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세 권사의 고백… "남는 건 사랑뿐이네요"

    입력 : 2018.01.19 03:02

    80년 신앙고백서 펴낸 황숙희씨, 10년 전부터 쓴 글 36편 모아
    "理想 잃은 삶이 더 늙어 보여… 나이 들수록 돕고 사랑하세요"

    "만나는 사람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삶을 살고 싶다."

    우리 나이로 백수(白壽) 99세를 맞은 할머니가 개신교 영성과 삶의 지혜를 담은 책 '남는 건 사랑뿐일세'(도서출판 다비다)를 펴냈다. 주인공은 황숙희 권사. 1920년생인 그는 숙명여고를 나와 경성여자사범대를 졸업하던 1939년 결혼하면서 시어머니 권유로 삼청감리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올해로 80년째. 교사 생활도 했던 그는 원우현(76) 고려대 명예교수 등 6남매를 키워냈고 지금은 서울 강서구의 한 실버타운에 산다.

    책은 150여 쪽 남짓. 한데 책장 넘기는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계속 밑줄을 긋게 만들어서다. 기도와 묵상으로 곰삭은 영성이 모든 문장에 스며 있다. 10여 년 전부터 작년까지 쓴 글 36편은 '사랑'과 '감사'로 가득하다. 교회 주보에 실린 '성경 퀴즈' 한 문제라도 틀리면 속상해했다는 그가 성경 말씀을 숙독한 흔적이 역력하다. 수년 전 일본의 시바타 도요 할머니가 99세에 펴낸 시집 '약해지지 마'가 연상되기도 한다.

    100세를 앞두고 삶과 신앙을 돌아보는 책 ‘남는 건 사랑뿐일세’를 펴낸 황숙희(가운데) 권사. 왼쪽은 아들 원우현 교수, 오른쪽은 며느리 이방숙씨. 원 교수가 아버지 원치승씨의 사진을 들고 있다. 이 사진은 화장대 옆에 놓여 있었다.
    100세를 앞두고 삶과 신앙을 돌아보는 책 ‘남는 건 사랑뿐일세’를 펴낸 황숙희(가운데) 권사. 왼쪽은 아들 원우현 교수, 오른쪽은 며느리 이방숙씨. 원 교수가 아버지 원치승씨의 사진을 들고 있다. 이 사진은 화장대 옆에 놓여 있었다. /김지호 기자

    그는 "나이 든 사람보다 이상(理想)을 잃고 게으른 사람이 더 늙어 보인다"고 말한다. "감사는 우리를 건강하게 한다"며 "노년이 될수록 도움받는 인생이 아니라 돕는 인생, 사랑받기를 기다리는 인생이 아니라 열심히 사랑하며 사는 인생이 되라"고 한다. 또 "인생의 겨울은 71세~세상 끝. 계절은 각각의 사명이 있다. 겨울에는 낙엽이 지고 떨어져서 거름이 된다. 사회와 가정을 위해 기도의 밑거름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한다.

    '제일 행복한 것, 사랑'이란 글에서 그는 '제일 좋은 ○○' 시리즈를 정리했다. '시간:지금/선물:미소/큰 손해:친구를 잃는 것/필요 없는 재산:자존심/불필요한 것:불평/행복한 것:사랑/큰 실수:할 수 없다는 생각/나쁜 마음의 병:질투/좋은 언어:침묵'을 꼽았다.

    지난 16일 황 권사가 살고 있는 실버타운을 찾았을 때 아기처럼 맑은 여인의 미소가 객을 반겼다. 그가 대학노트를 보여줬다. '예상 문답'이 적혀 있었다. "귀가 어두워져 혹시 질문을 못 알아들어 실례할까 싶어 준비했다"며 웃었다. 황 권사는 "'인생 보고서' 삼아 쓴 글을 아들이 주선해 책으로 만들어줬다"고 했다. 또 "시어머니 덕분에 신앙을 가지게 돼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며 "늙어서도 하나님이 보호해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했다.

    백수의 황 권사는 "죽음은 행복"이라고 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그래도 잘 살다가 하나님 앞으로 간다는 것이 보통 일인가요.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가요." 책에서도 그는 "그리스도인은 슬퍼할 필요가 없다. 죽음은 두려워할 종말이 아니라 다시 산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완전한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다"고 썼다. "손자·손녀들이 크리스마스 카드에 '할머니 기도 덕분에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써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라는 황 권사는 '천국에서 남편을 만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또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어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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