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영어수업 금지' 20일만에 없던일로

입력 2018.01.17 03:03 | 수정 2018.01.17 08:41

[백기 든 교육부 "원점서 재검토"]

반대여론 강하자 수차례 말바꿔… 現 수업방식 조사도 않고 강행
학부모들 "우릴 사교육 내몰아… 유치원 영어 아이가 재밌게 배워"
졸속 정책에 교육현장만 혼란

교육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전국 5만여 개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 후 영어 수업 금지 방침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지난 20일 동안 '수업 금지→금지 여부 미확정→시행 시기 미확정'으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다, 학부모의 강력 반발이 이어지자 금지 여부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교육부는 16일 "유아 방과 후 수업을 금지하면 사교육 부담과 영어 교육 격차가 늘어난다는 등 국민의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이기로 했다"면서 "다양한 국민 의견을 수렴해 유치원 방과 후 과정 운영 기준을 내년 초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앞으로 1년 동안 의견 수렴을 거쳐 국가 차원에서 영어 방과 후 수업을 전면 금지할지, 현행처럼 시도교육청 자율에 맡겨둘지를 결정할 계획이다. 현재 17개 시·도 중 세종과 제주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교육청 차원에서 영어 방과 후 수업을 금지하고 있다. '유치원·어린이집 영어 방과 후 수업 금지'는 지난해 8월 '수능 개편안 철회'와 함께 교육부가 설익은 정책을 발표했다 철회한 '대표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실태 파악도 않고 금지 발표… 공감 못 얻어

교육부가 영어 방과 후 수업 금지 정책을 전면 재검토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학부모의 반발 때문이다. 교육부가 지난달 27일 '유아교육혁신방안'을 발표하면서 관련 내용을 발표하자마자,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 등엔 "아이가 좋아하는 수업을 왜 금지하느냐" "그럼 학원에 가란 말이냐"는 학부모의 불만이 분출했다.

문재인 정부의 설익은 교육·복지 정책
교육부는 "유치원·어린이집 영어 방과 후 수업이 지나치게 학습 위주로 운영돼 금지하겠다"고 하면서도, 학습 위주로 운영되는 실태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실태 조사도 하지 않고 일부 시도교육청과 민원인 이야기를 듣고 "학습 위주로 운영돼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금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당장 "우리 아이는 노래를 통해 재미있게 영어를 배우는데, 왜 자꾸 학습이라고 하느냐. 공감이 안 된다"는 불만이 나왔다.

교육부는 의견 수렴도 제대로 하지 않고 정책을 밀어붙였다. 수요자인 학부모는 물론 어린이집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와 협의하지 않은 채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교육부 발표 후 뒤늦게 어린이집과 협의에 나서기도 했다. 전국 9000개 유치원은 교육부가, 4만1000개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가 관할한다.

◇"정책 졸속 결정… 현장 혼란스러워"

교육부는 16일 "영어 방과 후 금지 정책을 재검토하겠다"면서도 "조기 영어 교육을 지양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교육부는 '놀이 위주로 운영, 1일 1시간 이내 운영' 등의 영어 수업 지침을 유치원에 보내왔다. 당장 올해부터 이런 지침을 어기고 유아를 상대로 장시간 특별 활동 수업을 하거나 과도한 교습비를 걷는 경우, 편법으로 유치원과 학원을 함께 운영하는 경우 등을 점검해 강하게 제재한다는 계획이다.

교육부는 "(어린이집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와 과도한 영어 교육을 제재하는 방안을 함께 추진하기로 협의했다"고 밝혔다. 유치원뿐 아니라, 어린이집에서도 방과 후 수업에서 지나치게 학습 위주로 운영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교육부는 유치원에 지금까지 방과 후 수업을 놀이 중심으로 하라는 지침을 알려왔지만, 우리는 어린이집에 그런 지침을 내린 적이 없었다"면서 "지금부터 어린이집들과 협의해 실태 조사부터 실시하고, 어떤 식으로 지도·점검할 수 있을지 방안을 마련해보겠다"고 밝혔다. 김애순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부이사장은 16일 국회 바른정당 주최로 개최된 간담회에서 "정권 바뀔 때마다 교육 정책이 졸속으로 내려오면 현장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떤 이의 교육 철학에 의해 매번 이렇게 쉽게 (정책이) 바뀌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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