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있는 정현 신드롬

입력 2018.01.23 18:04 | 수정 2018.01.25 11:01

세계 테니스 무대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정현(22)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23일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테니스’가 화제였다. 국민들은 “정현 덕분에 처음으로 테니스 경기를 끝까지 봤다” “얼마만의 테니스 스타인가” “정현이 찬 시계가 어느 회사 것이냐”며 오랜만에 나타난 대한민국 테니스 스타에 열광하고 있다.

정현이 2018 호주오픈에서 전 세계 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를 꺾은 순간 착용한 패션 아이템도 단박에 화제가 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그가 입은 티셔츠, 스포츠 고글, 테니스 라켓, 손목밴드, 시계까지 어느 브랜드의 제품인지 묻는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정현 선수가 경기를 마친 뒤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대한테니스협회 제공
정현 선수가 경기를 마친 뒤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대한테니스협회 제공

정현의 트레이드마크 ‘스포츠 고글’… 분당 안경점과 오클리 후원

정현은 7살 때 고도근시와 약시 판정을 받았다. 한참 크는 아이 눈에 칼을 댄다는 게 어머니는 싫었다고 한다. 의사는 “책을 읽는 것보다 초록색을 많이 볼 수 있도록 해라”고 조언했다. 아버지 정석진씨는 정현에게 테니스를 권했다. 푸른 테니스 코트를 보는 게 치료에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에서다. 정현은 라켓을 쥐면서부터 시력 교정용 안경을 썼다.

이번 호주 오픈에서도 정현이 안경을 벗고 땀을 닦는 모습이 자주 노출됐다. 정현이 착용한 스포츠 고글은 미국 오클리(Oakley)의 ‘플락 베타’ 모델이다. 가격은 렌즈 선택에 따라 17만~27만원 수준. 정현은 테니스를 시작한 초등학교 시절부터 오클리 스포츠 고글을 착용해왔다. 오클리는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창업한 스포츠 안경∙장비 전문 브랜드다.

룩소티카 코리아 관계자는 “어제 경기 이후 ‘정현이 쓴 안경이 무슨 제품인가’라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면서 “고객들이 정현 선수가 종횡무진 코트 위를 뛰어다녀도 안경이 벗겨지지 않는 것을 유심히 보신 것 같다”고 했다.

눈이 나쁜 정현에게 어린 시절부터 도움을 준 건 분당 아이원 안경원이었다. 테니스 마니아였던 하기철 아이원 안경원 대표는 “테니스 잘 치는데 눈이 나쁜 선수가 있다는 이야길 듣고, 실제 검사를 해보니까 시력이 별로 였다”면서 “유망선수 후원해보자는 생각에 스포츠 고글을 지원해왔는데, 이렇게 조코비치를 꺾어버릴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2015년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의 한 라도 매장에 방문한 정현. /Salon de Rado
2015년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의 한 라도 매장에 방문한 정현. /Salon de Rado

②정현이 착용한 시계 ‘문의 폭주’…라도 하이퍼크롬 캡틴쿡 45mm

정현이 8강 진출 후 경기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노출된 시계도 덩달아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정현 선수가 착용한 시계는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 ‘라도’의 ‘하이퍼크롬 캡틴쿡 45mm’ 제품으로, 가격은 286만원이다.

라도는 테니스에 관심이 많은 브랜드다. 지금까지 주요 테니스 대회의 공식 타임키퍼로 활동해왔고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들을 홍보대사로 지원했다. 대표적으로 2012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US오픈 테니스 대회 챔피언, 그리고 2013 윔블던 테니스 대회 챔피언에 등극한 앤디 머레이(영국) 선수가 있다.

라도는 2015년부터 차세대 유망주를 후원하는 ‘라도 영스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총 네 명의 선수가 첫 번째 영스타 팀으로 합류했다. 자레드 도날드손(미국), 사이사이 젱(중국), 카렌 카차노프(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정현이다.

③정현의 큰절과 낙서의 의미는?… 가족, 스폰서 등에 감사표현

경기가 종료되는 순간 정현은 한쪽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큰절을 올렸다. 이를 두고 경기를 보던 많은 시청자는 의아해했다. 이날 경기 후 정현은 인터뷰에 큰절에 대한 의미를 설명했다.

“가족, 스폰서, 매니저, 코치를 포함한 모든 분을 위한 인사였습니다. 막내인 나를 위해 모든 가족이 희생하지만 그 동안 고맙다고 표현하지 못했어요. 오늘처럼 멋진 경기장에서 승리 하면 '절을 한번 드려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마침내 그 기회가 왔고 자연스레 절을 하게 됐습니다.”


22일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16강에서 노박 조코비치를 꺾은 정현은 경기 직후 중계 카메라 렌즈에 매직으로 ‘보고 있나?’라고 썼다. /JTBC 중계화면 캡처
22일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16강에서 노박 조코비치를 꺾은 정현은 경기 직후 중계 카메라 렌즈에 매직으로 ‘보고 있나?’라고 썼다. /JTBC 중계화면 캡처
이날 정현 선수는 경기장을 나오면서 중계 카메라 렌즈에 ‘보고 있나?’라고 적기도 했다. 화면에 표시 안 된 윗부분에 ‘캡틴’이라는 단어가 함께 쓰여있었다. 풀어서 써보면 ‘캡틴, 보고 있나?’라는 문구가 완성된다.

이 글귀는 전 소속팀인 삼성증권 테니스단 김일순 감독을 향한 것이다. 2015년 삼성증권 테니스단이 해단했을 당시 마음고생이 심했던 김 감독에 이벤트를 해주기로 한 선수들 약속을, 정현이 잊지 않고 챙긴 것이다.

완벽 영어 인터뷰 정현, 영어공부의 비법은?

‘유창한 영어실력’덕에 정현의 인터뷰는 또 한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제스처를 섞어가며 조코비치에 대한 존경심, 재치 있는 유머를 구사했다.

사실 2016년까지만 해도 정현은 ‘영어 왕초보’였다. 독하게 배우기로 마음먹은 뒤부터 아예 미국 유학생을 매니저로 두고 투어 대회를 다녔다. 주로 인터뷰를 대비한 영어회화 개인교습을 받았다. 점차 자신감이 붙으면서 한국어로 말하던 인터뷰도 차츰 영어를 섞어가면서 진행했다. 최근에는 외신들의 영어질문에는 영어로 답하고 있다.

영어실력의 비결은 자신감에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구선일(35) 전직 영어강사는 “영어 자체는 허술하지만, 신뢰도를 높이는 중저음 목소리 톤이 좋고 질문에 감각 있게 받아 치고 응대하는 자신감이 영어를 잘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⑤ 정현과 라코스테


▲정현은 2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경기 직후 조코비치와 네트 근처에서 손을 맞잡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정현 인스타그램 캡처
“We are CROC FAMILY.(우리는 악어가족)”

조코비치를 꺾은 정현은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경기 직후 조코비치와 네트 근처에서 손을 맞잡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정현은 “더 이상 할말이 없다. 정말 감사하다”라며 조코비치 인스타그램 계정을 태그하고 “We are CROC FAMILY”이라는 말을 남겼다. 정현과 조코비치는 프랑스 캐주얼 브랜드 라코스테(LACOSTE)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라코스테는 지난 2016년 정현 선수와 5년간의 공식후원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에 따라 이번 호주오픈에서도 정현 선수가 입은 티셔츠 가슴팍에는 라코스테의 악어로고가 부착됐다.

라코스테는 테니스와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라코스테의 창업자인 르네 라코스테(Rene Lacoste)는 1927년 테니스 월드 챔프에서 우승한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다. 그는 직접 경기를 하면서 보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동작을 할 수 있는 옷을 찾다가 피케 소재의 반소매 셔츠를 브랜드의 대표 상품으로 선보였고 대성공을 거두게 됐다. 라코스테의 로고인 악어는 창업자의 별명이 악어였기 때문이다.

⑥ 아버지부터 형까지 모두 테니스 집안

정현의 아버지 정석진(52)씨는 대한항공에서 테니스 선수로 뛰었고, 정현의 모교인 삼일공고에서 테니스부 감독을 지냈다. 정현의 형인 정홍(25)씨는 현대해상에서 테니스 선수로 정현보다 먼저 테니스 라켓을 쥐었다. 정현은 날 때부터 테니스 집안에서 자란 셈이다.


2009년 정현 선수 가족 모습. 왼쪽부터 정현, 정석진(정현 아버지), 정홍(정현 형), 김영미(정현 어머니). /테니스코리아 제공
2009년 정현 선수 가족 모습. 왼쪽부터 정현, 정석진(정현 아버지), 정홍(정현 형), 김영미(정현 어머니). /테니스코리아 제공
이번 호주오픈 경기장에는 아버지 정석진씨와 형 정홍씨, 어머니 김영미(49)씨가 모두 동행해 정현을 응원했다. 특히 정홍씨는 대회를 준비하는 정현의 연습 파트너로 활약했다.
형 정홍씨는 다음달 5일 국군체육부대로 입대를 앞두고 있다.

⑦ ‘MB부터 정채연까지’… 정현에게 쏟아지는 ‘스타’들의 응원 봇물

정현이 조코비치를 꺾었다는 소식에 각계에서 쏟아지는 응원도 쏟아지고 있다.

‘테니스광(狂)’으로 알려진 이명박 전 대통령은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장 닮고 싶었다는… ‘우상’을 넘어섰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하면서 “아름다운 청년 정현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라며 “그를 응원한다”고 썼다.


테니스 치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사진기자단
테니스 치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사진기자단

연예계 별들도 찬사를 쏟아냈다. 전 테니스선수 전미라씨의 남편이기도 한 가수 윤종신씨는 2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정현이 승리 직후 선보인 세리머니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이겼다! 정현 장하다!”라고 글을 남겼다.

가수 성시경씨는 23일 한 케이블채널 새 예능프로그램 제작발표회에서 “월드컵 4강 같은 일이다. 시간이 되면 정현 선수를 꼭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오상진 전 MBC 아나운서도 인스타그램에 “내 생에 이런 날이 올 줄은… 감동. 이렇게 된 이상 더 높은 곳으로 가즈아!”라는 응원 글을 남겼다.

그룹 다이아 멤버 정채연과 예빈도 정현 응원 대열에 동참했다. 둘은 22일 각각 인스타그램에 “정현 선수님의 8강 진출을 진심으로 축하 드린다. 앞으로 열심히 응원하겠다. 다치지 마세요”라며 직접 그린 정현 선수 응원 팸플릿을 올리기도 했다.

⑧ 정현을 길러낸 장소와 사람들

정현은 열세 살인 2009년 미국 플로리다주로 건너가 닉 볼리테리가 설립한 IMG 아카데미에서 2년 동안 짧은 유학을 했다. 정현은 열두 살 때 세계적 권위의 국제 주니어 대회 에디 허 인터내셔널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IMG 아카데미는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마리아 샤라포바와 안드리 애거시를 길러낸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 정현의 소속사도 IMG로 지금껏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닉 볼리테리는 “당시 정현은 투지가 좋은 선수였지만 체구가 작았다”며 “솔직히 정현이 이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정현은 2012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약 5년간 윤용일 코치의 가르침을 받았다. 윤 코치는 현역 시절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활약했고 은퇴 이후 ‘한국 테니스 간판’ 이형택을 전담 지도했다. 정현은 올해 초부터 네빌 고드윈(43·남아공) 코치와 호흡을 맞추고 있고 있다. 고드윈 코치는 케빈 앤더슨(12위·남아공)을 지도하면서 지난해 US오픈 준우승자로 만들면서 주목 받았다. 2017시즌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올해의 코치’에 선정됐다.

⑨정현의 ‘백핸드’ 비결은?

정현의 정상급 백핸드 실력은 어릴 적 왜소했던 체격에서 기인한다. 김영홍 테니스국가대표팀 코치는 “정현은 어릴 때 키가 작고 왜소해 한 손으로 주로 치는 포핸드보다 양손으로 치는 백핸드를 잘했다”고 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백핸드 실력을 유지한 것은 정현의 노력이다. 김 코치는 “리치가 짧은 백핸드를 잘하려면 체력과 속도가 필수”라며 “보통 키가 크고 몸이 커지면 다리가 느려지기 마련인데 정현은 몸이 커지면서 다리도 빨라졌다”고 했다.

정현은 지난해까지 백핸드 위너가 많았지만, 이번 호주오픈에서 정상급 포핸드 실력을 뽐냈다. 김 코치는 “정현은 탑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포핸드를 장착하려고 오랫동안 고심하고 노력했다”며 “정현은 연구를 굉장히 많이 하는 선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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