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태극기 우리가 들자"

조선일보
  • 이진석 논설위원
    입력 2018.01.31 03:16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에 4·19세대는 가슴이 뛰었다. 그동안 반공(反共)의 벽에 막혔던 통일 논의가 혁명을 계기로 분출했다. 북한에 휘둘리는 감상적(感傷的) 민족주의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38선으로 허리가 끊긴 민족을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열정이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1980년대 민주화 시위 선두에 섰던 386세대들도 민족이라는 단어에 열광했다. 그들 중에는 아예 북한의 주체사상과 통일 방식을 따르자는 사람도 많았다. 요즘의 2030들은 많이 다르다. 주민들을 짓밟고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고 백주대낮에 화학무기로 테러 하는 북한에 대해 반감을 갖는다.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겠다면서 북한 눈치 보기 바쁜 정부를 못마땅해한다. 남북 단일팀 만든다는 이유로 아이스하키 여자 대표팀 선수들이 불이익을 받는 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북 선수단이 공동 입장하면서 태극기가 사라지고 '한반도기'를 흔들게 된 것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다. 

    [만물상]
    ▶회원이 3000여명인 한 대학생 단체에서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태극기를 흔들자"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소셜미디어에는 "평창에서 태극기 휘날리자"는 글이 늘어나고 있고, 청와대 홈페이지 청원 게시판에도 "2월 9일 다 같이 태극기를 듭시다"는 글이 등록됐다. 한 네티즌은 "개막식 날 태극기 연을 날리자! 개막식 상공에 태극기 연이 날면 전 세계에 태극기가 방영된다"고 썼다. 어떤 이는 "개막식 날 차에 태극기를 달자"고 했고, "올림픽 기간에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자"고도 한다.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고 야유하는 '평창 유감'이라는 제목의 랩이 인터넷에서 퍼지고 있다. '태극기 내리고 한반도기 올리기/메달권 아니면 북한이 먼저/공정함과 희망 따윈 니들에겐 없어…/전 세계가 비웃는 평양올림픽 난 싫어'라고 정부를 비판한다. 욕설범벅이고 편향됐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유튜브에서 불과 며칠만에 조회 수 60만을 넘었다. '사이다' '속이 다 시원하다'는 댓글이 많다.

    ▶"젊은 층이 보수 정권 10년간 제대로 된 통일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여당 관계자의 발언이 이런 움직임에 불을 질렀다는 말도 나온다. 2030세대는 "우리는 천안함(폭침)과 연평도(포격)를 직접 목격한 세대"라고 반박한다. 유치환 시인은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고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했다. 태극기 휘날리겠다는 아우성의 의미를 정부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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