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갑식의 세상읽기] 비겁한 국가가 망한다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입력 : 2018.01.27 03:15

    女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
    北, 원하던 것 얻으면 무리한 요구로 파투 놓기 일쑤
    유엔 제재로 궁지에 몰린 北에 굽신대며 肝만 키워줘선 안 돼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올해로 남과 북이 분단(分斷)된 지 정확히 70년이 된다. 갓난아기가 노인이 될 세월 동안 남북 스포츠 단일팀이 성공한 것은 1991년 4월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5월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두 번이다. 이후에는 2000년 시드니 하계올림픽부터 2007년 중국 장춘(長春) 동계아시안게임 개막식까지 아홉 차례 공동 입장했을 뿐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자 졸속, 불공정 논란에 독재(獨裁)라는 지적까지 쏟아지고 있다.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과 1991년 탁구 '코리아' 단일팀을 취재한 기자는 이제 몇 남지 않았다. 남북 단일팀의 역사적 배경과 결렬의 정치학을 알고 올림픽으로 빚어진 분열을 피하기 위해 28년 전 일을 되돌아보려 한다.

    남북은 북경 아시안게임 전 체육 회담을 11번 열고도 단일팀을 만들지 못했다. 당시 북한은 왜 회담장에 나왔을까. 첫째 우리 곳간에서 먹잇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경제력에서 북한 우위는 1974년에 역전됐다. '이밥(흰쌀밥)에 고깃국 먹고 기와집에서 살자'는 김일성과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박정희의 대결에서 남이 북을 이긴 것이다.

    둘째, 북경 아시안게임은 한중 정식 수교(修交) 전에 열렸다. 욱일승천하던 남한이 자기들 혈맹인 중국과 시시덕대는 꼴을 북한은 볼 수 없었다. 이목을 돌릴 명분이 필요했다. 그 전에 1983년 아웅산 테러, 1986년 김포공항 테러, 1987년 KAL기 폭파 같은 '주먹질'을 해봤지만 국제사회를 겁주기는커녕 북한이 진짜 깡패라는 사실만 확인해줬을 뿐이다.

    북경 아시안게임 남북 단일팀은 미완성이었지만 전혀 의미 없지는 않았다. 아시안게임 직후 평양~서울을 오가는 남북통일 축구가 성사된 것이다. 식민지 시절 경성(京城)과 평양(平壤) 대항전이던 '경평(京平) 축구'가 중단 45년 만에 재개된다는 기대로 북경에서 남북 기자들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남쪽 기자들은 그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손에 쥐여주려 했다.

    막내였던 나에겐 김일성 배지를 단 북한 기자들에게 컵라면 등등을 배달하는 임무가 부여됐다. 며칠 지나자 그들의 태도가 점점 달라졌다. 얻어먹는 판에 "쇠고기라면이 맛있는데 오늘은 왜 김치라면을 들고 왔네" 하는 식의 투정부터 "맨날 라면만 먹갔소?" "위에서 주는 거 없더냐"는 노골적인 금품 요구까지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그들의 유일한 '권세'는 평양에 들어올 남측 기자 수 제한이었다. 거기 남쪽이 꼼짝 못 하자 협박 근성이 발동했다. 그런 자세는 28년간 변치 않았다. 폭탄 테러가 핵 공갈로 변했을 뿐 뜯어낼 게 있거나 한미 동맹을 이간질하고 싶으면 '동포'를 가장하다 원했던 걸 얻으면 무리한 요구를 한 뒤 책임을 떠넘기며 파투를 놓는 '원수'로 얼굴을 싹 바꾼다.

    아니나 다를까, 유엔 제재로 굶어 죽게 된 북한이 평창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단일팀을 만드네, 응원단을 보내네, 문화 행사를 여네 하며 변죽 울리다 인민군 대좌 하나로 남한 전체를 홀려버렸다. 그래 봤자 핵 위협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평화가 정착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조선이 명·청(明·淸)에 한 사대(事大)보다 더 알랑거렸다.

    어찌 보면 우리는 스스로 비겁해졌다. 세계 잔치가 돼야 할 동계올림픽을 열며 궁리했다는 게 카네기홀을 싸구려 서커스단에 내준 격이다. 질펀한 민족 타령이 본질을 감출 것이다. 정권도, 국민도, 언론도 외국의 이목은 안중에 없다. 북한의 나쁜 버릇 고칠 기회만 오면 되레 굽신대며 간(肝)만 키워준다. 용감한 국가가 망(亡)한 적은 없다. 비겁한 국가가 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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