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대통령은 누굴 잡아넣거나 장관 시킬 순 있다… 그걸 權力으로 알면 큰일"

조선일보
  •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8.01.22 03:04


    ['노무현 청와대'의 정책실장 김병준씨]

    "권력 잡으면 빠지는 늪이 자기끼리 뭉치는 '패권주의'
    권력이 무얼 위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꼭 해야 할 일을 못하는 무능한 대통령이 되거나
    부메랑처럼 날아오는 권력의 칼에 맞을 운명"

    문재인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감정을 폭발한 날에 김병준(64)씨를 만났다. 그는 노무현 정권에서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 교육부 장관, 정책특보 등 핵심 역할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했을 때, 문 대통령의 분노는 이해할 수 있지만 사실은 사실 아닌가?

    "정말 이런 식으로 안 부딪쳤으면 좋겠다. 노무현의 유언에는 진심이 담겼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그 뜻을 깊이 새겨야 한다."

    김병준 전 정책실장은“박근혜 대통령은 대면 자리에서‘내가 한 정책 중에서 무엇이 틀렸느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김병준 전 정책실장은“박근혜 대통령은 대면 자리에서‘내가 한 정책 중에서 무엇이 틀렸느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현 정권의 핵심 세력은 '이명박은 꼭 손보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댓글 수사'로 엮으려다 안 되니 '다스'와 '국정원 특활비'까지 모두 터는 것으로 비친다.

    "문재인의 청와대가 한 건(件) 한 건 그렇게 지시하진 않았을 거다. 검·경찰에서 권력의 눈치를 더 보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이 검찰 인사권을 강력하게 행사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권력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하라'고 검찰의 정치 중립을 요구했으면 이런 시비에서 덜 휘말렸을 것이다."

    ―야권에서는 '좌파 정권도 국정원 특활비를 갖다 썼는데 왜 보수 정권만 뒤지느냐'고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특활비를 안 받겠다고 했다. 청와대 근무하면서 나도 그런 돈은 한 푼 받은 기억이 없다."

    ―노무현 정권은 결백하다는 건가?

    "국정원 특활비는 안 썼지만, 청와대가 각 부처 예산을 어떻게 쓰라고 개입했다. 돈을 가져다 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가령 행정안전부의 특별교부세 중에서 몇백억원씩 청와대 임의로 썼다. 청와대 예산은 늘 모자랐기 때문이다. 이런 불합리한 관행을 청산하려면 청와대 예산을 올려주는 등 환경과 제도를 만들어야지, 과거를 척결하려면 새로운 것을 내놔야 한다. 지금처럼 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청산은 아니라고 본다."

    ―노무현의 청와대 시절을 마치고 난 뒤 무엇이 가장 후회됐나?

    "개인이나 정권 차원에서 후회할 게 너무 많았다.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도 많았고 좀 더 설득을 잘하는 방법을 찾았어야 했는데. 내부적으로 우리가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어설펐다. 선거에서 이기자는 측면에서 무리한 공약이 있었다. 막상 꼭 해야 할 일을 많이 놓쳤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걸로 여겼는데, 막상 대통령이 되자 권력의 한계를 많이 느낀 것 같다. 권력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과는 다른 면이다."

    ―문재인 정권이 과거를 온통 다 뒤집고 있는 걸 보면 '권력이 이렇게 세구나'라는 생각도 드는데.

    "대통령은 누구를 잡아넣고 죽이고 특혜 주고 살리고 장관을 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 권력이라고 알면 큰일 난다. 국민이 원하는 권력은 그게 아니다. 국민이 높은 수준의 정책적 담론을 할 수 있게 해야 앞으로 사회가 바뀌는 것이다. 현 정권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산업 구조 조정이나 금융시장 개혁, 인력 양성 체계 혁신 등에는 손을 놓고 있다."

    ―대다수 국민의 열망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권 또한 주어진 임기 5년을 그냥 소모하고 말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권력을 잡으면 빠지는 늪이 자기들끼리만 하겠다는 '패권주의'다. 나도 대통령 권한을 빌려 많은 걸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해보니까 안 됐다. 정권이 성공하려면 화합과 통합을 외치고, 다른 쪽을 설득해야 하고, 같이 가려고 노력해야 하며, 국민에게는 양보와 인내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이 무엇을 위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당신은 노무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지만 그 뒤 친노(親盧) 세력과는 멀어진 것 같다.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가 있었나?

    "개인적으로는 이들과 만나지만, 현 집권 세력과는 생각이 다르다. 나는 시장과 공동체의 역할을 중시한다. 시장에서 설령 막춤을 추더라도 추게 놔둬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이 공정하게 작동하도록 규칙을 관리하는 데 멈춰야 한다. 시장이 할 수 없는 국가 안보나 소외 계층 복지 등의 영역에 한정돼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가 나서서 모든 것에 개입하려고 해선 안 된다."

    '노무현 청와대'의 정책실장 김병준씨(오른쪽)
    ―자유주의와 시장 경쟁은 보수(保守)의 가치인데, 이런 생각을 갖고 노무현 청와대의 정책실장을 했나?

    "노무현 정권 시절 '아파트 원가 공개'가 논의됐다. 청와대 안에는 공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주류였다. 어느 자리에서 노 대통령이 이에 관한 질문을 받자 '그건 장사의 원리에 안 맞죠'라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이 때문에 한·미 FTA, 서비스산업 육성, 의료를 산업으로도 보는 영리병원 추진을 할 수 있었다. 노 대통령이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나를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노무현 정권은 '좌파 내 비주류'로 분류됐는데, 시장 얘기를 듣는 게 놀랍다.

    "노 대통령은 시장의 역동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산업 구조 조정을 해야 하는데 과거에는 정부 권력으로 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글로벌 세상에서 방법은 외부의 강한 시장을 불러 들여와 구조 조정을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미 FTA도 그런 차원이다. 일부 미꾸라지(산업)는 죽겠지만 대다수 미꾸라지는 경쟁력이 생긴다. 노 대통령이 직접 말한 '메기론'이다."

    ―당시 문재인 수석과는 관계가 어땠나?

    "일이 달랐기에 부딪칠 일은 없었다. 문재인은 정책적으로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가까웠다. 노 대통령은 좌우(左右) 양쪽에 참모가 있었다고 보면 된다. 내부적으로 노선 싸움이 있었지만 노무현은 내 손을 들어줬다. 그러니까 내가 버틸 수 있었다."

    ―당신은 '노무현 기념행사'에서는 잘 안 보이던데?

    "일부러 안 간다. 노무현 행사는 '정치 행사'가 됐다. 어느 정파나 좌파 논리로만 노무현을 설명할 수 없다. 노무현은 어느 한 정당과 정파의 상징이 돼서는 안 된다. 어떤 정파가 노무현을 끌어안는 만큼 다른 정파에서는 반대하게 돼 있다. 제발 정치권에서 노무현을 놔줬으면 좋겠다."

    ―당신은 '노무현 사람'인데 이제는 보수 진영과 가까워졌다. 어제는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에서 불러 강연했다고 들었다. 당신이 바뀐 것인가, 세상이 바뀐 것인가?

    "내 생각은 그때나 바뀐 것이 없다."

    ―촛불 정국 때 박근혜 대통령이 당신을 총리로 지명한 것은 반대 진영을 무마하기 위해 그랬나, 아니면 당신이 보수 쪽 사람이라고 본 것인가?

    "박 대통령 속을 알 수는 없고, 그분이 '당과 주위에서 당신을 추천했으니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나. 합리적이라고 들었다'고 말하더라."

    ―총리 제의를 받은 뒤로 지금의 여당과는 완전히 갈라서게 됐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내가 총리직을 받겠다고 결심한 뒤 박 대통령께 '며칠만 발표를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야당에 찾아가 설득이 안 되더라도 예의를 갖추려고 했다. 그렇게 얘기를 할 기회를 안 줬다. 수락한 그날 뉴스로 보게 됐다. 워낙 상황이 급했으니까 이해는 되지만…."

    ―박 대통령과는 처음 만났나?

    "노무현 시절 몇 번 만났다. 야당 대표에 당선됐을 때 내가 축하란을 들고 갔고, 청와대 회동 때마다 내가 옆자리에 앉았다. 작년에 총리직을 제의하기 전에도 따로 만났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걱정되지 않았겠나. 총리를 시켰는데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안 되니까."

    ―총리를 시키면 상황 수습에 대해 어떤 방안이 있는지 들으려 했던 건가?

    "내가 거국내각 구성과 2선 후퇴 및 탈당을 제시했고, 박 대통령이 받아들였다. 대면 자리에서 '자진해서 수사를 받으라'고 꺼낸 이는 아마 내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러겠다고 했다. 이보다 당시 대화는 주로 박근혜 정책에 관한 것이었다."

    ―박근혜 정책이라면?

    "박 대통령이 '내가 한 정책 중에서 무엇이 틀렸느냐'고 묻기에 '국정교과서와 사드 배치는 잘못됐다'고 답했다.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면 전교조는 더 강력하게 나올 것이다. 이런 일은 논리와 철학, 명분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사드를 배치해야 할 입장이었다면 중국의 반발을 예상해 산업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대비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현 정부가 출범해 사드 문제를 뒤집으려다가 한·미 동맹에 균열을 냈는데?

    "앞선 정부가 결정했으면 지켜야 한다. 한·일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가 간 약속은 지켜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번복하면 국제사회에서 신용을 잃는다."

    ―박근혜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나?

    "대통령을 모셔본 입장에서 대통령직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다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구도다. 그걸 이해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 자리에 앉는다. 쉽게 약속하고 진영 논리에 빠져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꼭 해야 할 일을 못하는 무능한 대통령이 되거나, 권력의 칼이 부메랑처럼 날아오는 것을 맞아야 하는 운명이다."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설이 나오고 있다. 본인도 '마이크를 잡고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정치에 뜻이 있음을 비쳤는데?

    "진짜 우리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리고 싶다. 꼭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어도 현 정권에서는 논의조차 안 된다. 국가주의와 패권주의, 대중영합주의에 빠져 있다. 세월호 사고를 겪고는 안전 문제를 다 해결한 것처럼 말했지만 여전히 똑같은 상황이다. 그걸 무기로 삼아 상대를 찌르는 데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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