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美가 한국에 무역 보복하는 날

입력 2018.01.30 03:15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한 인터뷰 전문을 보면 의미심장한 발언이 나온다. "북한이 (남북 대화로) 당신과 문재인 대통령을 이간질하려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나라도 그렇게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뜬금없이 "나는 지금껏 이 세상을 살았던 그 어떤 사람보다 이간질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당신이 (한·미 동맹) 이간질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는 이른바 무역이란 수단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미국)는 한국에 연간 310억달러 무역 적자를 보고 있다"며 "이건 꽤 강한 협상 칩(chip)"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동문서답(東問西答)식 인터뷰로 그의 속마음을 완전히 알긴 어렵다. 이 발언만으로 보면 문재인 정부가 한·미 동맹에서 이탈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무역이란 채찍을 들어 길들이겠다는 의중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특유의 "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 이간질을 잘 안다"는 허풍은 그가 한국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무역을 정치적으로 활용한다. 그는 중국에 대한 무역 보복 수위를 지난 대선 당시 약속했던 것보다 낮추고 있는 데 대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한국산 수입 세탁기와 태양광 부품 등에 대한 고율의 세이프가드 관세 부과 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의 행동은 LG와 삼성이 바로 여기 미국에 주요 세탁기 제조공장을 짓겠다는 최근 약속을 완수하는 강력한 유인책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EPA 연합뉴스
실제 최근 미국 상무부 관계자들을 만난 한국 인사는 "미국 인사들이 은근슬쩍 한국의 선거 일정을 물어봐서 곤란했다"고 했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등 무역 문제에서 한국 측의 정치적 타격이 훨씬 크다는 계산을 깔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한·미 동맹과 무역 협상은 별개라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며 "트럼프 행정부 들어선 노골적으로 정치와 연관시키고 있고, 의회 관계자들도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삼성과 LG의 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 수입 제한 조치)를 발동했지만,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한국의 약 3배인 일본에 대해선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당시 골프장 벙커에서 구르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고자 애썼다. 워싱턴DC에서 가장 큰 대관(對官) 업무 조직을 갖추고 활동하는 외국 회사는 일본 도요타자동차로, 삼성의 3배 규모라고 한다.

삼성·LG 세탁기에 대한 최근 세이프가드 발동이 한국에 대한 직접적 경고는 아니다. 하지만 한·미 동맹이 흔들릴 때 어떤 미국의 무역 보복이 가해질 수 있는지를 선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1980년대 세계를 주름잡던 일본 반도체가 몰락한 도화선(導火線)은 기술 부족이 아니라 미국의 반(反)덤핑 직권 조사를 통한 무역 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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