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다락방에 숨어 몰래 화장하던 소년, 꿈을 펼치다

    입력 : 2018.01.27 06:00 | 수정 : 2018.01.29 09:46


    “게이? 트렌스젠더? 나는 그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남자일 뿐”
    ‘구로동 미용실 키즈’에서 ‘뷰티쇼맨’이 된 김기수
    ‘예쁘게 살래? 그냥살래?’책 출간, sbs 모바일 ‘김기수의 예살그살' 1억뷰 돌파

    뷰티 크리에이터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은 개그맨 김기수/사진=고운호 기자
    “저희 어머니 말씀이 될 놈은 10원짜리 빤스만 입어도 된대요. 그런데 제가 준비가 안 됐었다면 반짝하고 끝났겠죠.” 30년 동안 얼굴에 차곡차곡 쌓은 꿀팁이 이제사 빛을 보게 됐다,고 김기수가 환하게 웃었다. 흰 셔츠에 보라색 슈트, 연분홍 립스틱을 바른 남자는 겨울 햇살 아래 화사했다. 얼굴도 팔도 다리도 심지어 반지를 낀 손가락마저 길었다. 검은 패딩을 입은 내가 연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에게서 꿈을 이룬 관록의 댄서 혹은 산전수전 다 겪고 모두를 용서해버린 철든 오페라 가수 같은 분위기가 났다.

    만남은 그의 책 ‘김기수의 예쁘게 살래? 그냥 살래?’를 낸 출판사 김영사의 북촌 한옥 응접실에서 이뤄졌다. 그는 sbs 제작팀과 출간 기자 간담회를 끝낸 후, 부리나케 이곳으로 달려온 터. 통창 밖, 한옥의 검은 처마 위로 서서히 겨울 해가 지고 있었다. 조선 양반 동네의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이 컬러풀한 남자는 약간 들떠 보였다.

    한물간 개그맨으로 중국에서 DJ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던 때가 겨우 1년여 전이 아니던가.

    2017년 한 해, 그가 속한 미디어 세상은 놀랄만한 변화를 겪었다. K뷰티가 화제가 되며 미국과 중국, 동남아에서 한국 화장품 실크로드가 열렸다. 백인이든 황인이든 피부색을 초월한 적극적인 뷰티 유저들이 한국 제품과 메이크업에 대한 고급 정보를 원했다. 재능 있는 뷰티 유튜버들이 산업과 소비자를 잇는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점잔빼던 남성들도 그루밍족이라는 이름으로 화장품 열기에 합류했다.

    김기수는 ‘어쩌다’ ‘우연히’ 뷰티 한류와 개인 유튜브 시장의 폭발 지점 한가운데 서 있게 됐다. 그 자신, 단지 성형 루머에 맞서기 위해, 3개월 속성으로 배운 컴퓨터 기술로 화장 동영상을 올렸을 뿐인데…, 네티즌이 그의 메시지를 새로운 ‘뷰티 버라이어티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의 어머니 말마따나 ‘될 놈은 10원짜리 빤스만 입어도 된다'고. 10대 꼬마 시절부터 다락방에 숨어 화장하던 그의 열정이 사십이 넘어 이렇게 터질 줄 누가 알았을까.

    현재 김기수의 개인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12만 명, sbs 모바일에서 제작 유통되는 ‘김기수의 예쁘게 살래? 그냥 살래?’의 누적 조회 수는 1억 명이 넘었다. ‘예쁘게 살래? 그냥 살래?’는 책으로 나왔으며, 그는 곧 자신의 이름을 건 화장품 브랜드를 런칭한다. 하루에 2시간도 채 못 잔다는 말이 엄살이 아닌 듯했다.

    오랫동안 매거진 에디터로 패션 동네에서 살았던 나조차, 화장하는 남자가 어색한데 그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지지하는 팬들 덕분이라고 했다.

    -기분이 어떤가요?

    “기수둥절이죠. 팬이 붙여준 말인데, 어리둥절에 제 이름 붙였어요. 팬들과 같이 막 구름 위를 걷는 것 같고, 내가 이렇게 사랑받아도 되나 싶고 그래요.”

    -오늘 화장에는 얼마나 시간이 걸렸죠?

    “10분 정도? 아 하하하(팝콘이 터지는 듯한 웃음이다). 피부 표현과 눈만 신경 썼어요. 눈은 마음의 창이니까 시원하게 보이도록. 다만 지속력은 강하게!”

    아역 탤런트 출신으로 중학생 때부터 메이크업에 빠져 살았다는 김기수./사진=고운호 기자
    -그런데 포즈나 표정이 좀 인위적인 것 같네요. 화장 때문인가요?

    “(살짝 당황하며)어떤 연예인도 자연스러운 건 힘들어요. 남 앞에서 자기표현을 해야 하는 직업이니까… 그런데 요즘엔 표현방식이 좀 더 연극적으로 돼서 기자님처럼 자연스러운 걸 요구하면 난 머리가 막 하얘져. 난 누구지? 하는 물음표가 안에서 뒤엉켜버린다니까요.”

    -존재론적인 질문이군요. 김기수 씨는 대체 누구세요?

    “저요? 글쎄요. (혼잣말로)내가 누구지… 가만 보면 전 삶 자체에 내추럴이 별로 없어요. 제 몸도 오랫동안 댄스스포츠를 해서 가슴뼈에도 힘이 들어가 있고, 앉을 때도 이렇게 꼿꼿해요(자연스럽게 댄서 킴 포즈가 나왔다). 살아온 인생이 자연스러움보다 인위적인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메이크업하면 내가 인형인가? 싶기도 하고. 하하하. 그런데 그게 그냥 저인 거예요.”

    -영화 ‘AI’에 로봇으로 나온 주드 로 같기도 하고요.

    “하하하. 그런데 그 모습을 또 팬들이 좋아해 주니, 전 행복하거든요.”

    -그러면 자연스러운 김기수의 모습은 언제 드러나죠?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 그때 잠깐?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정도? 하하. 기자님! 저는 어릴 때부터 아역 탤런트 생활을 했어요. 연예인 생활을 일찍 하면서 예쁜 모습,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았어요. 그게 막 싫지는 않았어요.”

    -어릴 땐 어떤 활동을 했습니까?

    “드라마 ‘역사는 흐른다'에서 장미희 선생님 아들로 나왔어요. 키가 큰 편이라 아동복 모델도 하고 ‘뽀뽀뽀'에도 나갔었고요. 제가 어릴 때 참 예뻤어요. 얼굴 작고 예쁘장해서 납치당할지도 모른다고 어른들이 걱정하셨어요.”

    -예쁜 아이였군요!

    “(환하게 웃으며)예뻐서 예쁨을 받는 아이였어요. 나이가 들면서 사회에 치이고 연예인 바닥에 살아남아야 해서 예쁨을 포기하고 살았죠. 개그맨 되기 전까지 단역 연기를 계속하다가 KBS 개그맨 공채에 6수 만에 붙었어요. 그때도 ‘댄서킴’으로 사랑을 받았고, 지금은 메이크업이라는 탤런트로 또 사랑을 받으니, 제가 참 운이 좋죠.”

    -뷰티크리에이터로 완전히 전업한 건가요?

    “전업했어요. 제 유튜브 구독자가 이미 12만 명이 넘고, sbs 모바일 방송 ‘예쁘게 살래? 그냥 살래?’도 1억 뷰가 넘었어요. 뷰티 신상품들은 계속 쏟아지고 각 제품의 발색이나 컬러 조화, 제형에 따라 아이라이너를 어떻게 뺄까, 이런 실험을 계속해야 하니까 정말 하루에 2시간도 못 잘 때가 많아요.”

    신간 ‘예쁘게 살래? 그냥 살래?(김영사)’. 눈이 커 보이는 '337 뷰러 권법', 도자기 피부를 만들어주는 '잡티 박멸 권법' 등 SNS에서 인기를 끈 김기수만의 메이크업 팁을 웹툰 형식으로 구성했다.
    -아이라이너를 뺀다고 표현하는군요. 방송을 보니 재미난 표현이 많았어요.

    “하하. 모르셨구나. 파운데이션도 ‘처발처발’, 눈화장은 ‘스머지스머지’, 립스틱은 덕지덕지, 화떡(화장 떡칠)해봐요. 이런 친근하면서 피부에 착 붙는 표현이 제 경쟁력이에요. 가루 날림 없고, 발색도 짱인데, (문득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왜 안 사~?” 이렇게 스파이크를 날리기도 해요.”

    -PPL로 돈을 버는 구조이니, 적시에 쇼호스트의 멘트가 나오는군요.

    “저는 제품을 거의 제가 사서 써보고 방송해요. 거짓말 안 하고 제 느낌이 그대로 나와요. 돈 싸 들고 와서 제품 홍보해 달라고 해도 제가 써보고 아니면 거절하죠. 그게 생명이에요.”

    -왜 화장을 하나요? 취향이 다양화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화장한 남자를 ‘여장 남자'처럼 보는 시선이 많은데.

    “기자님은 어떠세요?”

    -제 취향은 아닙니다.

    “이런 걸 ‘개취’라고 하죠? 개인 취향. 하하하. 저는 화장 안 하시는 분들도 존중해요. 뷰티는 개인 취향이 더 강한 분야고요. 욕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를 보고 희망을 얻는 분들도 많아요. 사랑해주시는 분들 신경 쓰기에도 벅차서, 전 악플도 잘 안 봐요.”

    -화장은 언제부터 했죠?

    “아역 탤런트 시절 야외 촬영장에 나가면 분장하는 버스 같은 게 있었어요. 어느 날 노인 남녀 두 분이 그 안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굉장히 아름다워졌어요. 제 눈엔 그 분장 버스가 마법 트레일러처럼 보였어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윌리윙카가 사는 공장 아시죠? 제가 거길 기웃거리니까 분장사 누나가 “남자 새끼가 왜 여기 알짱거려?” 타박하다 구루모(영양크림)하고 선크림을 몇 개 쥐여줬거든요. 그걸 바르니 얼굴이 세상, 하얘지며 광이 나는 거예요. 중2 때였는데… 그때부터 토너, 에멀전 라인 맞춰서 화장품 찾아다니는 ‘코닥질'이 시작됐어요.”

    -남자 중학생이 그러고 있으면 이상하게 봤을 텐데요?

    “숨어서 했죠. 다락방에서 몰래. 문소리 나면 얼른 지우고, 다시 가슴 졸이고 화장하고. 화장할 때 정말 가슴이 뛰고 행복했어요. 성인 연예인이 돼서야 대놓고 화장했어요. 그런데 커서도 ‘신상’을 사러 화장품 가게 들락거리면 눈치가 보였어요. 90년대 중반쯤 인터넷에 온라인 화장품숍이 생겨서 숨통이 트였어요. 그때부터 신명 나게 쇼핑을 했죠.”

    ‘구로동 미용실 키즈'에서 메이크업 퍼포머가 된 김기수./사진=고운호 기자
    -듣다 보니 남성 터부 영역에서 자기 꿈을 찾는 ‘빌리 엘리어트'가 연상되네요.

    “맞아요. 저도 그게 참 신기해요.”

    ‘빌리 엘리어트'에서 발레리노를 꿈꾸던 소년의 아버지는 광부였지만, 김기수의 어머니는 미용사였다. 그의 어머니는 처녀 시절부터 구로동에서 ‘숙 미장원'을 운영했다. “제가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하셨어요.” 미용실은 그들 가족의 삶터였고, 김기수의 놀이터였고, 동네의 사랑방이었다. 그는 파마약 냄새가 밴 밥, 염색약 냄새나는 김치를 먹었고, 아줌마들은 ‘숙 미장원'에서 보자기를 쓰고 각자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김기수의 ‘아줌마스러운 개그'는 전적으로 엄마의 미용실에서 나왔다.

    -어머니는 지금 화장하는 아들을 어떻게 보세요?

    “연세가 80살이라 SNS, 유튜브 이런 건 못 보셔요. “니가 뭘 했는데 그렇게 전성기냐?” 그러셔서 제가 핸드폰으로 제 화장 동영상을 보여드렸더니…”

    -보여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시는 거 있죠. “아이고 예쁘다!” 막 신이 나셔서 “기수야, 여기서는 색을 더 넣고 아이라인을 더 빼야지" 요즘엔 뒤꼬리 과하지 않은 퓨어메이크업이 유행인데도 엄마는 더 세게 하라고 막 부추기세요. “옛날에 김혜수 못 봤니? 입술을 더 크게 그려야지." 하하하. 엄마는 제가 미용사가 되길 바라셨어요. 그림 그려서 상 타고 사람들한테 예쁨 받으니까. 아역 탤런트도 어머니가 원서 넣어서 시작한 거예요.”

    -실례지만 이쯤에서 성 정체성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군요.

    “(미소지으며)저더러 게이냐? 트렌스젠더냐? 그러면 예전엔 한 사람씩 붙잡고 절대 아니라고 열변을 토했어요. 요즘엔 그냥 아름다운 한 인간 김기수로 봐달라고 해요. 너무 강하게 부정하는 것도 성 소수자분들께 예의가 아닌듯해서요. 제가 댄서킴으로 활동할 때도 사실 남성적이진 않았잖아요. 제가 어떤 인간이든 이 정도로 열심히 재능을 발휘하며 살면 아랫도리가 무슨 상관이겠냐? 그거죠, 제 생각은.”

    그러나 “성향이 그쪽은 아니다"라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가톨릭 신자지요?

    “네. 세례명이 요셉이에요. 요즘엔 게을러서 밤에 잘 때만 성호를 긋지요(웃음).”

    -유튜브도 악플 때문에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네. 한동안 중국에서 DJ로 활동을 하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무대메이크업 한 걸 보고 ‘성형 괴물'이라는 악플이 3000개 넘게 달렸어요. 전 진짜 얼굴 안 고쳤어요. 쌍꺼풀만 한 건데… 얼굴을 돌려 깎았다는 둥, 성전환했다는 둥 악플로 검색어 1위가 되니까 약이 오르더라고요.”

    자신이 성형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김기수는 화장하는 전 과정을 보여주기로 했다. ‘컴맹’이라 컴퓨터 전원밖에 켤 줄 모르던 사람이 영상 장비를 사고, 편집을 배워 3개월 만에 ‘메이크업 튜토리얼’을 제작했다. 악플이 더 거세지면 싸울 준비를 하는 중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sbs 모바일 방송 ‘김기수의 예쁘게 살래? 그냥 살래?’의 한 장면.
    “안티가 팬이 돼서 화장 잘한다고 칭찬을 하시더라고요. 다음 메이크업이 기다려진다고. 자연스럽게 저도 카메라 앞으로 가고 있고요. 그게 2016년 말, 이제 1년이 조금 넘었어요.”

    개인 채널 유튜브 구독자 12만 명, ‘예살그살'로 sbs 방송 연예대상 모바일 아이콘상 수상, 그리고 봄에 나올 김기수의 이름을 딴 코스메틱 제품까지… 1년 여 동안 그의 뷰티 콘텐츠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K뷰티 바람, 유튜브 전성기라는 시대의 흐름에 올라탄 덕분이다.

    -돈은 많이 버나요?

    “버는 만큼 써요. 개인 채널이니 개인 사업이고, 저도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등 식구들 건사해야 되니까요. 올리브영 같은 저가 제품부터 해외 명품까지 제 돈 주고 사니 투자비가 많아요.”

    -유튜브 제작 과정은 어떻게 되지요?

    “컨셉 정하고 얼굴에 시연하고 제품 연구하고 촬영하고, 꼬박 3일 밤새워서 편집을 해요. 일주일 걸려서 18분 정도의 영상을 만들어요. 팬들이 기다리시니까 업로드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해요. 잠을 2시간 이상 못 자니 제 얼굴은 사실 좀비처럼 돼요. 하하하.”

    -시장 초기 참가자로 고생과 동시에 보람도 클 듯합니다.

    “보람이 정말 커요. 제 뷰티 영상을 보고 대인기피증에서 벗어났다는 분이 있어요. 그 여성분이 3년 동안 우울증을 앓아서 집 밖에 못 나갔다고 해요. 집에서도 모자 쓰고 마스크 쓸 정도로 심했는데, 우연히 제 채널을 보고 3년 만에 아이섀도를 사러 집 앞 화장품가게에 나갔대요. “기수 오빠도 하는데 나는 왜 못해?” 하면서. 그분이 화장하고 나중에 취직까지 했다고, 고맙단 글을 올렸는데 제가 더 눈물 나더라고요.”

    -남자들 반응은 어떤가요?

    “의외로 남자 ‘코덕(화장품 마니아)'들도 많아요. 남성 그루밍족이 숨어 있다가 제가 퍼스트 펭귄 정신으로 앞장서니까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시더라고요. 어떤 분이 화장품가게에 들어가기 창피하다고 해서 제가 ‘왜 못가? 죄지었어? 사기 쳤어? 힘들면 나 불러!’ 그랬더니, 용기를 내서 들어갔대요. 해보니까 별거 아니라는 거죠. 내친김에 술 마시다 친구들 앞에서 ‘나, OOO하우스에서 섀도 샀다!’ 그랬더니, 친구들이 비웃지 않고 ‘예쁘다, 잘 샀다!’ 그러더래요. 십대도 아니고 35살 먹은 청년이었어요.”

    -놀랍네요.

    “요즘 청년들이 그래요. 행사에 가면 우락부락한 청년들이 “형! 저 형 덕분에 꿈이 생겼어요.” 그래요. 표정이 얼마나 밝은지 몰라요. 그런 거 보면 책임감이 생겨요. 전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뭣도 아니지만, 사람들 취향을 나눠서 불쾌해하는 건 좀 아니라고 봐요. 남자는 어때야 하고, 여자는 어때야 하고… 남자보다 강한 여자도 있고, 여자보다 섬세한 남자도 분명 있거든요. 그런 건 존중해줘야 한다는 거죠.”

    김기수의 개인 채널은 메이크업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18분 쇼. ‘예살그살'은 디테일을 보여주는 실용적인 방송이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세대가 분명 변하고 있어요. 성별을 분류해서 잣대를 들이대는 분들 보면 스스로도 좀 억압이 돼 있어요.”

    -자존감이 높아졌나요?

    “높아졌어요. 투정만 부리며 살아온 제가 누군가를 위로하고 있다는 게 참 기분이 좋아요. 저는 댓글을 보면 그 사람 속마음을 읽게 돼요. 저한테 힘든 얘기들을 많이 하는 데, 제가 또 미용실 원장님들처럼 들어주고 토닥토닥 위로해요. 무엇보다 화장하고 나서 예뻐진 모습을 보면 자존감이 쑥쑥 올라가요.”

    -화장을 지운 얼굴을 보면?

    “(풀이 죽은 목소리로)밤새워 편집하면 좀비 같아져요. 거울을 보면 못생긴 40대 아저씨가 있죠. 그러면 화들짝 놀라 바로 비타민 먹고 스트레칭 하고… 아 하하하.”

    -약간의 불안감을 동반하고 있군요.

    “그렇죠. 무너지면 어떡하지? 그런 불안이 있어요. 나를 바라보는 팬들을 보면, 이게 나 혼자 길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요즘엔 명상을 겸한 기도를 많이 해요.”

    -뷰티업계 전문가들은 당신을 인정하고 있나요?

    “제가 정말 공부를 많이 해요. 해외 유튜브, 국내 유튜브 전부 보고, 시중에 나온 제품은 거의 제 얼굴에 다 써봐요. 현장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웃음). 정샘물 원장도 응원해주시고.”

    -예뻐지기 위해선 자기 얼굴의 골격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는데, 자신의 얼굴에 대해선 어떻게 느끼나요?

    “길고 여백이 많죠(웃음). B4 사이즈 정도. 남들 한 달 쓸 제품을 15일이면 다 써요. 하하. 화장할수록 달라지는 골격이라 전 제 얼굴, 좋아해요. 아이돌도 됐다가 걸크러시도 됐다가.”

    -신디 셔먼이라는 미국 아티스트는 분장과 사진으로 ‘다른 사람 되어보기’라는 의제를 던졌어요. 비슷한 퍼포먼스라고 느끼나요?

    “그런 면이 있죠.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건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는 짜릿함을 좋아해서죠. 저도 그래요. 화장을 통해 다른 인간이 되어보는 즐거움이 있어요. 여성적인 몸짓이 좀 과하다고 싫어하시는 분도 있는데, 메이크업하면 저도 모르게 취해서 그런 연기가 나와요(웃음).”

    엄마에게 인생의 가장 큰 영감을 받는다는 김기수. 그는 몇 년 전 한 방송에 나와 ‘아버지는 폭군'이었으며, 성인이 된 후 자신이 부모를 이혼시켜 드렸다고 했다./사진=고운호 기자
    -일종의 ‘메이크업 원맨쇼’의 연출가군요.

    “네. 자기표현을 하는 거죠. 일전에 ‘왕따'가 사회 문제가 됐을 땐, 제 나름대로 ‘왕따 안 당하는 메이크업'도 해서 올렸어요. 블랙 립으로 좀 강하게 자기 어필을 하도록이요. 외국 팬들은 칭찬을 많이 해줘요. 화장은 표현의 영역이니까 ‘너는 아티스트’라는 거죠.”

    -롤 모델이 누구죠?

    “영국의 쟈니 시오스와 미국의 제프리 스타죠. 이분들은 뷰티 유튜버를 넘어서 걸어 다니는 기업이에요.”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군가요?

    “엄마! 아주 강하고, 아주 착하고 아주 귀여운 사람. 엄마가 그러셨어요. ‘사람은 고인 물이 되면 안 된다. 고이면 썩고, 거기엔 뱀만 휘젓고 다닌다.’ 노력해라. 노력해서 앞으로 나가면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마지막으로 당신을 보고 유쾌한 사람, 불쾌한 사람들에게 동시에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일단 저는 괜찮습니다(웃음). 불쾌해도 너무 선을 긋지 마시고 살짝살짝 봐주시면 은근 중독성이 있어요(웃음). 그리고 저를 보고 행복해하시는 분들, 여러분 기대에 맞게 70살 넘어서도 화장하는 할아버지로 남을게요. (할아버지 음성 변조로)”이 보게나! 내가 이번에 주름 가리는 모공 아이템을 사 왔잖아~.”

    김기수의 팬클럽 이름은 ‘꼬요' 즉 꼬마 요정이다. 우리 누구나 예쁨받던 ‘꼬마 요정'의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으니, 아무리 힘들어도 너와 나의 ‘꼬마 요정'을 잊지 말자는 뜻. 여전히 화장한 남자 얼굴이 익숙하지 않지만, 그 얼굴에 다락방에서 몰래 화장하던 꼬마 김기수의 얼굴이 겹쳐 떠오르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어쨌든 구로동 미용실 키드는 꿈을 이뤘다. 탄광촌에서 백조의 꿈을 이룬 빌리처럼, 자기만의 날개를 달고 비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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