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독거노인이 집주인에게 670만원 남긴 사연

입력 2018.01.23 17:22

지난 22일 낮 12시쯤 부산 사상구 모라동 한 단독주택 2층. 집주인 전모(70)씨는 옥상으로 올라가다 같은 2층에 세들어 사는 장모(65)씨의 방에 인기척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문을 살짝 열어봤다. 장씨가 방 바닥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옆에는 농약병이 있었고, 장씨는 숨진 상태였다.
방안에 친 빨랫줄에는 커다란 달력 뒷면에 쓴 유서가 빨래 집게에 집힌 채 걸려 있었다. ‘아저씨, 아주머니(집주인 내외) 제 몫까지 오래 오래 사세요, 저는 저승으로 갑니다, 돈 놓고 가니 잘 쓰세요, 안녕히 계세요’이라는 내용이었다. 방안 화장대에는 5만원, 1만원, 5000원, 1000원 짜리 지폐 670만원 가량이 차곡히 쌓여 있었다.
23일 부산 사상경찰서에 따르면 숨진 장씨는 30년 전 이혼 후 가족과 연락을 끊고 혼자 살아왔다. 10년 전부터 이 주택에 세들어 살았다. 노동 일용직을 전전했지만 2년 전부터는 일감을 구하지 못해 기초생활수급자로 집에서만 생활했다.
이 같은 처지를 알고 있던 집주인 부부는 쓰지 않는 창고에 장씨의 물건 등을 넣어 둘 수 있도록 해 주고, 장씨의 말벗이 돼 주기도 했다. 맛나는 음식이 있으면 장씨와 틈틈이 나눠 먹었다. 숨진 장씨는 최근 치아 치료를 받고, 발목까지 삐어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는 말을 자주했다.
집주인 부부는 짠한 마음에 더욱 장씨를 챙겼다. 장씨가 숨지기 전날에도 이들 부부는 잡채를 한 것이 있어 장씨를 찾았으나 인기척이 없어 그냥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경찰은 “마지막 순간에라도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 줬던 노부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씨의 돈은 유서가 법적 효력이 없어 노부부 대신 연락이 닿은 장씨의 딸이 받아 장례비로 쓰기로 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부산=권경훈 기자 werth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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