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서 부서지기 쉬운… 이 땅의 男子들에게 바칩니다

조선일보
  • 김윤덕 기자
    입력 2018.01.27 03:01

    차세대 현대미술 주역 박경근
    한국 남성 주제로 한 '거울 내장', '올해의 작가상' 전시서 화제
    "군대는 한국 남성 비추는 거울… 총은 메이드 인 청계천입니다"

    '임신부와 어린이는 관람 주의'란 경고문이 붙었다. 어두컴컴한 전시장에 M16소총(로봇) 32정이 4개씩 8열로 섰다. 뭘 주의하란 건지 두리번대는 순간, 굉음이 울린다. 하늘을 향해 있던 총부리가 "철커덕 척" 벼락 치는 소릴 내더니 관객을 정면으로 겨눈다. 곳곳에서 비명이 들린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월 18일까지 열리는 '올해의 작가상' 전시장. 박경근(40)의 '거울 내장: 환유쇼'가 설치된 곳에서 매일같이 펼쳐지는 풍경이다. 우연히 한 TV 예능 프로에 소개되고 나서 관람객은 더 많아졌다. 세 가지 총(銃) 동작의 단순 반복인데도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총이 주는 공포감 탓일까. "서른 살에 군대를 갔어요. 휴전선 부근 25사단. 수천 명이 한 몸으로 움직이는 제식 동작이 충격으로 다가왔죠. 집단을 한 몸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은 공포였어요. 그 느낌을 미술로 풀어보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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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m 높이 공간에 32개의 로봇 소총을 설치한 ‘거울 내장: 환유쇼’ 앞에 선 박경근. 그는 “군대의 기억은 내장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충격이었지만, 한국 남성을 가장 잘 이해하게 해주는 거울”이라고 했다. /이진한 기자

    영상과 설치를 병행하는 박경근은 차세대 한국 현대미술을 이끌 주자로 첫손에 꼽힌다. 2014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철의 꿈'으로 NETPAC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린 그는, 2016년 리움미술관이 선정한 '아트스펙트럼작가상'에 이어, 국립현대미술관이 뽑는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올랐다. 올해는 베네치아영화제와 칸영화제 등에 장편 다큐멘터리 '군대―60만의 초상'을 들고 문을 두드린다.

    박경근의 관심은 한국 남성에게 있다.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여섯 살 때부터 해외 생활을 한 경험이 그를 한국 남성에게 눈 돌리게 했다. "농부의 자식이고, 베트남전 참전용사였던 아버지와 늘 평행선을 달렸죠. 외국에서 자유분방한 교육을 받고 자란 저는 도무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미국 UCLA와 칼아츠(CalArts)에서 미디어아트와 영화를 공부한 뒤 돌아온 한국에서, 나이 서른에 입대한 군대에서, 그는 비로소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었다. 50~60대 청계천 공구상들의 일상을 그린 '청계천 메들리'는 그 첫 결과물이다. "그들의 삶이 철을 연상시켰죠. 거칠고 단단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쉽게 녹슬고 부서지는. 전쟁과 근대화, 산업화를 거치며 가족과 조직을 위해 목숨 걸고 살았던 아버지들의 삶을 보았습니다." 베를린영화제 수상작인 '철의 꿈'도 그 연장선이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본 순간 현대중공업의 거대한 배가 눈앞에 떠올랐다"고 했다. "거대한 고래라고 할까요. 고래 한 마리가 살과 뼈와 기름까지 다 내줘 부족사회를 먹여 살린 것처럼 현대중공업의 저 배가 60년대 가난한 우리나라를 먹여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죠."'군대―60만의 초상' 역시 한국 남자의 초상이다. 어느 병사의 입대부터 제대까지의 2년을 근접 촬영한 역작이다.

    뉴욕 시절만 해도 그는 뮤직비디오 제작과 그래픽 디자인으로 풍요롭게 살았다. 돈 안 되는 미술로 뛰어든 건 9·11테러를 목격하고 나서다. "눈앞에서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무너지는 걸 보고 결심했죠. 클라이언트 주문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자. 굶어 죽기야 하겠나." 모국으로 돌아왔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맬 때 길을 일러준 곳이 청계천이다. 이번 소총 작업도 청계천 기술로 완성했다. "회로, 몸통까지 모두 '메이드 인 청계천'입니다. 제가 '송 작가님'이라 부르는 청계천 사장님이 도와주셨죠. 가끔 고장이 나서 민원이 들어오긴 하지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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