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금강산에서 진행키로 했던 남북 합동 문화 공연을 취소한다고 1월 29일 늦은 밤 통보했다. 1월 17일 남북 실무 회담 합의 사항을 일방적으로 깬 것이다. 북은 현송월 파견도 당일 취소했다가 다음 날 아무런 이유 설명 없이 번복했다. 예술단 파견 경로도 "판문점을 통해 파견하겠다"고 했다가 '경의선 육로'로 바꿨다. 북은 금강산 합동 공연과 함께 합의했던 마식령 스키장 공동 훈련에 대해서는 취소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마식령 스키장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대표적인 치적 사업이다. 그러나 이 역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정부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시동이 걸린 남북대화를 미북 대화로 이어나가 북핵(北核) 문제를 풀겠다는 구상을 밝혀왔다. 문정인 대통령 안보특보는 29일 "평창올림픽을 통해 북한이 예전과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라며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로 인정받고 싶으면 정상적인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올림픽 기간에 깨닫지 않겠느냐"고 했다.
북은 1월 한 달 동안 합의했거나 사전에 알려왔던 일정이나 계획을 제멋대로 세 차례나 변경하거나 파기했다. 평창올림픽 부대 행사 문제를 놓고도 이럴 정도니 김정은 체제의 존망(存亡)이 달려있는 핵(核) 문제에서 북이 어떤 태도로 나올 것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국가 간 국제 정치에서 선의(善意)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정은은 핵을 갖는 것이 자신에게 손해가 돼야만 비핵 협상을 한다. 정부가 올림픽을 통해 북의 이 전략적 계산이 바뀔 수 있다고 본다면 햇볕 우화(寓話)류의 순진함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북이 평창 준비 과정에서 보여온 행태를 통해 그들이 올림픽 참석을 결심한 이유가 점점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국제사회 대북(對北) 압박의 가장 약한 고리인 남측과의 대화 공세를 통해 자신을 죄어오는 제재망을 흔들어 놓겠다는 것이다. 합동 공연을 취소한 진짜 이유 역시 남북이 약속한 각종 행사의 유엔 제재 위반 가능성을 우려하는 남측 여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북은 이대로라면 자신들이 노렸던 제재 구도 와해가 어렵다고 보고 대화를 중단할 수도 있다는 위협으로 남측 정부를 겁주고 길들여 보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정부가 평창을 통해 북과 대화 통로를 열고 유지하겠다는 생각 자체는 필요하다. 다만 대북 제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손상시키지 않으며 만약 대북 제재와 남북대화가 충돌할 경우 대북 제재를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북이 깨닫게 해야 한다. 그래야 북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