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보다 더한 충격 온다" 영세中企, 근로시간 단축 비상

조선일보
  • 김기홍 기자
    입력 2018.01.31 03:13

    ["근로시간 줄면 일감 넘쳐도 공장 못 돌린다"]

    '68→52시간' 2월 개정 예고에
    勞使 모두 "취지엔 공감하나 속도 너무 빨라 문 닫을 판"

    中企 "구인 광고 내도 지원자 없어… 주 8시간 연장이라도 허용해야… 시행하면 불가피한 범법자 속출"
    근로자 "단축하면 월급도 확 줄어"

    "요즘 중소기업 사장들 모이면 '이제는 자식한테 회사 물려줄 생각을 접고 어떻게든 빨리 회사를 정리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자주 합니다.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근로시간까지 단축되면 회사를 운영할 방법이 없습니다."

    최근 중소기업 관련 행사에서 만난 한 중소기업 대표는 "수년 안에 회사를 정리하는 문제에 대해 심각히 고민 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 근로시간 단축 개정안이 통과돼 2~3년 뒤 중소기업들도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하면 매출 급감을 막기 위한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18일 소규모 금속·주물 업체가 몰려 있는 인천 서부산업단지에서 만난 영세 중소기업 사장들도 "최저임금 인상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근로시간 단축"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직원 10여명을 둔 A 주물 공장 H 사장은 "(인력이 늘 부족한) 중소 제조업체는 주 52시간 근무로는 도저히 운영이 안 된다"면서 "우리 같은 중소기업엔 죽으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금속 처리 업체에서 18년째 일한다는 오모(48)씨도 "대기업 노조가 근로시간 단축을 주장하지만 중소기업 현실과 거리가 멀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공장 문을 닫으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라고 했다.

    근로시간 단축 여야 합의안과 중소기업계 요구
    이곳 금속·주물 업체 대부분은 일감이 많을 땐 평일·휴일을 가리지 않고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주당 60시간 넘게 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제는 일이 힘들다 보니 신규 충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고용주와 근로자가 한목소리로 "근로시간이 줄면 일감이 넘쳐도 공장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여야는 2월 임시국회에서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주당 근로시간 단축(최대 68시간→52시간)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를 예고했다.

    중소기업계는 ▲중소기업은 근로시간 단축 시행 시기를 최대한 늦추거나 ▲근로자 30인 미만 영세 사업장은 '주당 8시간 특별 연장 근로'를 허용하는 방안 등을 호소하고 있다.

    여야는 현재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주간 40시간+연장 12시간+휴일 16시간)에서 52시간(주간 40시간+연장 12시간)으로 단축한다는 총론에는 합의한 상태다. 국회 환경노동위 여야 간사는 지난해 11월 기업 규모별로 300인 이상(2018년 7월), 50~299인(2020년 1월), 5~49인(2021년 7월) 등 3단계에 걸쳐 순차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이기로 잠정 합의하기도 했다. 여당과 정부는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계는 근로시간 단축 취지엔 공감하면서도 기업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행 시기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저임금 인상보다 근로시간 단축이 중소기업에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제품 가격 인상 등을 통해 어느 정도 부담을 덜 방법이 있지만, 근로시간 단축은 인력을 추가 고용하지 않는 이상 매출 감소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투자 여력이 있는 일부 중소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해 자동화에 눈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 지역 도금 업체 대표는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생산직 근로자를 해고하고 무인 자동화 공정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영세 중소기업은 자동화 투자 여력도 없고, 그렇다고 새로운 인력을 뽑고 싶어도 뽑을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방 영세 중소업체 직원의 태반이 신규 직원 충원이 안 돼 50·60대로 채워져 있다. 강원도 원주에서 자동차 정비 업체를 운영하는 김모(57)씨는 "지방에선 1년 내내 구인 공고를 내걸어도 전문 인력을 뽑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 중소기업 사장은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면 범법자가 될 각오를 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수도권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는 "근로시간 단축 이후 납품 일자를 맞추려면 직원 근로시간을 60시간 이상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을 위반하면 징역 2년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단축되는 근로시간보다 급여가 더 감소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약 20% 줄어도 통상임금의 1.5~2배 많은 시급을 받는 연장·휴일 근로가 없어지면 급여가 30% 이상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인천 서부산업단지 주물 업체 B 부사장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직원 30여명의 월 급여가 평균 60만원 정도 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급여 감소를 우려한 직원들이 '차라리 우리가 일을 더 많이 할 테니 사람을 뽑지 마라'고 요구해 근로시간이 단축되더라도 신규 인력을 뽑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인천 지역 금속 처리 업체에 근무하는 오모(48)씨는 "대기업 귀족 노조나 민주노총 주장은 중소기업의 현실과 거리가 멀다. 최저임금 상승이나 노동시간 단축이 말은 좋지만 정부가 대기업 노조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다가 중소기업이 모조리 문을 닫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 작성에는 김철선(서울대 사회학과 4년)·전정원(서강대 경영학과 3년)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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