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고향' 양구, 박수근을 입었다

입력 2018.01.29 03:04

[히든 시티] 거리 미술관으로 변신한 양구

2002년 박수근 생가터에 미술관
작년부터 아파트·경찰서 외벽에 다양한 크기로 대표작 그려넣어…
군사도시가 예술의 도시로 부활
주민·관광객 "거리가 환해졌다"

고려 명종 때의 문신 노봉(老峰) 김극기(金克己, 1150∼1204)가 말을 몰다 한 곳에 이르러 감탄하며 읊었다. "광채가 빛나고 아롱지네/ 아름다운 수풀은 북쪽 동산에 빽빽하여/ 아득히 푸른 연기는 홍설(紅雪)이 가득하네/ 문득 이곳이 신선의 동부(洞府)인가 의심되고/ 티끌 세상임을 누가 알랴."

'광채가 빛나고 아롱지던 땅'은 높디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에서도 궁벽하기로 알려졌던 양구(楊口)다. 당시만 해도 양구는 들판이 기름져 신선과 더불어 살만한 곳이었다. '양구 순민(順民)'이라 할 정도로 순박한 인심이 넉넉했다. 그러나 6·25전쟁이 '아롱지던 땅'에 피바람을 몰고 왔다. 백석산 전투, 도솔산 전투, 가칠봉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대우산 전투, 949고지 전투 등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요즘 양구 인구보다 더 많은 군인이 당시 전투에서 산화했다.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상리 군인아파트에 그려진 아기 업은 소녀.
아파트 한쪽 벽이 커다란 캔버스로 변했다.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상리 군인아파트에 그려진 아기 업은 소녀. 정식 작품명은‘길가에서’다. 작품 속 소녀는 그의 맏딸인 박인숙씨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구군
휴전협정 이후에도 군부대가 주둔하며 양구라는 소도시는 군사 도시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1973년 소양강댐이 건설되며 육지 속 고도(孤島)로 전락했다. 한때 3만9000명에 달했던 인구는 2만1000명까지 떨어졌다. 변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군사 도시가 '박수근'이란 옷을 입으며 다시 '광채'를 내기 시작했다.

◇군사 도시에 불어넣은 예술의 숨결

박수근(1914∼1965)은 강원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에서 태어났다.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양구군 양구면 정림리 부농가 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라고 썼다. 딸만 셋이던 집에 태어난 귀한 장남이었다. 부유했던 집은 부친의 사업 실패로 몰락했다. 일찌감치 그림에 재능을 보인 박수근은 양구공립보통학교를 다닐 무렵 양구의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스케치를 하고 농가에서 일하는 여인과 나물 뜯는 소녀 모습을 그렸다.

박수근의 고향 양구가 그를 다시 품에 안은 것은 2002년 10월이다. 양구군은 오지로만 알려진 고장에 예술의 숨결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로 박수근의 생가 터 9만9000㎡ 부지에 박수근미술관을 세웠다. 미술관 건물은 2014년 작고한 건축가 이종호가 10년이 넘도록 매달려 이뤄낸 역작이었다.

양구군은 미술관에 군비로는 적지 않은 21억원을 들였다. 그러나 개관 때만 해도 진본 그림은 한 점도 없었다. '국민 화가'의 고향에 알리려는 양구군의 끈질긴 노력에 하나둘 후원자가 모이기 시작했다. 개관 15년이 지나자 그의 유품과 유화, 수채화, 드로잉, 판화, 삽화 등 작품 607점을 갖추게 됐다.

개관 첫해인 2002년 미술관을 찾은 관광객은 6500명이었다. 작품이 불어나며 관광객도 늘었다. 2014년부터는 해마다 4만명 이상이 찾는다. 지난해는 6만명이 넘어 양구 문화 예술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군사 도시 양구가 커다란 미술관으로

양구경찰서 인근 건물에 그려진 박수근의‘빨래터’.
양구경찰서 인근 건물에 그려진 박수근의‘빨래터’. 박수근은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된 ‘빨래터’외에도 여인들이 빨래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을 여러 점 남겼다. /양구군
지난해 양구는 또 한 번 '박수근'을 입고 다시 태어났다. 군은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1억2000만원을 들여 작은 도시 곳곳에 박수근 그림을 그려넣었다. 군이 진행하는 '지역 대표 문화 이미지 사업'이다. 어둡고 칙칙한 콘크리트 건물 외벽을 캔버스 삼아 벽화 전문 화가들이 박수근의 대표작을 그려 넣었다. 양구읍 상리 군인아파트엔 '길가에서', 양구군문화복지센터엔 '골목안', 양구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건물엔 '나무와 두 여인', 보배아파트엔 '나무밑' '골목안' '노상' '귀로''행인' '휴식' '길' '농악', 양구경찰서 인근 건물엔 '빨래터' 등이 그려졌다. 불과 열 달 만에 작은 도시 전체가 커다란 미술관이 됐다.

벽화 크기는 다양하다. 보배아파트 벽면에 그려진 '나무밑'·'골목안' 작품은 가로 11.2m·세로 13.5m다. 아파트 외벽 한쪽을 전부 차지한다. 양구경찰서 인근 건물에 그려진 '빨래터' 작품은 가로 5.6m·세로 3.5m로 가장 작다. 최동호 양구군 문화 예술 담당은 "올해도 예산 3000만원을 들여 곳곳을 박수근 작품으로 꾸밀 예정"이라고 밝혔다. 어둡고 칙칙한 거리에 박수근의 색이 입혀지자 주민들이 먼저 반색했다. 주민 최진호(43)씨는 "평소 주민들 사이에서조차 거리가 을씨년스럽다는 반응이 있었는데, 낡은 외벽이 박수근 작품으로 꾸며지니 동네가 훤해졌다"고 말했다.

외지 관광객의 반응도 좋다. 이노경(33·강원 원주시)씨는 "아파트 벽에서 교과서에서나 보던 박수근 작품을 보고 양구가 박수근의 고향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전창범 양구군수는 "양구는 이제 휴가병이나 면회객들만 찾던 곳이 아니다"며 "순수한 삶을 그림으로 표현한 박수근 화백의 혼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도록 양구를 계속 바꿔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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