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로 38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쳤다. 하루 뒤인 27일 오후 9시 29분쯤 대구 달서구 신라병원에서도 불이 났다. 그러나 환자 35명을 포함한 건물 내 46명이 전원 안전하게 대피했다. 두 곳 모두 병원이고, 5층짜리 건물로 규모도 유사하다. 그런데도 밀양은 대참사, 대구는 전원 무사였다.
생사를 가른 것은 방화문 폐쇄와 신속한 119 신고 등 기본적인 안전수칙 준수였다. 방화문은 화재 시 불길과 유독가스를 발화 지점으로부터 차단해 피난 경로를 확보해준다.
밀양 세종병원 방화문은 열려 있었다. 유독가스가 건물 내부로 삽시간에 확산됐다. 사망자 38명 중 34명이 질식해 숨졌다. 경남도소방본부는 세종병원 건물로 소방관이 진입할 당시 방화문이 모두 열린 상태였다고 28일 밝혔다. 각 층의 양쪽 비상 출입구에 설치된 방화문이 활짝 개방돼 1층에서 발생한 유독가스가 계단을 타고 순식간에 퍼졌다는 것이다.
지난달 21일 29명이 숨진 충북 제천 화재 참사 때도 방화문이 열려 있었다. 1층에서 발생한 불로 생긴 유독가스가 방화문을 지나 2층 희생자들을 삼켰다. 사망자 29명 중 20명이 2층에서 나왔다. 제천 화재를 조사한 변수남 소방합동조사단장은 "제천 화재 당시 1층 비상계단 쪽 방화문이 고임목으로 고정된 채 열려 있어 농연(濃煙·짙은 연기)과 열기가 확산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밀양 화재를 제천 화재의 판박이라고 하는 이유다.
두 화재와 대조적으로 대구 신라병원 화재는 사상자가 없었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열려 있던 방화문을 곧바로 닫았다. 유독가스의 확산을 막아 환자와 의료진이 연기에 질식하기 전에 대피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신속한 신고도 화재 초기 골든타임 확보로 희생자를 줄였다. 밀양 세종병원에서는 1층 응급실 쪽에서 연기가 발견되고 7분이나 지나서야 첫 신고가 접수됐다. 병원 직원들이 소화기를 들고 자체적으로 진화를 시도하다 화세(火勢)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반면 대구 신라병원에서는 2층 의사 당직실의 연기를 본 간호사가 즉각 신고를 했다.
대구 신라병원 화재 신고가 접수된 것은 27일 오후 9시 29분쯤이었다. 대구소방안전본부 119 종합상황실로 "신라병원 2층에서 불이 났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병원에서 2.5㎞ 떨어진 달서소방서 도원119안전센터의 소방차 등 3대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4분 뒤였다.
◇매뉴얼대로 신고부터 해야
밀양 화재 참사의 주범은 유독가스다. 38명 중 34명이 연기를 흡입해 숨졌다. 119 신고가 늦은 것에도 원인이 있다. 병원 내 방범 카메라를 보면 첫 연기는 오전 7시 25분에 발견됐다. 불과 30초 만에 1층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신고는 7분이나 지난 7시 32분에 접수됐다. 병원 관계자들이 소화기로 불길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사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허비됐다.
방화문이 열린 탓도 있다. 경남도소방본부는 밀양 화재 현장에 소방대원이 들어갔을 때 방화문이 모두 열린 상태였다고 밝혔다. 1층에서 발생한 유독가스는 방화문에 막히지 않고 그대로 중앙 계단을 타고 2층으로 퍼졌다. 신고를 받은 소방관들이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으나 커진 불길을 제압하는 데에는 3시간이 걸렸다.
신라병원에서는 유독가스 확산을 막기 위해 소방관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출동한 소방관 3명이 먼저 한 일은 2층과 다른 층을 연결하는 방화문을 닫은 것이다. 방화문은 항상 닫혀 있어야 하는 게 원칙이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래서 화재 진압 매뉴얼에 방화문 먼저 닫으라는 지침은 따로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열려 있기 일쑤다. 화재 당시 신라병원 5층과 6층에는 중환자 15명과 경증 환자 20명이 있었다. 방화문을 먼저 닫았기 때문에 연기는 위층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대부분의 환자는 자력으로 대피했다. 8명은 출동한 소방관의 도움을 받아 빠져나갔다. 의료진 11명도 스스로 피했다.
뒤이어 도착한 소방관들은 옥상으로 통하는 문을 연기가 잘 빠져나가도록 열어놨다. 최상층의 창문은 손도끼로 깨뜨려 외부 공기를 유입시켰다. 불은 의사 당직실의 침대와 전기장판 등 비품과 복도를 태우고 19분 만에 완전히 꺼졌다. 소방 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이창화 대구소방안전본부장은 "제천과 밀양 화재를 본 후, 소방 근무자들에게 방화문을 먼저 닫고 연기를 배출시키라고 강조해 인명 피해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방화문 닫아 연기 확산 막아
2015년 경기도 분당 수내동 12층 건물 화재도 대구와 유사하다. 즉시 신고했고, 방화문이 닫혀 있었다. 당시 중고생 250명이 모여 있던 2층 수학 학원의 강사는 수업 중 매캐한 냄새를 맡았다. 그는 즉시 복도로 나가 "불이야!"라고 크게 외쳤다. 동시에 119에 전화를 걸었다. 화재 대피 매뉴얼대로다. 강사는 이어 119상황실 지시에 따라 물에 적신 휴지나 수건으로 학생들의 입과 코를 막게 하고 비상계단으로 학생들을 이끌었다.
당시 1층 주차장에서 시작된 불이 10분도 안 돼 외벽을 타고 12층까지 번졌지만 침착한 초기 대응 덕에 인명 피해는 적었다. 건물 내부에 있던 290여명 중 80여명이 유독가스를 약간 들이마신 것 외에는 사망자나 큰 부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빠른 신고와 닫힌 방화문 등 기본 수칙 준수로 화재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