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동천일야화] 왜 독일은 93조원 써가며 '역사 사죄'와 '반성' 하나?

  •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現 히브리대 방문학자

    입력 : 2018.01.29 03:11

    戰後 독일, 불편한 역사 기억 위해 후대의 실수 막으려는 의도도 있어
    그제는 UN의 홀로코스트 추모일… 이방인 배격하는 극단주의 막아야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現 히브리대 방문학자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現 히브리대 방문학자
    1월 27일은 국제연합(UN)이 정한 홀로코스트 추모일이다. 20세기 최대 비극인 나치의 대량 학살을 인류가 함께 기억하겠노라 다짐하는 날이다. 세계 각처에서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열렸다. '반(反)셈주의'(anti-semitism·반유대주의) 유(類)의 이민족 차별과 소수자 핍박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

    서기 70년, 로마가 예루살렘을 정복하자 유대인들은 각지로 흩어졌다. 이른바 '디아스포라'의 시작이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에 흩어진 디아스포라와는 달리, 유럽의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반셈주의에 시달렸다. 메시아를 죽인 민족이라는 주홍글씨가 늘 따라다닌 탓이다.

    사회 경제적 배경도 있었다. 중세 유럽인들은 교회의 엄격한 가르침에 제약을 받았지만 유대인들은 예외였다. 몇몇 유대인 사업가들은 기독교 교리가 금하는 분야, 특히 고리(高利)대금업 등을 통해 돈을 벌었고, 정치권력에 뒷돈을 대며 자산을 불려 나갔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수전노 샤일록은 당시 유대인 이미지의 전형이었다.

    유럽인들이 유대인을 싫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이웃한 이교도들이 유난스럽게 자신들의 종교 전통을 유지하며 사는 것도 거슬리는데, 심지어 잘살기까지 하니 말이다. 물론 유대인들이 다 밉상은 아니었다. 타자에 대한 본능적 불편함과 질투로 인한 과도한 일반화였다. 하지만 대중은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자기들의 퍽퍽한 삶을 유대인 탓으로 돌렸다. 정치는 이 반감(反感)을 이용했다. 위기 때마다 유대인을 희생양 삼아 반셈주의를 부추겼다. 권력 비판을 희석시키고, 분노를 우회시키는 모략이었다.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과 러시아의 유대인 집단 학살(포그롬)을 거치며 이어진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비극의 절정이었다.

    나치 패망 후 가해자 독일은 적극적 반성과 배상에 나섰다. 1952년 룩셈부르크 협정에 의거해 2012년까지 60년간 약 700억유로(약 92조6500억원)를 이스라엘 정부와 개인에게 배상금으로 지급했다. 이후 협정 개정을 통해 홀로코스트 피해자 연금 지급을 확대했다. '과거사 직시하기' 프로젝트도 열심이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가 2차 세계대전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에서 헌화하다 무릎을 꿇고 있다. /조선일보 DB
    독일 지도자들은 사죄와 반성의 메시지를 계속 내놓고 있다. 때론 이스라엘과 정치적 마찰도 있고, 독일 내부에도 극우주의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수의 독일 국민은 겸손하게 역사를 성찰하고 있다. 사과를 껄끄러워하지 않는다. 빌리 브란트 총리가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 헌화하던 중 갑자기 무릎 꿇고 사죄했을 때, 세상은 '무릎 꿇은 것은 총리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이었다'며 찬탄했다.

    독일이 막대한 물적 배상을 감수함은 물론 홀로코스트 추모일을 직접 제정하고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억'을 위해서다. 불편한 역사를 어물쩍 넘길 경우 다음 세대가 같은 실수를 반복할 지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기도 하다. 피해자 유대인들보다 가해자인 독일인들이 더 절박하게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독일인이 누구던가? 위대한 철학자 칸트와 헤겔, 종교개혁의 선봉 루터의 후예 아닌가? 아름다운 바이마르 헌법의 주역들 아니던가? 그러나 순식간에 무너졌다. 나치의 선동에 넘어가는 순간, 집단 학살의 공범이 되고 말았다. 역사 망각은 자칫 파멸을 부를 수 있다. 비단 독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든 예외가 아니다.

    유럽에 새로운 '반셈주의'가 나타나고 있다. 반유대주의와 함께, 또 다른 셈족인 아랍 그리고 무슬림에 대한 증오까지 담긴 반셈주의다. 이방인을 배격하는 극단주의자들의 목소리가 거세진다. 하지만 애써 기억해야 한다. 인류는 결코 선(善)하지 않으며 순식간에 이성(理性)을 잃고 비극을 반복할 수 있음을 말이다. 독일의 치열한 홀로코스트 기억법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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