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접종했는데도 독감 걸렸어요"...WHO 예측 빗나갔다

입력 2018.01.17 13:42 | 수정 2018.01.17 14:32

서울에 거주하는 김소연(31)씨는 “온 식구가 독감에 걸렸다”며 “일주일 전 남편이 걸렸는데, 이틀 전부터 인후염과 콧물, 기침이 있다가 저녁부터 오한이 일면서 열이 확 오르고 두통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 씨는 “어젯밤에 두살 아기까지 열이 올라 독감에 걸린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올 겨울 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2017~2018절기 인플루엔자(독감) 유행주의보를 첫 발령한 작년 11월 당시 독감 의심 환자는 1000명당 7.7명이었다. 하지만 유행주의보 발령 약 6주 만인 작년 12월 30일부터 이달 6일까지 독감 의심 환자 수는 1000명당 72.1명으로 약 10배 이상 늘어났다.

이례적인 독감 유행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중국,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도 ‘빨간불’이 켜졌다. 중국 보건당국은 독감 긴급 환자 수가 최근 3년 동안 최고치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현지 언론은 2002년 11월에서 2003년 7월까지 유행해 700여명이 사망한 ‘사스(SARS·중증급성 호흡 증후군)’보다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미국 46개 주에서는 동시에 독감이 발생해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 20여명이 사망했고 앨라배마 주의 경우 단체 감염 사태로 비상 휴교령이 선포됐다. 영국에서도 이번 겨울 독감으로 100명 가까이 숨졌으며 이중 절반가량이 최근 일주일 새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 DB
◆ A형·B형 동시 유행…백신 맞고도 독감 걸린 이유는?

보건당국과 전문가들은 “올 겨울 이례적으로 A형과 B형 인플루엔자가 동시에 유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감기는 200여개 이상의 서로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감기와 달리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돼 발생하는 급성호흡기질환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A, B, C형 3가지가 있는데, A형과 B형이 사람한테 발병한다. 인플루엔자 의심환자는 38℃ 이상의 갑작스러운 발열과 함께 기침 또는 인후통, 오한, 근육통 등의 증상을 보인다.

예년에는 12월~1월 사이 A형(H3N2, H1N1)독감을 시작으로 3월~4월에는 B형 독감이 유행하는 패턴이었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질병관리본부 인플루엔자 실험실 감시 결과, 50% 이상이 B형이었고 A형 중 ‘H3N2’ 인플루엔자가 39.3%, H1N1 인플루엔자가 6.1%로 검출됐다.

특히 올 겨울에는 ‘인플루엔자 예방 접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독감에 걸렸다’는 이들이 많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바이러스마다 백신이 다르기 때문에 백신을 맞았다고 안심할 상황이 못된다”고 설명한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B형 바이러스는 ‘야마가타(Yamagata)’ 계열과 ‘빅토리아(Victoria)’ 계열로 나뉘는데, 현재 유행하고 있는 바이러스는 야마가타 계열”이라며 “3가 독감백신으로는 야마가타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없어, 백신을 맞고도 독감에 걸렸다는 환자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이미 A형 독감에 걸려 회복되더라도 B형 독감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각 바이러스의 백신이 달라 교차 면역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이러스 유형이 달라 면역항체가 생겨도 또다른 바이러스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절기별 인플루엔자 입원환자 현황. 2017년~2018년(현재)이 붉은색 그래프로, 2016년~2017년과 2015년~2016년보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 / 질병관리본부 제공
세계보건기구(WHO)의 빗나간 예측이 독감 환자 증가에 크게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나왔다. WHO는 앞서 유행한 독감 바이러스 역학 자료를 분석해 그 해 유행할 독감 바이러스의 종류를 미리 선정, 발표한다. 백신 제조사들은 WHO의 권고에 따라 해당 바이러스가 포함된 백신을 생산한다.

WHO는 올 겨울에 유행할 바이러스로 A형(H1N1형, H3N2형), B형 중 빅토리아형을 선정했고, 이에 올해 보건소에서 접종한 백신(3가 백신)에는 3가지 바이러스가 포함됐다. 하지만 WHO 예상과 다른 B형 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올 겨울 백신은 3가 백신 A(H3N2), A(H1N1), B빅토리아형과 4가 백신 A(H3N2), A(H1N1), B빅토리아, 야마가타형으로 조성됐다”며 “현재 유행 중인 B형은 ‘야마가타 리니지’로, 국가예방접종대상에 들어있는 3가 백신에 포함되지 않아 백신의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달 말부터는 독감 환자 수가 줄어들 전망이다. 김우주 교수는 “현재 유행하는 A형/B형 바이러스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예측한 계절 독감 바이러스로, 신종바이러스가 아니므로 대유행을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며 “1월 말에는 환자 증가 속도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 면역력 약한 노인과 영·유아, 임신부 더 조심해야

조선닷컴 DB
독감은 38℃ 이상의 고열, 인후통, 마른기침 등의 호흡기증상과 두통, 근육통, 식욕부진 등 전신증상이 나타난다. 노인이나 영‧유아, 만성질환자, 임신부 같이 고위험군이 독감에 걸리면 합병증, 증상악화, 사망에 이를 위험이 있다.

최천웅 강동경희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65세 이상 노인이 독감에 걸리면 만성심장질환과 폐질환, 당뇨, 만성신부전 등 기존에 앓고 있던 만성질환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며 “독감 예방접종은 증상을 완화하고 합병증을 줄이는 효과는 충분하기 때문에 고위험군은 접종시기가 지났어도 필수로 접종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감의 가장 심각한 합병증은 폐렴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세균에 감염돼 세균성 폐렴이 나타날 수 있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감염 위험이 크기 때문에 면역력이 약한 65세 이상 고령인 경우 폐렴이 또다른 합병증(패혈증, 호흡곤란, 폐농양 등)을 야기할 수 있어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폐렴도 감기와 증상이 비슷하지만 고열이 있고 기침, 누런 가래가 일주일 이상 지속된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노인의 경우 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이유 없이 기운이 없고, 식욕이 떨어지거나 자꾸 졸리다면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최천웅 교수는 “폐렴 예방의 가장 좋은 방법은 폐렴구균백신 접종”이라며 “65세 이상에서 폐렴구균백신 접종률이 23%에 불과해 독감 예방접종과 같이 맞으면 효과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바이러스가 기침이나 재채기 등을 통해 번지기 때문에 입을 가리고 기침하는 에티켓을 지켜야 하며 특히 노약자는 외출 시에 가급적 마스크를 꼭 착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독감 예방을 위해서는 손씻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또 갑자기 고열과 함께 목이 아프며 기침이 난다면 빨리 병·의원을 찾아야 한다. 독감 백신 접종 후 항체가 생겨서 예방효과가 나타나는 데 2주 이상 걸리므로, 독감 예방과 건강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독감에 걸렸을 때 빠르게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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