 피학증(症)은 안보를 위태롭게 만들고, 대기업에 대한 가학증은 경제의 앞날을 걱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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