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마음 사이] "딸들은 안줘" 태광 이임용 회장의 유언... 性차별이어도 법원은 '인정'

입력 2018.01.31 08:30


“세 자매에게는 별도의 재산 상속을 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딸들은 어머니와 오빠, 남동생의 상속에 대하여 관여하지 말기를 바란다.”

1996년 회사 창업주였던 아버지가 유언장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변호사가 유언장을 읽었다. ‘딸에게는 유산을 줄 수 없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은 고스란히 남동생에게 돌아갔다.

재산 상속을 포기하고 있었던 어느날, 남동생이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2010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유언장 작성 때는 몰랐던 차명주식이 모두 남동생에게 돌아간 사실을 알게됐다. 딸들은 소송을 결심했다.

지난 2013년 태광그룹 창업주 고(故) 이임용 회장의 셋째 딸 이봉훈(58)씨의 소송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씨가 남동생 이호진(55) 전 태광그룹 회장을 상대로 주식인도 소송을 낸 것이다. 그러나 1심에 이어 2심은 “상속권을 인정할 수 없다”며 각하 판결했다.

특히 2심은 유언의 효력을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딸들에게 상속을 하지 않겠다는 이임용 선대 회장의 의지가 확고했고, 이봉훈씨는 유언장을 낭독할 때 참석했기 때문에 이 같은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유언 자체가 무효가 아니라면 딸인 이씨에게 차명주식에 대한 상속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의 이현곤(49) 새올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유언의 효력은 내용 자체보다는 작성 방법과 절차 등에 좌우된다”며 “유언 내용은 명백한 성(性)차별이지만, 불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Q : 유언 내용과 법정 상속분 중 법률상 어느 것을 우선하는 건가요?

A : 어느 법 제도에서든 유언을 남기는 사람의 의사를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유언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기본 이념은 상속재산의 원소유자이자 처분권자인 본인의 의사에 대한 존중의 표시이고, 유언이 없을 경우 법에 따라 상속분이 정해지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Q : "딸에게는 상속을 하지 않는다”는 유언 자체가 성차별로 볼 수 있을텐데요. 누구든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헌법에 명시된 조항 아닌가요?

A : “딸은 안되고 아들에게 물려줘라”라는 내용 자체는 분명히 딸들에 대한 성차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헌법에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나와 있지요. 그러나 이를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법은 아들과 딸의 상속분을 1대 1로 동일하게 인정하고 있고, ‘유류분 제도’처럼 부인이나 자식 등 법적 상속자가 일정 지분을 상속받도록 보호해주는 제도도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평생을 함께 살아도 ‘사회재단에 모두 기부하라’고 당사자가 유언을 남기면 그대로 집행돼 자녀들이 반박할 수 없도록 돼 있습니다.

Q : 만약 “저 사람을 처치하면 1000억원을 주겠다”는 식의 반사회적 유언을 남겨도 법에서는 유언으로 인정해주는 건가요?

A : 반사회적인 내용의 유언은 효력이 없습니다. 민법 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는 선량한 풍속 등 사회질서에 반하는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에 대해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구체적인 사례를 법조문에 넣은 것은 아니지만 불법을 저지르는 것을 상속의 조건으로 제시한다면 법원이 사회 상규를 보고 효력을 판단합니다. 범죄에 준하는 내용이나 반사회적 내용을 담은 유언은 아직까지 본 적은 없습니다. 유언 작성시 문서 등 공식 기록으로 남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Q : “기존의 배우자와 이혼하면 유산을 주겠다”처럼 실현 가능하지만 비도덕적인 유언의 경우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요?

A : 이 역시 이론적으로는 공서양속(公序良俗: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에 반하는 내용이라서 무효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Q : 드라마에서 보면 젊은 배우자를 새로 얻어 생활하다가 기존 자식들과 재산 상속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럴 경우 상속권은 어떻게 판단해야하나요?

A : 상속권은 혼인신고 여부가 절대적입니다. 재혼으로 혼인신고가 돼 있다면 자식들 대비 새로운 배우자는 1.5배 상속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황혼 동거처럼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 경우는 새 배우자가 재산분할 청구를 하면 상속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재산을 가진 자가 사망하게 되면 재산분할 청구는 할 수 없습니다.

Q :유언의 내용과 상관 없이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도 있나요?

A :우리나라에서 유언은 기록 작성시 일정한 형식을 갖춰야지만 효력이 생깁니다. 이를 ‘유언법정주의’라고 합니다. 유효한 유언 작성 방식에는 자필증서유언, 녹음유언, 공정증서유언, 비밀증서유언, 구수증서유언 등 총 다섯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유언자가 유언을 하더라도 증인이 없다든지, 유언장에 날짜를 적지 않는 등 형식을 갖추지 않는다면 그 내용은 효력이 없습니다.

Q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갈수록 달라지고 있습니다. 딸들이 상속 소송을 내는 일도 많아지고 있나요?

A :이번 사건처럼 “딸들은 출가외인이니 유산을 주지 않겠다”는 식의 유언은 태광그룹뿐만 아니며 실제로도 많이 있습니다. 다만 과거에는 불평이 별로 없었는데 최근에는 여권의식이 성장하면서 딸들도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 입니다.

과거엔 장남에게 재산을 미리 물려주고 장남이 가장(家長) 역할을 하면서 다른 형제자매들을 보살펴주는 식의 대가족 제도가 유지됐지만 요즘은 이런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보니 딸들이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상속 소송도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반대로 딸이라고해서 불공평하게 재산을 물려주는 사례는 갈수록 줄고 있지요.

Q :요즘은 혼외자의 상속 소송도 많습니다. 만약 최태원 SK그룹 회장처럼 당당하게 혼외자의 존재를 밝힌 경우라면 이 혼외자도 상속받을 권리가 생기는 것인가요?

A :밝히는 것만으로 상속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혼외자의 상속권은 친자관계가 법적으로 확인돼야 상속권이 생깁니다. 호적에 올라갔느냐 여부가 상속권을 판단하는데 절대적입니다. 이를 위해 친자 확인 DNA 검사 등을 하는 것이구요.

Q :숨겨진 재산, 즉 차명주식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언 내용대로 또 다시 상속이 집행돼야 하나요?

A :차명계좌∙차명주식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판단해야 할 여지가 많습니다. 차명이라는 것에 대해 실질적 소유자는 있겠지만 상속인들 입장에서 보면 알 수 없는 차명재산에 대해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부분이라 법률 논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번 재판 판결의 이유를 보면 재판부는 “차명주식을 남동생이 배타적(다른 사람의 영향을 배제)으로 관리한지가 10년이 넘었다. 그렇기에 딸들에게 상속청구권이 없다”고 판결했는데 차명이라는건 어차피 알 수가 없습니다. 유언장 작성시 알 수 없는 재산을 다른 가족들이 어떻게 상속해달라고 주장하겠습까. 추후 형사사건이 불거지면서 드러난 차명재산의 소유권에 대해서는 대법원의 엄격한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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