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국방까지 '우리이니하고싶은거다해'

조선일보
  • 양상훈 주필
    입력 2018.01.25 03:17

    올림픽 후 마주할 북핵 현실
    北은 핵 포기할 리 없고 美는 北이 반격 안 할 공격 대상·수위 찾는데
    우린 군 12만명 줄인다니 정말 모두 제정신인가

    양상훈 주필
    양상훈 주필
    문재인 대통령 여성 지지자들이 서울 지하철역에 문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를 한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읽다 '우리이니하고싶은거다해'라는 문구를 보았다. '우리 이니(문재인 대통령) 하고 싶은 것 다 해'라는 문장의 뜻은 이해가 됐지만 이게 구호처럼 쓰인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대선 때부터 쓰이던 말이라고 한다. 관심을 갖고 보니 문 대통령 기사 댓글에 심심찮게 이 구호가 등장했다. '당신이 뭘 하든 지지하겠다'는 것은 무조건적 지지다. 신도(信徒)를 방불케 한다는 노무현·문재인 지지자들이 표방할 만한 구호라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는 문 대통령이 하고 싶은데 여건상 못 하는 것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밖에서 보기엔 그야말로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게 가능할까' '괜찮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정책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최저임금 17% 인상, 3년간 30조 문재인 케어, 120조 주거 복지, 50조 도시 재생, 1년 4조 기초연금 인상, 1년 2조 아동수당, 소득세 법인세 종부세 인상, 노동 양대 지침 폐기,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화, 성과연봉제 폐지, 공무원 17만 증원, 탈원전, 수능 절대평가(결국 유예), 유치원 영어 수업 금지(결국 유예), 특목고 사실상 폐지, 제주 기지 구상권 철회, 공영방송 사장 강제 교체, 국정교과서 폐지, 전(前) 정권 전전(前前) 정권 싹쓸이, 공룡 경찰화, 건국 시점 변경, 세월호 5차 조사, 5·18 4차 조사, 친북 윤이상 추모 찬양, 무자격자들의 정부 고위직 입성, 대대적 반(反)탕평 인사…. 당장 떠오르는 대로 나열해봐도 하고 싶은 거 다 한다는 말이 나오게도 돼 있다.

    국내 정책은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부작용을 누르고 가리면서 5년을 갈 수 있다. 외교 안보는 다르다. 남은 사드 발사대 4기의 배치를 막아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보겠다는 발상은 실현 불가능한 탁상공론이었다. 이 탁상공론을 실제 해보려다 미국의 신뢰를 잃고 중국엔 군사 주권을 내주었다. 위안부 협상을 백지화했지만 일본에 재협상은 말도 꺼내지 못했다. 남은 건 일본의 극단적 반발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속았다"는 반응뿐이다.

    아무리 하고 싶다고 해도 정말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지금부터 5년간 육군 병력 12만명을 줄인다고 한다. 문 대통령 스스로 밝힌 대로 나라가 '6·25 이후 최악의 위기'이고 '태풍 앞의 촛불'이다. 그런 국가가 120만 병력의 적 앞에서 자기 병력을 스스로 12만명이나 줄이고 수천 개 부대를 통폐합하는 난리 법석을 떤다는 것은 제정신이면 있을 수 없다. 이 놀라운 '하고싶은대로다해'는 육군 복무 기간을 18개월로 줄여 청년과 부모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다. 첨단 무기로 부족한 병력을 대체한다는데 대체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고, 시기가 있고, 걸리는 시간이 있다.

    한 전문가는 "이 군 감축안은 결국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날 확률이 0%라는 전제 아래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세상에 0% 희망에 기댄 국방 정책이 어디 있나. 일부 전문가는 한반도 전면전 가능성을 20%까지 보고 있다. 지금 미국은 북을 타격할 경우 북이 남한에 보복하지 않을 정도의 공격 수위가 어디까지인지 정밀하게 저울질하고 있다. 미국은 건국 이래 군사 조치를 문제 해결 방법으로 사용해 온 나라이며 이번에도 '김정은이 대남 보복을 못 한다'는 확신이 서는 공격 수위를 찾아내면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북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은 할 수 있어도 100% 알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 있는 나라가 당장 육군 10개 사단 병력을 줄인다고 한다. 현재도 북한이 전면 남침하면 전방이 뚫리는 것은 막을 수 없고 일주일 정도는 지나야 전선을 수습하고 반격할 수 있다. 이 위중한 시기에 국정원 대공 수사권을 경찰에 넘긴다는 것도 앞뒤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변 나라 대통령·총리가 모두 '하고싶은거다하는' 사람들이다. 시진핑은 헌법에 제 이름을 넣고, 푸틴은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할 생각이고, 아베는 평화 헌법을 바꾸는 최장수 총리가 되겠다고 하고, 트럼프는 자신을 '천재'라고 한다. 김정은은 사람을 마음대로 죽이는 왕이다. 이들이 문 대통령과 다른 것은 핵이나 거대한 경제력 둘 다 보유했거나 그중 하나는 가졌다는 사실이다. 둘 다 없는 한국에서 대통령이 국가 경영의 지혜와 슬기,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아니라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식이면 그 결과는 국민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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