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탄핵소추의결서는 부실… '박 대통령과 共謀'라는 검찰의 최순실 공소장뿐"

조선일보
  •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8.01.29 03:04

    [박근혜 탄핵 당시 헌법재판소의 '입'… 배보윤 前 공보관 처음 입 열다]

    "처음 단추가 그렇게 끼워져 혼동된 상태로 재판 진행
    최순실 수사기록 복사해 서로 맞고 안 맞느냐 따져"

    "재판부도 시간에 쫓겨
    '탄핵 사건인데 왜 형사 잡범처럼 하느냐, 격 떨어뜨리느냐' 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창립 30주년 기념으로 만든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한민국의 변화'라는 책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는 촛불집회의 헌법적 완결체' '역사의 도도한 물결에 법적 인증 도장을 꾹 눌러준 것'이라고 자평했다.〉

    배보윤(58) 변호사를 만나기 전날 공교롭게 위의 보도가 나왔다. 그는 당시 헌법재판소의 총괄연구부장 겸 공보관이었다. 기자들 앞에서 브리핑하던 큰 체구에 안경을 쓴 그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1991년 사법연수원(20기) 수료 후 일선 판·검사 대신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택했다. 연구관은 헌법 재판과 관련해 자료 조사 및 판례 연구, 결정문 초안 작성 등을 맡는다. 그는 헌재에서 26년간 재직했다. 대한민국에서 헌법과 관련된 사건을 가장 많이 다뤘을 것이다.

    배보윤 전 공보관은“법원 판단 없이 국회 소추만으로 대통령 직무 정지는 세계 유례가 없다”고 말했다.
    배보윤 전 공보관은“법원 판단 없이 국회 소추만으로 대통령 직무 정지는 세계 유례가 없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넘어온 '탄핵소추의결서'로 재판이 시작됐는데?

    "탄핵소추의결서는 부실했다. 장문의 탄핵 취지가 있었지만 알맹이는 검찰 공소장과 언론 보도였다. 탄핵 소추의 판단 근거가 된 공식 문서로는 최순실 등을 기소한 검찰 공소장뿐이었다. 그 속에 '박 대통령과 공모(共謀)하여…'라는 문구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공소장은 검찰의 의견이고 법원에 제출하는 것이다. 미리 공개돼선 안 되는 것이다. 이게 국민에게 예단을 줬다."

    ―'최태민 딸 최순실'의 등장이 국민에게 엄청난 쇼크를 줬다. 박 대통령은 그때 더 이상 국정 수행이 불가능했고 국민의 지지를 잃었다고 볼 수 있는데.

    "대통령 탄핵은 국민 여론으로 하는 '불신임 제도'가 아니라 '법적 책임 추궁 제도'다. 직무와 관련해 내란·외환죄 같은 중대한 헌법 및 법률 위반을 했고 거기에다 선출된 것을 뒤엎을 만한 국민 신뢰를 저버렸을 때 탄핵이 가능하다. 국회의 소추는 법적 책임과 불신임을 혼동해서 진행됐다."

    ―당시 박 대통령은 국정 농단 등으로 헌법 및 법률 위반 혐의가 있었고 국민 신뢰를 잃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헌법 84조는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했다. 그때 박 대통령의 혐의는 법원에서 확정된 게 없었다. 단지 최순실 등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과 공모하여'로만 돼 있었다. 국회에서 소추를 하려면 나름대로 조사해야 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미(美) 하원에서 탄핵 의결한 닉슨 대통령의 사례를 연구했다. 그 탄핵소추의결서는 300쪽이 훨씬 넘었고, 하원에서 자체 조사한 증거들과 개별 의원들의 의견이 담겨있었다."

    ―검찰 공소장과 언론 기사로 이뤄진 탄핵소추의결서가 그 자체로 결격(缺格)이었다면, 헌법재판소는 왜 '심리를 할 수 없다'고 표명하지 않았나?

    "노무현 탄핵 심판 때 제출된 소추의결서도 부실했다. 당시에도 적법성이 쟁점이 됐지만 문제 삼지 않았다. 이런 판례를 따랐던 셈이다."

    ―'대통령과 공모(共謀)하여'라고 나오는 최순실 등의 공소장으로 대통령 탄핵 심리에 착수한 것은 적법한가?

    "헌법재판소법 51조에는 '탄핵 심판 청구와 동일한 사유로 형사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에는 재판부는 심판 절차를 정지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최순실 등의 형사재판이 끝날 때까지 탄핵 심판을 정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헌재 재판관들은 '그것은 공범자에 대한 형사재판이고 본인에 대한 재판이 아니므로 정지 사유가 아니다'고 봤다. 처음부터 단추가 그렇게 끼워져 혼동된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됐다."

    ―혼동된 상태로 재판이 진행됐다는 게 무슨 뜻인가?

    "탄핵 재판은 형사재판과 다르다. 재판부는 여러 차례 '이는 탄핵 사건인데 왜 형사 잡범처럼 하느냐. 격을 떨어뜨리느냐'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될 만한 다섯 가지(비선 조직 운영, 대통령 권한 남용, 언론 자유 침해, 세월호 관련, 뇌물 수수)를 정리했지만, 이에 집중해 심리가 이뤄지지 못했다. 최순실 등의 수사기록을 복사해 서로 맞느냐 안 맞느냐 따지는 식으로 재판이 진행됐다. 청구인은 그렇게 하는 게 유리했지만, 변호인단도 이를 반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검찰 수사기록 위주로 진행된 데는 재판부의 책임은 없나. 재판을 잘못 이끌어 그렇게 된 것은 아닌가?

    "신속한 재판의 압박을 받아왔다. 재판에서는 증거(證據)가 중요하다. 수사기록에 나온 증거들은 법정에서 피고인이 부정하면 채택되지 않는다. 법정에서 증거 능력을 따로 심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헌재 재판부는 '탄핵 재판은 징계 재판의 성격이기 때문에 형사재판처럼 엄격한 증거가 아니라 완화된 증거 채택으로 가겠다'고 했다. 변호인이 입회해 작성됐거나 신뢰할 수 있는 정황에서 작성됐다고 볼 수 있으면 증거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신속한 재판에는 도움이 됐지만…"

    ―헌재의 '입'이었던 당신의 견해는 재판부와 다른 것 같은데.

    "재판부 판결이 났고 존중해야 되겠지만… 이 점에 대해 나는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탄핵 재판은 징계 재판의 성격이 있지만, 국민 선출로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재판이므로 더 엄격한 사실 증거를 채택해야 한다고 봤다. 최순실 등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과 공모하여'라고 나오지만,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이 직접 진술한 적이 없으므로 증거 채택에 좀 더 엄격했어야 했다."

    ―헌재 재판관과 연구관들 사이에서 이를 두고 논쟁이 있었나?

    "내부 얘기는 할 수 없고, 아마 논의했을 것이다. 신속하게 진행해야 하는 압박감은 있었다."

    ―언론에서도 대통령 직무 정지로 인한 국정 운영 공백을 막기 위해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재판은 절차가 중요하다. 당시 매일 출근했다. 일주일 두세 번 재판이 열렸고 밤늦게까지 했다. 이 중대한 재판을 그렇게 해서 되는가. 철저하게 준비해 차근차근 심리하지 못하고…"

    ―재판이 길어져 박 전 대통령이 식물 상태로 임기를 다 채우면 탄핵 심판의 효과가 없다는 반발이 있었다.

    "헌법 65조 3항에는 '탄핵 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 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고 했다. 이는 결과를 선취(先取)하는 '가처분' 조항이다. 대통령 직무 정지는 상당 부분 국가 운영의 스톱을 의미하는데, 심판기관(법원)의 판단도 없이 국회 소추만으로 하는 것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 이 조항은 꼭 개정돼야 한다. 닉슨은 미국 하원에서 탄핵 소추됐지만 직무를 계속해오다가, 일 년쯤 지나 일반 법원에서 유죄가 나올 것 같아 사퇴했다."

    배보윤 前 공보관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이어받았는데.

    "미국의 경우 부통령이 대행 체제를 맡으면 핵무기 가방까지 넘겨받는다. 선거 때 러닝메이트가 아닌 우리의 국무총리는 민주적 정당성이 약하다. 법으로만 대행(代行)이지 실질적으로 권위가 없다. 국회에서 인정해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황교안 대행은 헌재소장 임명도 못 했다. 법리상 임명했어야 했다."

    ―박한철 헌재 소장 퇴임 후 재판관 8명으로 진행한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나?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충원하는 것이 정상이다."

    ―당시 언론 보도에 대해 어떻게 보나?

    "언론은 탄핵 재판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다. 탄핵 쟁점에 관한 양쪽 입장을 국민에게 잘 알 수 있게 해줬어야 했다. 자신들이 선출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때 잘 알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주요 쟁점을 다루는 재판은 생중계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재판관 전체 회의에서 선고 때만 방송하는 걸로 결론이 났지만. 대통령 탄핵은 나라의 현재와 미래가 달려있는 문제였다. 대통령도 직접 나와 소명할 것은 소명하고 반박할 것은 반박했으면 했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사법기관'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정치적 판단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재판 대상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사안이 정치적인 것이지 법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다."

    ―만장일치로 8:0 인용 결정이 나왔다. 이게 온전한 법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공산국가의 재판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학문적으로는 그런 평가를 할 수 있겠지만… 재판관들 사이에 의견이 좀 달라도 결정에 힘을 싣기 위해 전원일치로 가는 경우가 있다. 실제 그렇게 유도를 한다. 분쟁을 해결해야 하는 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그렇다."

    박 대통령 탄핵은 92일 만에 결정났다. 한 달 뒤 그는 26년간 근무한 헌법재판소를 떠났다. 반전(反轉)은 그가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에 합류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렇다. 내가 먼저 타진했다. 박 대통령 측과 협의 과정에서 이뤄지지는 못했다."

    ―헌재의 '창구' 역할을 했던 공보관이 거꾸로 박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겠다면 당시 재판에 문제가 있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닌가?

    "재판 내용에 대해 언급할 입장이 아니다. 다만 절차에서 법치주의가 훼손되는 걸 봤다. 그 뒤 탄핵으로 물러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형사재판에서도 그런 절차가 무시됐다. 우려했던 정치 재판이 연장되는 것 같았다."

    ―탄핵되는 순간 박 전 대통령은 모든 걸 잃었다. 그런데 그를 구속시키고 죄수복 차림으로 재판받게 하는 것이 과연 옳았는지 의문이다.

    "형사재판은 불구속 재판이 원칙이다. 지금이 조선 시대인가, 잡아넣는 식으로 해결해선 안 된다. 재판을 일주일에 네 번, 밤 10시까지 했던 것은 말이 안 된다. 재판을 왜 정치 일정에 맞추는가."

    그의 인터뷰는 너무 늦었는지 모르나 기록은 남겨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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