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27일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서 '미세 먼지 시민 대토론회'를 열었다. 시민·전문가 3000명이 모여 미세 먼지 퇴출을 위한 아이디어를 모으자고 했다. 가장 많이 나온 의견은 경유차 운행 제한과 차량 2부제(20%), 중국 외교 협력 강화(11%)였다. 토론회 막바지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연단에 올랐다. 마이크를 잡은 박 시장은 "미세 먼지가 심한 날에는 출퇴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무료로 운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시 관계자는 "시 내부 회의에서 '파리 대중교통 무료 정책을 벤치마킹하자'는 의견이 나와 시장이 깜짝 발표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래서 시 내부에서는 '무료 운행'이 대표적인 '박원순표 정책'으로 통한다.

◇서울시 내부에서도 "출구가 없다"

올해 처음 실시한 이 정책이 시민 세금을 잡아먹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시 내부에서도 "진퇴양난이다. 출구가 없다"는 소리가 나온다. 18일 서울시는 출퇴근 시간 버스·지하철을 무료로 운행했다. 올 들어 세 번째다. '공짜 대중교통' 한 번에 50억원 정도가 소요된다. 벌써 150억원이 들어간 것이다. 정작 미세 먼지 감소 효과는 미미했다. 교통량 감소는 무료 시행 첫날 1.8%였다가 둘째 날 1.71%로 떨어졌다. 사흘째에 2.36%로 소폭 올랐다.

미세먼지에다 황사까지… 서울은 회색 도시 - 18일 서울 서대문구 안산에서 서울 도심이 흐릿하게 보인다. 이날 서울의 일평균 미세 먼지 농도가 70㎍을 기록하는 등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미세 먼지와 황사가 기승을 부렸다. 서울시는 올해 세 번째로 대중교통을 무료로 운행했다.

박 시장의 '미세 먼지 승부수'는 나름대로 세밀한 전략에서 나왔다. 정책 발표 직전인 지난해 5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중앙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미세 먼지 대응이 예견됐다. 환경부에서 2018년 차량 의무 2부제를 추진할 움직임이 보였다. 환경부의 2부제를 끌어낼 선도적인 정책을 내놓자는 의견이 시 내부에서 나왔다. 환경부가 발령하는 '비상 저감 조치' 기준을 살펴보니 2017년 기준 7일이 해당됐다. 많아야 350억원이면 '무료 운행'이 가능할 것으로 봤던 것이다. 그러나 미세 먼지가 심해지면서 계산이 완전히 어긋났다.

'공짜 운행' 예산은 시의 재난관리기금에서 나온다. 재난 예방과 대응·복구에 쓰는 기금이다.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는 태풍·호우·대설 등을 재난으로 규정한다. 미세 먼지는 포함돼 있지 않다. 서울시는 박 시장의 무료 운행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해 7월 미세 먼지를 재난으로 규정하는 내용을 '서울시 재난 및 안전관리 조례안'에 포함시켰다. 이를 근거로 지난해 12월 기금 중 249억2000만원을 공짜 대중교통 예산으로 잡았다.

◇시의회에서도 "방향 선회해야" 등 돌려

현재 마련된 예산 249억원은 무료 운행을 두 번 더 시행하면 동난다. 시에서는 추가 예산이 필요하면 3768억원 규모의 재난관리기금에서 또 예산을 편성 받아 쓰겠다고 한다.

이와 관련 18일 서울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추가 예산 심의는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고 제동을 걸고 나섰다. 시의회 예결위 박진형 위원장은 이날 "서울시 대중교통 무료 정책의 방향 선회를 강력히 주문한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서울시 초미세먼지 배출 원인 1위(39%)인 난방 발전 분야에는 4억8000만원을 쓰면서 배출 원인 2위(25%)인 자동차 분야에 150억원을 투여하는 것은 우선순위가 바뀐 비합리적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 위원장마저 박 시장의 정책에 등을 돌린 것이다.

시 내부에서도 공짜 정책에 대해 "시장이 낯뜨거운 선심성 정책을 내놨다"고 한다. 한 서울시 공무원은 "지방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박원순표 정책'에 대해 쉽게 반대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시행 둘째 날인 17일 교통량 감소율이 첫날보다 낮게 나오자 관련 부서 담당자가 "누군가 나서서 그만하자고 말해야 할 때"라고 했다. 그러나 누구도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고 한다.

공짜 운행으로 날아간 150억원이면 서울시 모든 시민에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KF-80'(평균 0.6㎛ 크기 미세 입자를 80% 이상 차단할 수 있는 수준) 인증을 받은 마스크를 3장씩 지급할 수 있다. 서울의 모든 어린이집과 노인 복지 시설에 공기청정기를 3대씩 보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