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걱정되는 '워라밸' 신드롬

    입력 : 2018.01.30 03:14

    일과 여가의 균형 重視하는 '워라밸' '욜로' 급속 확산
    해외여행 경비로 작년 26兆… 생산성 향상도 꼭 이뤄져야

    김홍수 경제부장
    김홍수 경제부장

    최근 가족과 함께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파리 특파원에서 서울로 귀임한 지 7년 만의 유럽 여행이었다. 그런데 관광지마다 한국인이 차고 넘쳐 깜짝 놀랐다. 바르셀로나~그라나다 노선 항공기는 승객 절대다수가 한국인이어서 한국 국내선 항공기를 탄 듯한 느낌이었다.

    알람브라 궁전 부근 5성급 호텔은 파격적인 숙박료(1박 12만원)로 충격을 안기더니, 한글 안내문으로 또 한번 놀라게 했다. 생수(生水)에 영어, 불어, 독일어, 한국어 설명을 붙여놨는데, 한글로 '아직도 물'이라고 써놓은 게 아닌가.

    구글 번역기가 영어 'still water'를 오역한 결과였다. 지중해 고급 휴양지의 4성급 호텔에선 '농심 신라면' '농심 육개장 사발면'이라는 이름의 5유로(약 6600원)짜리 룸 서비스 메뉴를 팔고 있었다. "한국 손님이 얼마나 많으면 이런 서비스까지…."

    관광지엔 중장년층 단체뿐 아니라 개별 여행을 나온 한국인 청춘 남녀가 넘쳐났다. 특파원 시절 봤던 과거 장면과 비교하면 청년들의 여행 행태가 사뭇 달랐다. 배낭을 멘 채 값싼 유스호스텔을 전전하는 게 아니라 코트를 멋지게 차려입고, 맛집과 특색 있는 호텔을 섭렵하며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청년들 사이에 일과 여가의 균형을 중시하자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유행하고, 한 번뿐인 인생 즐기며 살자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인생관이 확산되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우리가 이렇게 흥청망청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탑승수속 카운터 전광판 밑에서 여행객들이 수속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조선일보 DB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여행 경비로 쓴 돈이 250억달러(약 26조원·11월 말 기준)에 이른다. 그 결과 해외여행 수지 적자가 154억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현대차가 자동차 450만대를 수출해 얻은 이익(40억달러)의 4배 규모다. 청년들이 해외여행으로 안목을 넓히는 게 국가 경쟁력 향상에 도움되는 측면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가 매년 해외여행을 즐기고, 경상수지 흑자의 4분의 1 정도를 해외여행 경비로 소진하는 상황을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스페인의 경우 잘난 조상 덕에 세계적 관광자원이 많아 연간 8200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여 편하게 먹고산다. 반면 우리 선배 세대는 물려받은 자산 하나 없이 맨손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다. 이런 선배 세대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면 '여가'와 '일' 간의 밸런스 문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세계 최장 근로시간이란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중요하지만, 청년 세대가 인생의 가치를 일이 아니라 여가(餘暇)에서 찾는다면 미래가 암울하다. 자원도 자본도 빈약한 한국 경제로선 생명줄 같은 달러 자산을 계속 '재투자'하며 열심히 불려야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근로시간 단축' 정책이 '워라밸' 가치관을 더 확산시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더구나 요즘 대기업들은 앞다퉈 '휴가 많이 쓰기'를 장려하고 있다. '잘 노는 직원이 일도 잘한다'고 강조하지만, 사실 경쟁력 저하로 생산성 제고가 벽에 부딪히자, 인건비라도 줄이자는 궁여지책 성격이 더 강하다.

    '워라밸'의 확산이 기업, 근로자 모두에게 윈-윈(win-win)이 되려면 '일 문화' 선진화와 생산성 향상이 절실하다. 근무시간을 헐겁게 보내고 고(高)비용 야근으로 벌충하는 일 문화는 개선하지 않은 채, '근로 시간'만 단축해선 스페인 같은 관광 선진국의 봉 노릇만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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