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 '음란서생'을 사로잡다

조선일보
  • 배한성 성우·서울예술대 초빙교수
    입력 2018.01.19 03:02

    배한성이 본 '테이트 명작展'

    배한성 성우·서울예술대 초빙교수
    배한성 성우·서울예술대 초빙교수
    지금은 아름다운 은퇴의 삶을 즐기는 A선배는 여성 아나운서로 최장수 인기를 누렸다. 똑 부러진 성격에 뛰어난 음성과 학벌까지 콧대도 높았다.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 한 토막.

    1960년대 젊은이들의 휴일 여가는 극장을 가거나 근교 산으로의 등산이 고작이었다. 어느 날 지인들과 산행에 나선 A선배 그만 자연(?)이 부르는 난감한 상황이 찾아왔다. 그날따라 동료 여성도 없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자 멤버들의 성향을 분석했다나. 말이 없고 순진무구한 B씨에게 망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낯선 등산객이 불쑥 나타났고, 화들짝 놀란 B씨가 소리쳤다. A선배 잽싸게 일어나던 중 엉덩이 맨살이 그만 노출됐는데, 문제는 얼떨결에 그 장면을 B씨가 보았다는 것이다. A선배가 말했다. "내 맨살을 본 건 저 남자가 처음이어서 할 수 없이 결혼했지롱." 그 해프닝이 해피 웨딩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 세대에게 여성의 노출은 일종의 금기였다. 풍기문란죄로 미니스커트 길이까지 단속하지 않았던가. 그런 시대를 살았으니 누드는 언감생심이었다.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나 '풀밭 위의 점심식사' 정도밖에 몰랐다.

    누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최고경영자 아카데미에서 공부할 때다. 커리큘럼에 누드 스케치와 미술 특강이 있었다. 벨기에의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인 카미유 레모니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누드와 옷을 벗는 것은 다르다. 팬티를 벗고다니거나 슈미즈를 막 벗어 던진 여성은 누드라고 할 수 없다. 누드가 품격을 갖추려면 순간적인 상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누드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는다. 뭔가를 감추려 하는 순간 음란해진다. 실제로 아무것도 감추지 않아야만 더 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앙리 마티스의 1936년작 ‘옷을 걸친 누드’.
    앙리 마티스의 1936년작 ‘옷을 걸친 누드’. /테이트미술관

    하지만 예술적 감성보다 '흑심'이 앞서는 건 어떻게 해야 할까. 소마미술관 '테이트명작전―누드'에 나온 앙리 마티스의 '옷을 걸친 누드' 앞에서 음란서생처럼 서 있었으니 말이다. 누드를 대하는 대중적 호기심과 속물성은 외설·관음·변태 같은 단어와 함께 보는 사람의 관점과 격의 문제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피카소에서 데이비드 호크니를 망라한 122점 걸작이 모두 여성 누드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8개의 테마여서 인체의 미학부터 성경과 신화, 초현실주의적 기발한 상상과 공상력까지 넘나든다. 중요한 것은 '이 전시의 미션이 무엇인가?'일 것이다. 인간의 몸에 대한 예술적인 물음과 답을 각양각색으로 생각하게 해준다는 것 아닐까.

    그 마지막에 로댕의 '키스'가 있다. 진품을 보니 어떻더냐고 사람들이 물을 때 뭐라 말할 재주가 없다. "이번 생애에 또다시 보기는 힘들겠죠? 직접 느껴보시죠"라고 할 뿐. 한마디 덧붙였다. "2월 4일까지입니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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